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한국은 왜 공무원 시험에 열광하나

공무원 시험에 많은 응시생이 몰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채용 시장이 침체된 요즘 공무원 시험에 사활을 거는 이들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이에서부터 중년 직장인 및 명퇴자. 고교생 및 가정주부까지 공무원을 꿈꾸고 있다. 문제는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공시(공무원 시험) 낭인이 발생하고 사회적 비용이 크다는 점이다. 공시 열풍에 대해 류동희 한국취업진로교육원장,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공무원 시험 응시생인 김형진(군산대 행정학과 3) 씨와 의견을 나눴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사회적 비용 막대…돌파구는 ‘사전 교육’
왜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공무원에 목을 매고 있다고 보는가.
김홍유 경희대 교수 올해 공무원 응시자 수는 45만 명에 달한다. 수능 수험 고교생보다 많다. 공직 사회로 가려는 노력이 대학 진학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만 하면 공무원 시험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에 몰리는 주요 원인은 사회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구직자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고 있고 또한 가족 관계에서 부모들이 자녀가 공무원이 되는 것을 선호해 적극 권하고 있다. 관료 사회의 매력은 명예퇴직의 리스크가 적고 노후 설계에서도 연금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임신·출산으로 경력 단절이 있는데 공무원에게는 이런 걱정이 없다. 또한 일과 여가의 조화, 자기 계발을 추구하는 현세대에게 공무원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류동희 한국취업진로교육원 원장 나는 공무원 생활을 26년 한 후 퇴직했다. 공무원 초봉은 사기업의 약 80% 수준이다. 하지만 60세 정년까지의 급여 차원에서 보면 공무원 급여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기업에서 40, 50대도 명예퇴직으로 밀려 나오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와 그들의 부모 세대는 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선호하고 있다. 내가 공무원이 돼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지 생각하기보다 공무원이 편하고 안정적인 일이라는 점만 집중해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김형진 학생 군산대 행정학과 학생 많은 대학생들이 사회 진출에 막연해 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달려왔을 뿐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도 깨닫고 자격증, 외국 경험 등 스펙을 쌓아 놓지 않은 경우 대기업 지원은 꿈도 못 꾸고 고민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된다. 공무원 시험은 취업 시장에서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개인적·사회적으로 볼 때 과연 좋은 일자리일까.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자리가 젊은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아닌가.
김홍유 교수 공무원 직무는 부정적인 면도 꽤 있다. 고학력자라도 직무가 단순화돼 있다. 대학 졸업까지 많은 비용을 투자해 스펙을 쌓는데 과연 공무원 사회에서 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찰·소방 등 전문직 공무원은 직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지만 많은 직무가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수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거의 만점에 가까워야 공무원이 될 수 있는데 이 공부가 직무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료 사회는 개인 역량, 창의적 시도를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류동희 원장 공무원 사회에서는 조직 논리에 충실해야 한다. 개인의 창의성이 팀워크 플레이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무원들은 원하는 직무를 계속하기 힘들다. 순환 보직 때문에 정기적으로 다른 부서 일도 해야 한다. 조직 차원에서 연속성이 떨어지고 개인의 발전도 힘들다. 한편 공무원도 다양한 직렬·직종이 있는데, 지원자들은 자신의 전공을 불문하고 일반 행정직에 몰린다. 공무원 시험을 볼 때 직종과 직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 더 보람 있게 일할 수 있을 텐데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지원자들은 공무원 직무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이해하고 접근하는 게 좋다.

김형진 학생 고위급 관료가 되면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수 있어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직업이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무원 직무에 대해 막연해 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주변에는 공무원 시험 중 응시생들이 영어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아예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한 이도 있다. 자신의 전공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다만 일반 행정이 가장 많은 수를 선발하므로 이에 지원하는 것이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사회적 비용 막대…돌파구는 ‘사전 교육’
높은 경쟁률 때문에 공무원 시험 합격이 바늘구멍이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커트라인 때문에 개인적·사회적 비용도 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류동희 원장 한 해에 지원자 45만 명 중 2만 명만 합격한다. 노량진 학원가에도 20만 명이 몰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이 중 한 해 1500명 정도가 합격해 노량진을 떠난다. 노량진 ‘공시족’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공부할 때나 지원을 포기할 때 비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5세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일반 기업으로 눈길을 돌리지만 채용이 잘 안되고 설령 취업했다고 해도 보수와 지위가 낮아 낙담한다. 공무원 지원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목표와 기간을 정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년 안에 안 되면 과감히 다른 길을 택하라는 것이다. 합격 커트라인보다 조금 낮은 점수대에 많은 이들이 몰려 있고 결국 포기하지 못하는 지원자들이 많다. 그래서 공시 낭인들이 양산되고 있다.

