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열풍’ 진원지 대학가를 가다

지난 2월 지방대를 졸업한 Y(27) 씨는 대기업 취업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가 지방대의 보이지 않는 장벽에 한계를 느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공무원 시험(이하 공시) 준비를 시작했다. 대졸자의 취업난과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면서 Y 씨와 같은 사례가 많다. 한 해 공시에 20만여 명이 몰리고 있지만 정확히 어떤 직무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고용 안정성을 취업의 잣대로 삼고 선택한 수험생이 대부분일 것이다.
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
지난 5월 14일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대학생 879명을 대상으로 ‘공무원 시험 관심’에 대해 조사한 결과 대학생 5명 중 3명이 공무원 시험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대학생들에게 공무원 시험을 보는 이유를 묻자 ‘평생직장이기 때문에(56.9%)’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연금 등 노후 보장이 되므로(26.7%)’, ‘다른 뚜렷한 진로가 없어서(5.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러다 보니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해 9급 행정공무원에 합격한 서보란(24·가명) 씨는 “더는 스펙에 얽매이지 않아 마음은 편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일이 힘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지방대는 해당 지역사회에 기반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한 데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적인 안정성도 얻을 수 있어 공무원 시험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자 대학들도 공시반(공무원 시험 준비반)을 운영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2003년 한양대·고려대 등의 수도권 대학들을 시작으로 2004년부터는 전국 대다수 대학에 공시반이 설치됐다. 이와 함께 최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5, 7급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지방대 출신자를 일정 비율 이상 할당하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자 지방대에서는 공시생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국가고시추진본부라는 총장 직속기구를 만들어 지원하는가 하면 합격 시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장학금을 지급해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이 밖에 직렬별 전공과목에 대해서는 수험 교재와 동영상 강의 등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와 함께 개인 독서실과 스터디 룸을 제공하는 등 공무원 배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운영하는 공시반도 사설 학원과 같이 대부분이 7, 9급 시험의 공통과목인 영어·국어·한국사 3과목에 대한 교육이 집중돼 있어 수험생이 공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기숙사·장학금·강의 등 지원 ‘팍팍’
광주광역시에 있는 호남대는 2인 1실의 기숙사를 운영하며 공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다. 동영상 강의를 비롯해 교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스터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서울에 있는 학원과 똑같은 시간표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학생들이 최신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대학 수준에 맞춰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남대와 마찬가지로 대구대도 기숙사를 제공해 24시간 학생들을 관리하고 있다. 대구대는 2004년부터 ‘인재양성관’을 설립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공시생은 35명(7월 1일 기준)으로 학부 성적을 기본으로 공시 시험 과목인 한국사·영어 시험을 치른 뒤 성적에 따라 선발된 인원이다. 또한 대구대는 반별로 지도 교수 면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외부 강사의 정기적인 특강으로 학생들이 서울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것과 차이를 느끼지 않도록 했다.

이처럼 대학이 공무원 시험에 역량을 다하는 것은 공무원 시험을 위해 휴학계를 내고 학교를 떠나 학원을 찾는 학생을 줄이려는 의도다. 조재진 호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기업 취직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는 대학생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며 “공시반이 없으면 학생들이 휴학하고 서울로 가는 경우가 많아 학내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학교에서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대대적으로 공시반을 지원하자 공시반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졌다. 대구대는 신입 관원을 모집할 때마다 3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으며 연세대 공시반도 평균 4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입실할 수 있다. 고시반에 입실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경쟁을 만들어 내고 있어 일부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9) 씨는 “마치 공시반에 들어가지 못하면 시험에 합격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공시반 학생들과 괴리감을 느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열풍 어디까지] ‘한 명이라도 더’…총장까지 팔 걷고 나서
반면 공시반을 ‘소수 정예 특별반’으로 운영하는 대학과 달리 특별한 자격 제한 없이 선착순으로 모집해 운영하는 대학도 있다. 전북대는 ‘공무원 영상학습실’을 조성해 학생들이 동영상 강의를 개인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시생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영상학습실에서는 100여 대의 PC를 이용해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강의가 없는 시간이나 수업 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도록 주말을 포함해 1주일 내내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운영하고 있다. 영상학습실 관계자는 “‘에듀스파’, ‘윌비스고시학원’, ‘지구인’ 등 10여 개 학원과 제휴해 학원과 같게 진행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모의고사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대는 단순히 동영상 강의를 제공하고 모의고사를 볼 기회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선배 합격자들과의 멘토링을 통해 학원 시스템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지방대에 재학 중인 김지윤(23) 씨가 지난해 6월 노량진을 찾았다가 한 달 만에 학교로 돌아간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김 씨는 “학교 고시반이 정보 교류와 장학금 혜택, 시설 제공 면에서 노량진 고시촌보다 낫다고 판단해 결정을 내렸다”며 “선배 합격자들과의 만남은 학교에서만 지원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시반 들어가는 것 자체도 힘들어
이 밖에 공시반에서는 학생들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장학금을 제공하거나 환급 제도를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경남대는 2005년부터 한 달에 두 번 모의고사 후 성적 우수자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조선대도 공시생을 위해 지난해부터 동영상 강의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며 교육과정의 80% 이상 수강을 완료하면 수강료의 60%를 환급해 준다. 대구대는 3, 6, 9, 12월에 자체 평가를 실시해 성적이 낮은 학생을 공시반에서 퇴관시키는 규율을 적용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교 공시반 좌석의 반은 졸업생이 차지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 과목인 영어·국사·국어 등 대학에서 모두 수강하는 과정인데도 졸업 후 처음부터 다시 시험 과목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학생들은 학원이나 동영상 강의를 찾는다. 기초 개념부터 문제 풀이까지 단기간에 수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유능한 인재를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대학이 정규 수업이 아닌 ‘고시반’을 통해 고시 합격자를 양성하는 게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 공시반 시스템에 대해 공직자로서의 자세나 태도를 배제하고 오직 시험 합격을 위한 준비 과정에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와 관련, ‘공무원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동양대가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8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260여 명이 넘는 공무원을 배출한 동양대는 ‘선비사관학교’ 등의 인성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맹목적인 공무원 시험 합격이 아닌 전문성과 인성, 직무에 대한 이해를 모두 갖출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론으로 단기간에 배우는 영어가 아닌 영어 생활화 시스템인 영어사관학교를 진행하는 등 체계적인 교육으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대학들은 지난해부터 고등학교 교과목인 수학·사회·과학이 공시 과목에 추가돼 저학년의 수험생이 증가하고 시험일이 변경되는 등의 변화에 대비하고 직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공시반을 운영할 때 사설 학원과 다른 방향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은진 인턴기자 skysung8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