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스 4120억 배럴…어획량도 풍부

전 세계가 북극해를 주목하고 있다. 극동아시아와 유럽·대서양 연안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인 북극항로가 열려 연료와 시간이 절약되고 자원의 개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거리는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때보다 7000km 단축된다. 시간으로 열흘이다. 이에 따라 물류 산업, 특히 컨테이너 해상운송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북극항로는 크게 두 가지다. 캐나다 북부 해역을 따라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와 시베리아 북부 해안을 따라 대서양~태평양을 잇는 북동항로(Northeast Passage 혹은 Northern Sea Route: NSR)다. 북서항로는 사용 빈도가 매우 낮지만 연중 사용되고 있으며 서부 시베리아에서 생산되는 석유·광물·목재 등의 수송 수요가 있어 정기선 운항도 곧 이뤄질 전망이다. 북동항로는 현재 국제항로로 개발돼 있지 않아 타 국가의 선박들은 거의 운항되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는 예외다. 북동항로를 이용하는 선박의 90%는 러시아 무르만스크 해운 회사가 차지한다. 이는 러시아가 1987년 개혁·개방정책의 일환으로 무르만스크에서 북동항로에 대한 개방을 선언한 이후 이 항로에 대해 자국의 연안 관할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북극항로가 향후 활성화되면 어떤 화물을 실어 나를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화물은 벌크, 특히 원유와 가스를 중심으로 한 화물을 꼽을 수 있다. 벌크 화물은 정기선에 비해 수송 조건이 간단하고 특정 화물의 수요만 적당하면 선박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스폿 시장이 발달해 있어 제한된 해빙 일수에도 경제성을 가질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북극해 항만 물동량을 2013년 약 1억2000만 톤으로 전망하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원유·화학제품 같은 액화물은 2015~2020년 사이에 빠르게 물동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건화물은 운항 가능 기간이 더욱 길어지는 2020년 이후 물동량 증가세가 더욱 강해 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컨테이너 화물은 경제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컨테이너 화물은 정기선 서비스가 가능해야 하는데 현재 3개월의 해빙 기간으로는 기대만큼의 경제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전체적인 컨테이너 수요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북극항로가 해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유·가스 수송로 개발 경쟁 치열
하지만 컨테이너 선박의 북극항로 이용이 본격화되면 글로벌 물류 환경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은 유효하다. 예를 들어 아시아~유럽 노선의 운항 거리가 기존 수에즈운하를 경유할 때보다 30%까지 절감된다. 부산항에서 출발해 북유럽 주요 항구인 브레멘·로테르담·앤트워프 등으로 향할 때 싱가포르나 홍콩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거리 면에서 최단거리가 된다. 이것을 근거로 향후 부산항이 중·장기적으로 싱가포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북극항로 개통은 ‘북극해의 자원 개발’이라는 또 다른 이슈를 제공하고 있다. 북극 해저에는 석유를 포함해 개발되지 않은 무한한 자원이 매장돼 있다고 알려졌다. 전 세계 미발견 석유·가스 자원량의 22%에 해당하는 4120억 배럴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 유가가 강세를 유지하면서 북극 지역 자원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향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극 지역의 원유 생산 비용은 배럴당 20~60달러 수준으로, 두바이유나 서부텍사스산원유 시세를 밑돌아 가격 경쟁력이 있다. 또 2020년 무렵에는 세계 어획량의 37%가 북극해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향후 새로운 북극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전 세계가 북극에 열광하는 이유다. 그중 북극 개발에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지난해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북극 지역 러시아 전략 자원 기지 전환(남진정책)’을 공식화하고 블라디보스토크항과 무르만스크항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석유가스전도 개발 중이다. 2007년에는 북극 해저의 최대 산맥인 로모노소프 해령 탐사를 마쳤고 북극 연안에 가스 파이프라인을 설치했다. 2008년부터는 북극항로 3단계 개발 계획을 추진 중이며 2015년까지 유라시아를 잇는 북극항로 개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2020년부터 북극 지역을 전략자원 기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한 러시아는 24대의 쇄빙선을 보유하고 있는 북극해의 맹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력 쇄빙선단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질세라 미국도 알래스카에 인접한 북극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미 해군은 북극 탐사 예산을 40% 늘렸다. 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 등 나머지 연안 국가도 쉘·엑슨모빌·BP·스탯오일 등 글로벌 자원 기업들의 힘을 빌려 북극 해상 광구 개발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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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아이슬란드·독일·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도 북동항로 쟁탈전이 치열하다. 노르웨이는 북극해 자원 개발과 함께 북동 항로에 2010년 추디해운사의 노르딕 바렌츠호 운항에 성공해 북동항로의 운항 여건, 경제성 분석 등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리적으로 북동 항로의 유럽 측 입구에 있어 유리하다. 또한 허브 항만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독일은 서방 상선으로는 벨루가시핑이 2009년 최초로 북동항로를 운항, 성공한 이후 많은 운항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한국·중국·일본의 경쟁도 뜨겁다. 3국은 북극이사회의 정식 옵서버국이 되면서부터 북극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북극 정책을 전담하는 기구인 극지연구자문위원회를 신설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이 지난 4월 아이슬란드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것은 북극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국은 아이슬란드 북동부 해안 지역의 석유 개발권을 얻었고 그린란드에서는 희토류 개발에 착수했다. 2012년에는 자체 건조한 쇄빙 연구선 쉐룽호를 이용해 북극점 인근을 통과하는 운항에 성공했다. 이어 북극 탐험과 개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쇄빙선을 건조 중이다. 지난 8월에는 중국 다롄을 떠난 1만9000톤급 컨테이너선 융성호가 북극해를 가로질러 34일 만에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 도착했고 중위안 해운공사 소속 빙성호도 북극항로 운항을 시작했다.