김홍유 교수 공무원 시험 응시자의 뒷바라지로 부모 등 주변 사람도 희생한다. 또한 공시 낭인으로 인해 인재들을 묵히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시험 응시 횟수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가능하지도 않다. 지원자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로드맵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 기업은 대학에서 리크루팅 활동을 활발히 한다. 최근 대학에서 선발 기준을 다양화하는 것처럼 공무원 시험에서도 획일적 시험과 성적 서열식으로 뽑는 것을 넘어 능력 측정 도구, 선발 기준을 다양화한다면 공시 낭인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김형진 학생 지난 7월 27일에 시행된 9급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문제 수준은 수능 정도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합격선이 매우 높다. 국어·영어·역사 등 과목은 95점 이상 맞아야 합격할 수 있다. 한두 문제 맞히느냐 틀리느냐로 결정된다. 준비를 열심히 해 왔던 사람이라도 실수로 한두 개는 틀릴 수 있다. 시험에는 운도 작용하는데 한두 문제로 합격이 결정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난이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무원 시험 과목이 공무원 직무와 연결된 내용이라고 보는가.
김형진 학생 시험 과목 중 행정법이 있어 이를 공부하며 공무원 직무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무직은 세법을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 게 맞다. 하지만 공무원하면서 ‘영어를 얼마나 쓸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한 올해부터 고교 과정의 수학·과학·사회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됐는데 이런 과목들이 직무와 어떤 관련이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고졸 학력자의 선발을 위해서라지만 이렇게 뽑는다면 다시 공무원 직무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번 과목 개편에 대해 불만이 있는 지원자들이 많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사회적 비용 막대…돌파구는 ‘사전 교육’
류동희 원장 공무원 임용 시험 과목은 괜찮다고 본다. 공무원은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를 원한다. 일반직 공무원이 되려면 국어·영어·수학 등 기본적인 소양을 갖춰야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있다. 보편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내용들이 시험 과목이다. 직무 능력과 독창성은 면접에서 검증될 수 있다. 경찰공무원은 형사법 시험을 보는 것과 같이 특정·기술직 공무원은 직무 관련 과목을 치른다. 다면 인성·적성 검증과 관련해 면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김홍유 교수 과목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데 동의한다. 의사 소통 능력, 판단력, 논리력, 사회성 등이 공무원에게 필요한 소양이다. 대국민 서비스를 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통계를 작성하는 데 사회·국어·수학 등의 과목은 기본적인 잠재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은 일종의 잣대로, 기본적인 능력 측정 도구다. 다만 과거에 비해 선발 기준이 다양해졌지만 아직도 획일적이다. 다른 나라의 공무원 선발 기준에 비해 경직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공무원이 돼서도 적성이 맞지 않아 업무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발 과정과 기준을 더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사회적 비용 막대…돌파구는 ‘사전 교육’
사법고시가 폐지된 이유 중 하나가 고시 낭인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낭비를 막기 위해서였다. 공무원에 몰리는 현상을 돌파할 대책은 없나.
류동희 원장 공무원 양성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반직은 이 기관을 통해 양성하고 전문직은 대학 전공자를 채용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행정사관학교는 일반직 공무원을 양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군사 지도자를 육군사관학교에서, 농협 근무자를 농협대에서 양성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직무에 대한 이해와 훈련을 충분히 거친 후 공무원이 될 뿐아니라 체계적 응시로 공무원 역량도 강화하고 시험에 몰리는 이도 줄일 수 있다. 또한 전문직 공무원을 희망하는 대학 전공자에 대학의 양성 기능을 강화해 저학년 때부터 선발 요건을 갖추고 단계적으로 공무원 교육하는 게 좋다. 이를 통해 대학의 공교육 기능도 강화될 수 있다.

김형진 학생 어려운 문제다. 사회적 분위기가 변해야 한다. 현재 맹목적으로 공무원에 지원하는 풍토가 변해야 한다. 대학에서 공무원과 관련된 교육을 하는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공무원 진로에 대한 고민과 정보를 통해 자신의 길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사회적 비용 막대…돌파구는 ‘사전 교육’
김홍유 교수 현재 대학에서 공직 설명회나 특강이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 참석하는 대학생이 그리 많지 않다. 공무원에 대한 정보는 사설 학원을 통해 얻는 게 일반적이다. 공무원 채용을 관할하는 안전행정부 차원에서 대학에서 더 활발하게 공직 설명회를 갖고 일정 시간을 이수함으로써 이해를 높인 후 지원하게 하는 것도 운영의 묘가 될 수 있다. 이런 사전 교육은 공시 낭인을 막고 사회적 자산을 보호하는 동시에 공무원 지원자의 자격과 소양을 미리 걸러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토론 참석자>
류동희 한국취업진로교육원 원장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김형진 군산대 행정학과 3학년



사회·정리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