자유자재로 언어·장비 다뤄…13~33세 해당

올해 대학에 입학한 제인 곰버는 한때 기숙사의 필수품으로 여겨지던 TV를 들여놓지 않았다. 그의 룸메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그 대신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이 있으면 동영상 다운로드 사이트나 스트리밍(재생) 사이트에 접속한다. 곰버는 “TV 앞에 앉아 채널을 돌리는 것은 시간 낭비”라며 “웹 사이트를 통해 시청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골라 보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성장 과정에서 인터넷 이용을 자연스럽게 접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가 소비 지도를 바꿔 놓을 조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컴퓨터·인터넷 등 디지털 환경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접해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세대를 말한다. 미국 교육학자 마크 프렌스키가 개념화한 용어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지 않은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과 대비된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198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데, 13세에서 33세까지 연령을 포괄한다.
[ISSUE&TOPIC] 디지털 시대 주무르는 ‘ 디지털 네이티브’
디지털 네이티브의 존재는 일찍부터 주목 받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성인이 되며 주요 소비 연령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각광받고 있다. 세계 25억 명이 여기에 해당되며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4분의 3 정도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디지털 네이티브는 베이비붐 세대나 X세대보다 많다. 이들의 소비력은 미국 내에서만 연 9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내년에는 광고 업계가 주 타깃으로 하는 18~49세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전망이다.


세계 인구 3분의 1 차지…TV 시청 외면
이들은 자유자재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자금 대출 상환에 허덕이며 암울한 취업 시장에 나서야 한다는 점에서 이전 전후 세대처럼 소비를 마음껏 향유하는 것도 어렵다.미국 음악 방송 MTV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기존 세대와 달리 부자가 되고 좋은 차를 모는 데 관심이 없다.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데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일단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차이는 미디어 소비 방식이다. 2000년 들어 정보기술(IT)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신문과 잡지 등에 대한 구독이 줄어든 점은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에 이르러서는 TV 시청 시간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여론 조사 업체 닐슨에 따르면 미국의 18~24세는 한 달 106시간 TV를 시청해 35~49세보다 40시간 적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동영상 재생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데 따른 것이다.

제이미 것프렌드 인텔리전스그룹 최고전략책임자는 “이들은 TV 채널을 돌리고 있는 대신 패션부터 스포츠까지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하기 원한다”며 “10대 시청자에게 특화된 영상물을 만드는 오섬니스TV가 87만2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 용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네이티브의 3분의 1이 영화와 책, 비디오 게임 등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매트 브리턴 MRY 최고경영자(CEO)는 “이들 세대는 해적 콘텐츠 유통을 차단할 어떤 장치도 없을 때 태어났지만 이제는 더 나은 기술이 있고 돈을 내기를 원한다”며 “다만 디지털 네이티브는 콘텐츠에 대한 소유권보다 접근권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어떤 것을 가지려고 하기보다 경험하는 것에 돈을 지불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작은 미디어 시장이지만 이들의 소비 특성은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소유보다 이용을 중시하는 특성상 공유경제에도 훨씬 익숙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옷을 공유하는 행위도 디지털 네이티브 사이에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경목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