쇄빙선 사용료, 경제 효과 변수
일본은 1980년대부터 민간 중심의 북극해 연구가 활발했다. 특히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일본 동쪽의 요코하마 라인보다 동해를 경유하는 라인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지난해 6월 북극권을 자원 개발 중점 지역으로 개발하는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연구원 300명을 동원, 4년간 북극해 답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은 2002년부터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에 극지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국 최초의 쇄빙 연구선 아라온호가 북극 항해에 성공했다. 2011년에는 한국가스공사가 캐나다의 우미악 가스전의 지분 20%를 사들였고 2012년에는 그린란드 정부와 자원 개발 협력에 합의했다. 북극 항로가 열릴 것에 대비해서도 부산시가 북극해항로연구센터를 설립했다.

그러나 북극항로 횡단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북극항로 활성화의 최대 장애물, 러시아 쇄빙선 사용료 때문이다. 러시아 쇄빙선은 얼음으로 막힌 길을 만났을 때 길을 열어주는 에스코트용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쇄빙선 사용료를 비싸게 요구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러시아가 제시한 가격대로 사용료를 지급하면 북극항로의 경제성이 현저히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연중 항해가 아니고 1년 중 6개월 정도의 항해가 가능한 정도로서는 북극 지역에 쉽게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또 6개월 정도의 통항을 위해 인프라 구축을 위한 투자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경쟁력 있는 컨테이너 수송 원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측과 쇄빙선 이용료 현실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2년 전부터 러시아 측과 우대 요금 적용 방안을 협의해 왔다. 우대 요금을 적용받으면 수에즈운하 통과료와 같은 비용만 지급하면 된다.

또 현재로서는 북극항로에 국가들의 상선을 투입하는 것은 상당한 난제다. 극한의 기온 및 온대지구와 다른 환경, 항해 인프라 결여 및 구조 요청할 인근 국가의 결핍 등이 주요 원인이다. 새로운 항로 개발을 위해서는 항로표지 구축, 경제성 있는 선박 개발, 운항 인력 확보가 필요하다. 또 인프라 구축을 위해 연료유의 공급망 구축, 북극해용 특수 선용품 및 일반 선용품 공급, 선박 수리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항해 관련 연안국 기준의 국제적 제도 및 규정도 통일해야 한다. 기술 및 인력 개발도 문제다. 기존의 쇄빙선 호송과 다른 독립적 운항 형태가 예상되는 데다 건조 기술, 실시간 항행 정보 제공, 항법과 통신 기술, 원자력 추진 선박의 확대 여부 등이 숙제로 남아 있는 상태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