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적자 ‘허덕’…왕서방을 모셔라

돈줄이 마른 세계 각국 정부가 중국 부호들의 이민을 독려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재정 적자와 실업률에 허덕이는 카리브 지역과 남부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투자 이민 조건을 완화하는 등 중국인 부호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홍콩 하비그룹 이민 전문 변호사 장 프랑수아 하비는 “세계는 지금 중국을 상대로 ‘이민 전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ISSUE & TOPIC] 남유럽·카리브해 국가들, 투자 이민 경쟁
재정 위기 중심에 있는 남부 유럽이 투자 이민 유치에 가장 먼저 나섰다. 그리스 정부는 주거용 부동산에 25만 유로(약 3억7000만 원)를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5년마다 갱신이 가능한 체류 비자를 주고 있다.

포르투갈은 지난해 50만 유로 이상 부동산을 구입한 외국인에게 ‘골든 비자’를 발급했다. 올 들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키프로스는 이보다 더 완화한 30만 유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키프로스 투자홍보청 대변인은 “올 들어 해변에 있는 부동산 1000개가 중국인에게 팔렸다”고 말했다. 스페인도 유사한 이민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이민은 기본적으로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도 개방돼 있지만 주요 공략 대상은 현금을 많이 쥐고 있는 중국인이라고 이민 전문 변호사들은 입을 모은다.


투자 이민 조건 완화…중국인 부호 모시기 열풍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도 적극적이다. 세인트키츠네비스·앤티가바부다 등은 시민권 취득 조건을 대폭 완화했다. 세인트키츠네비스는 40만 달러(약 4억4000만 원)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설탕 산업 다원화 기금에 25만 달러를 기부하면 시민권을 주고 있다. 앤티가바부다도 이 모델을 따라 20만 달러의 조건을 내세웠다. 현재 의회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러나 비자 발급만으로는 중국인의 입맛을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인 대부분은 부동산으로 임대 사업을 하거나 향후 시세 차익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자녀의 교육에 유리한지 따져보는 경향도 있다. 헝가리는 지난해 국채에 25만 유로를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5년 체류 비자를 발급했지만 투자 매력이 적어 중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홍콩의 이민 전문 변호사 데니 고는 “중국인은 보통 투자 이민을 선택할 때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며 “비자나 시민권은 보너스 정도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ISSUE & TOPIC] 남유럽·카리브해 국가들, 투자 이민 경쟁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도 중국 이민자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까다로웠던 투자 이민의 문턱을 대폭 낮추고 있는 것. 미국은 투자 이민 요건으로 50만 달러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내걸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투자 이민 신청자 7641명 가운데 80%가 중국인이었다. 호주도 지난해 11월 중국인 이민자를 겨냥한 특별 비자를 만들어 총 8억5000만 호주 달러의 투자 이민을 유치했다. 이 비자는 호주 국채와 기금, 주식 투자 상품에 500만 호주 달러를 투자하면 4년 체류 비자를 받는 조건이다. 신청자 170명 대부분이 중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라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