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2세 ‘대세’… 직장인도‘유턴’

김민재(33·가명) 씨는 지난해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4년간 준비해 합격의 기쁨을 누렸고 현재 서울 집을 떠나 대전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솔직히 말해 신랑감 1순위라고 해서 시작했다. 미래도 보장돼 있고 부모님도 바라셨기 때문에 공부했다”고 말했다.
<YONHAP PHOTO-0576> 9급 공무원 채용 필기시험 실시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27일 서울 풍문여고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나오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행정직과 기술직 등 국가공무원 2천738명을 선발하는 올해 9급 공채시험에 20만4천698명이 응시원서를 내 경쟁률이 74.8대 1이라고 밝혔다. 2013.7.27

    jjaeck9@yna.co.kr/2013-07-27 13:39:17/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9급 공무원 채용 필기시험 실시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27일 서울 풍문여고에 마련된 고사장에서 나오고 있다. 안전행정부는 행정직과 기술직 등 국가공무원 2천738명을 선발하는 올해 9급 공채시험에 20만4천698명이 응시원서를 내 경쟁률이 74.8대 1이라고 밝혔다. 2013.7.27 jjaeck9@yna.co.kr/2013-07-27 13:39:17/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공무원 권하는 사회’라도 된 것일까.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에 몰려 ‘공시족’이 올해 사상 최대에 이르렀다. 9급 공무원 기준 초봉이 연 1956만 원(봉급+수당)으로 대기업 평균 3695만 원(잡코리아 조사), 중소기업 2331만 원보다 적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시험에 몰린다. 연령대도 위아래로 늘어나 부모와 자식이 함께 준비하는 사례가 생길 정도다. 공시족은 누구이며 왜 응시하는가.


스펙 없어도 가능…취준생의 33% 차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유일하게 스펙을 보지 않고 공부만 해서 합격할 수 있는 시험 아닌가.”(31·최재혁)

공무원 시험을 가장 많이 준비하는 이들은 취업 준비생이다. 나이대로 보면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에 해당한다. 실제 2012년 9급 공무원 최종 합격자 중에서도 28~32세가 전체 40.8%로 가장 많았고 23~27세가 38.2%로 뒤를 잇고 있다.

통계청의 2013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 준비생 3명 중 1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이들이 공무원에 ‘올인’하는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다. 대기업·공기업·금융권·외국계 등의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는 ‘스펙’을 넘어 ‘스토리’까지 갖춰야 하는 게 최근 취업 트렌드다. 가뜩이나 취업난이 극심해 ‘좁은 문’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면 공무원 시험은 스펙에 밀려도 필기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보기 때문에 ‘평등한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대학생 및 취업 준비생이 도전하는 분야는 7급과 9급 시험이다. 최근 공무원 특수를 누리고 있는 ‘에듀윌’의 관계자는 “대기업은 해도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고시는 너무 어렵고 7, 9급은 해볼만하다고 보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지방대생들에게 인기 만점 시험이다. 지방대 졸업생인 최 씨는 “고등학교 때 반에서 10등 안에 드는 실력이라면 1년 안에 합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2년 정도 잡으면 된다”며 연내 합격을 기대했다.

이렇다 보니 장수생도 늘어나고 있다. 낮아 보이는 진입 장벽으로 너도나도 ‘할 수 있다’고 달려들지만 정작 뽑히는 인원은 한정돼서다.

모의고사 점수만 놓고 보면 ‘합격 가능선’이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는 공시족들은 4~5년씩 시간을 투자한다. 이렇다 보니 30대를 훌쩍 넘겨서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이가 늘고 있다. 실제 7, 9급 합격자의 평균 연령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12년 국가직 7, 9급 공개경쟁 채용 시험 최종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각각 30.3세, 29.1세로 2004년 28.9세, 26.4세와 비교해 30세를 전후로 높아졌다.

대학 저학년들도 일찍이 뛰어든다. 대학 합격증을 받기도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이수정(22·경기대) 씨는 부모님과 상의 끝에 일찍이 공무원으로 진로를 정하고 휴학한 채 현재 9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공시족 그들은 누구인가
“향후 어떤 일을 하는 줄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동주민센터에서 등본을 떼 준다고 들었다”며 “안정적이고 기업에 비해 경쟁도 덜하다는 점에서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15시간씩 공부하고 있는 그는 “어차피 그냥 학교 다녀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청춘으로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게 전혀 억울하지 않다.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목표”라며 각오를 다졌다.

