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돌발 악재를 만났다. 영입 1호 인사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결별을 선언한 것. 최 명예교수는 지난 5월 안 의원이 설립한 싱크탱크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초대 이사장으로 영입됐지만 80여일 만인 지난 8월 10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YONHAP PHOTO-1322> 안철수, 정책비전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4·24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선거사무소에서 정책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2013.4.9

    utzza@yna.co.kr/2013-04-09 13:22:33/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안철수, 정책비전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4·24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선거사무소에서 정책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2013.4.9 utzza@yna.co.kr/2013-04-09 13:22:33/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최 명예교수는 진보 진영의 원로 정치학자로 안 의원이 ‘삼고초려’해 모셔온 인물이다. 안 의원은 자신이 만들 신당의 이념적 좌표로 최 명예교수가 주창한 ‘진보적 자유주의’를 채택하기도 했다.

그런 최 명예교수가 전격 사퇴하면서 안 의원 측은 ‘멘붕(멘탈붕괴)’ 상태에 빠졌다. 안 의원이 당장 최 명예교수의 서울 광화문 사무실까지 직접 찾아가 사퇴를 간곡히 만류했지만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었다.

최 명예교수는 사퇴 배경에 대해 “정치학자로서 정책 개발이나 이론적인 뒷받침이 내 역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정치적인 역할에까지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그에게 광범위한 인재 영입에 나선 안 의원 측이 모종의 역할을 주문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 명예교수의 사퇴에 앞서 안 의원 측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참신하고 실력 있는 인물이 아닌 닳고 닳은 사람들만 찾아오고 있다”며 인재 영입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안 의원은 이 같은 해석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는 “(최 명예교수께서)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정치적 이해타산 없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도 주위에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해석하다 보니 많이 힘드셨던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가 지난 7월 말 국회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민주당을 집합된 의견이 모이지 않는 ‘프랜차이즈 정당’이라고 표현하자 이날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그의 면전에 대고 안 의원에 대한 거센 비판을 쏟아내는 등의 사례를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장집·윤여준·이헌재 줄줄이 떠나
안 의원을 아꼈던 정치적 후원자 또는 멘토들이 그를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표적이다. 이들 두 사람은 2011년 안 의원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저울질할 당시 조언해 주던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정작 대선에서 윤 전 장관은 문재인 후보를, 김 전 수석은 박근혜 후보를 각각 선택했다. ‘경제 멘토’로 영입돼 안 의원의 대선 출정식에도 참석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역시 이후 별다른 역할을 맡지 못한 채 거리가 멀어졌다. 안 의원과 함께 ‘청춘 콘서트‘를 다녔던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도 최근 안 의원 측의 거듭된 구애에도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다소 수줍음이 많고 대인 스킨십에 소극적인 안 의원의 성격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안 의원의 대선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말수가 적은 데다 술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가까운 핵심 참모들조차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면서 “기업체에서 오랫동안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던 만큼 주요 의사결정을 혼자 내리는 리더십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독단적으로 비쳐진 측면도 있다”고 했다.

안 의원이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일단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이후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 끼여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면서 대중의 기대가 점차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그의 ‘인재 엑소더스’에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은 정국에서 안 의원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철저히 소외된 게 사실”이라며 “얼마 전부터 이를 의식한 듯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한 번 잃어버린 존재감을 되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