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TAP랩 대표·건축사

얼마 전 책상을 정리하다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이 수첩 달력에는 빼곡하게 하루하루의 일정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수첩을 뒤적이다 보니 ‘아버지와의 작은 잔치’가 적혀 있었다.
[아! 나의 아버지] 다시 열어 보고 싶은 작은 잔치의 추억
2008년 겨울 어느 날 아버지와 친지들이 함께 모였다. 나의 또 다른 출발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전까지 ‘월급쟁이’였던 나는 처음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앉게 됐다. 친지들은 물론 당신께서도 나를 축하해 줬다. 주위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노래를 청했다. “그럼 한 곡 불러볼까.” 아버지는 노래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생활을 돌아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노래’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노래를 즐겨 부르고 또한 즐겨 들으셨다.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술 한잔이라도 걸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콧노래를 부르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할 무렵 아버지는 ‘전축’이란 걸 들여놓으셨다. 그때는 오디오가 아니라 전축이라고 불렀다. 가격은 잘 모르지만 중형차 한 대 값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때부터 레코드를 모으기 시작했다. 팝송·가요·클래식 등등 가리지 않고 모으셨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자 아버지는 그 ‘전축’을 만질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 그전까지는 아버지의 물건이었지만 그때부터 그 물건은 아버지와 나의 공동 소유품이 됐다.


“ 아버지는 내게 많은 것을 안겨주셨다. 회식 때 주눅 들지 않고 시원하게 한 곡 뽑을 수 있는 노래 실력, 사무실에 앉아 조용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법, 현장 일에 필요한 손재주 등등…. ”


아버지는 동시대를 살아온 엄격한, 이른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는 달랐다. 항상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셨다. 물론 내가 처음 오디오를 만지던 날과 함께 지금도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추억이 하나 있다.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니던 일이다. 아버지와의 낚시는 내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는 종일 기다려야만 했다. 처음에는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기다림을 즐기게 된 나를 발견했다. 그 시간 동안 조용히 무언가를 생각하면서 정리하는 법을 하나둘씩 가르쳐 주셨다. 지금도 그때 그 시절처럼 생각을 낚으며 사무실에 조용히 앉아 있다 보면 더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아버지와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끔 산에 오르기도 했다. 오디오나 낚시와 달리 나는 산에 가는 걸 크게 즐기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굵직한 나무를 한 아름 가져오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옆에 앉혀 놓고 이것저것을 만들어 주셨다. 어떤 때는 팽이를, 어떤 때는 권총을, 어떤 때는 로봇을 만들어 주셨다. 내 눈에는 무엇이든 쉽게 만들어 내는 아버지의 손이 마치 마법사의 손처럼 느껴졌다.

지금 나는 건축 일을 한다. 사실 대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나는 ‘문과생’이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로 ‘이과생’으로 변신하게 됐다. 대학 2학년 때 떠난 유럽 여행을 통해서였다. 당시 마주친 유럽의 건축물들은 ‘인간의 위대함’을 알게 해줬다.

물론 문과생에서 이과생으로의 변화는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웠던 점은 아버지를 닮아 손재주가 괜찮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현장 전문가들과 필요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뚝딱뚝딱 만들어 쓰곤 한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것을 안겨주셨다. 회식 때 주눅 들지 않고 시원하게 한 곡 뽑을 수 있는 노래 실력, 사무실에 앉아 조용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 현장 일을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을 손재주 등등….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온다. 이번 추석에는 2008년의 그날처럼 오랜만에 아버지와 작은 잔치를 열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