공무원 연령에 변화가 생긴 계기는 ‘연령 폐지’다. 실제로 2009년 응시 상한 연령 폐지 이후 합격자 나이가 다양해졌다. 2008년 9급 공채 합격자 중 36세 이상은 처음 15명으로 시작해 해를 거듭하면서 98명, 115명, 139명, 159명으로 늘어났다. 2012년 9급 공무원 최종 합격자 중 33세 이상 합격자는 18.6%로 나타났다.

30대 초반을 넘어선 합격자는 취업 준비생이라기보다는 ‘진로 유턴족’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공무원으로 진로를 바꾼 30대 직장인들이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김나영(34·가명) 씨는 5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8월부터 9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진로 유턴족’이다. 그는 “법률회사·출판사 등에서 일해 봤지만 어디나 다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새벽까지 이어지는 야근과 상사 눈치 보기에 지쳐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으로서 경력 단절 없이 일할 수 있고 승진 등에서 양성 평등을 제도화해 놓은 곳은 공직 사회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아직 미혼인 그는 결혼할 때에도 시부모님께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소위 해외파 출신이다. 호주 맬러른대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외국어에도 능통하다. 그는 “스펙이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신문을 보면 대기업 다니다가 다시 9급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 경쟁률도 치열하고 점차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 이제는 스펙이 아깝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로 유턴족이 또 다른 진로 유턴족을 부르고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9급 공무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김 씨는 학원에서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끼리 같이 어울려 지내지면서도 서로 과거는 묻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교생 자녀와 엄마가 함께 도전
진로 유턴족 이외에도 퇴직 후 다시 ‘늦깎이 공무원’에 도전하는 40, 50대들도 적지 않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응시자 35만여 명 중 40대 이상은 1만1076명. 지난해 8122명보다 25.8% 정도 늘었다. 이 중 2083명은 50세 이상이다. 40, 50대 공시족이 급증하는 이유는 뭘까. 베이비부머 은퇴자가 급증하며 퇴직 후 제 2의 인생을 꿈꾸는 이들이 갈 곳이 공무원 세계뿐이라는 분석이다. 대다수 베이비부머들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은퇴하지만 연금 수령은 60세 이후에나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거나 새 사업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11년 7급 공채 시험에 합격해 관세청에서 일하고 있는 박요한(54) 씨는 50대 공시족 열풍에 대해 “얼마든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나이인데, 직장에서 퇴직하면 할 수 있는 게 자영업밖에 없다. 공무원은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사무직이기 때문에 새롭게 도전해볼 만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 또한 개인적 사정으로 대기업을 그만둔 후 10년간 비정규직으로 택배 등의 일을 해 왔다. 공무원 나이 제한 폐지 소식을 아내에게 전해들은 후 관세직 준비를 시작한 그는 1년 6개월 만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고 현재 “이전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 어린 상사도 “반장님” 혹은 “형님”으로 호칭하기 때문에 홀대받는 느낌은 없다고 한다. 안전행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공무원 세계에서는 급수에 관계없이 ‘~관’ 또는 ‘선생님’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

올해 공시족 사이에서 최대 이슈는 9급 선택과목 도입이었다. 기존 행정학·행정법 이외에 사회·과학·수학을 선택과목으로 추가해 역대 최대 경쟁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도입 목표부터 고졸자를 위한 것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9급 공무원 업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인데 합격자의 98%가 대졸자”라며 “고졸 합격생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실제 공식 집계는 완료되지 않았지만 고교생의 유입으로 전체 경쟁률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7월 있었던 공직 채용 박람회에서 고교생들의 뜨거운 관심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아람(19)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현재 수능이 아닌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인문계 고교에 재학 중이지만 2학년 때 이미 진로를 정한 김 씨는 “수능도 볼 생각이지만, 올해부터는 100% 공무원 시험에만 매진하고 있다”며 “마침 선택과목이 바뀌었는데 수능과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대학은 공무원이 된 후 야간 대학을 졸업할 계획으로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에 부모님이 가장 기뻐했다고 말한다. 앞으로 고교생 공시족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발 빠르게 대응하는 쪽은 특성화고교다. 일선 고교에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1학년 때부터 ‘공무원 취업 준비반’을 구성하는 학교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특성화고 교사는 “요즘은 학생들에게 민간 기업보다 공무원에 지원하라고 권유하는 담당 교사가 많다” 고 말했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공시족 그들은 누구인가
엄마와 자녀가 함께 공시족이 된 사례도 있다. 임선영(45·가명) 씨는 10년 차 가정주부 생활에 작별을 고하고 공시족 세계로 들어섰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전까지는 은행에서 잘나가는 행원으로 근무하다가 결혼 이후 줄곧 가정생활에 매진해 왔던 임 씨는 “뭔가 목표 의식을 가지고 살고 싶던 중 나이 들어 관공서에 들어간 인터뷰 기사를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모습을 열여섯 살짜리 중학생 자녀에게 보여줬는데 이를 계기로 자녀 또한 공무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함께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임 씨는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상관없다. 대학 나와서 취업해도 남 눈치보고 살아야 하는데 하고 싶은 일 하도록 지원해줄 생각이다”며 “40대에 암기를 하는 게 쉽지 않지만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생부터 대학 저학년·장수생·직장인·주부·명퇴자까지 뛰어들며 ‘국민 시험’으로 떠오른 공무원 시험의 인기 배경은 한마디로 ‘안정성’ 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60세 정년이 보장되고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면서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직장인 공시족은 기존보다 연봉이 낮더라도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공시족이 되려는 이가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막상 공무원이 되고 나서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편안한 것만 좇는 게 공무원이 아니고 부처에 따라 일이 많은 것도 있는데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20대 공시족은 “대기업에 합격해도 9급 공무원이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대기업 채용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열린 채용이라고 해도 결국 합격자를 보면 다 상위 몇 개 대학 출신들뿐이더라. 승진도 뻔한 것 아니겠느냐”며 “공무원은 적어도 급수에 따른 위계질서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시족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인상적인 부분은 ‘신의 직장’이 아닌 ‘선택 가능한 직장’, 혹은 ‘최후의 보루’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대학생은 평등한 경쟁, 명퇴자는 자영업 이외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사무직, 고졸생은 고졸로서 차별 없는 직장, 주부는 아르바이트 이외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이다. 공무원 열풍과 사회적 지위 상승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에 일할 의지가 충만한 이들을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현실의 방증으로 보인다. 이국헌 고려대 교수는 이를 ‘잡 시큐리티’의 문제로 봤다. 우리 사회에 직업 안정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안 심리가 안정을 지향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도전과 창조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와도 반대 방향인 셈”이라며 “안정적이기 때문에 공무원을 선호하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무원 어떤 혜택 누리나
1. 보수
공무원 보수는 ‘짜다’고 알려져 있지만 안전행정부의 2012 민·관 보수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경력이 쌓이면서 오히려 민간 기업의 연봉보다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7급 공무원은 27세 신입이라면 민간 기업에서 상위 40% 보수를 받는 근로자의 94% 정도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으며 55세 이후로는 공무원 보수가 더 많아진다. 9급 공무원도 비슷하다. 공무원 보수는 기본급에 총 26개 수당과 4개 변상 등을 더해 결정되는데 경력이 없는 9급 1호봉 공무원은 연 2000만 원, 7급 1호봉은 2400만 원 수준에서 시작한다.

2. 교육 지원
공무원의 교육 훈련 지원은 최고 수준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졸자라도 공무원이 되면 대학 및 대학원을 나올 수 있다. 방송통신대 사이버대, 국내 대학(야간), 국내 대학원 석사(야간) 등 24개 기관과 15개 교육원의 학비를 지원하며 일정 기간 근무 후에는 국제기구, 외국 정부기관 등 연수, 유명 대학원 과정 교육, 터키·남아공·아르헨티나 등 지역 전문가 과정, 국외 유명 대학 과정 연수도 지원한다.

3. 휴가 및 휴직
연가, 병가, 공가 및 특별휴가로 분류되는 휴가 제도와 질병 휴직(1년 이내, 공무상 질병 3년 이내), 병역휴직(복무기간), 해외 유학 휴직(최대 5년), 육아 휴직(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 1인당 1년 이내, 여성 공무원 3년 이내) 등 휴직 제도가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이러한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며 특히 여성들이 육아 휴직을 자녀 한 명당 최대 3년까지 쓸 수 있고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어 경력 단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