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인 2000년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이라는 책을 펴낸 게 최초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차용해 “시장경제를 한 축으로 하고 시장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국가가 해결하는 한국적인 제3의 길”이라고 밝혔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진보적 자유주의를 내건 적이 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말기 출간한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기존 보수·진보를 싸잡아 비판하며 진보적 자유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유 전 장관은 2002년 개혁당, 2010년 국민참여당을 창당해 자신의 생각을 현실에 접목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시장경제 위에서 복지국가를 추구하지만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와도 일정 선을 그었다. ‘진보적 자유주의’ 개념 놓고 갑론을박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 역시 2011년 ‘노무현 정부의 진보적 자유주의 구상’이란 논문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철학을 진보적 자유주의로 규정했다. 그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적 입장”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의원도 최근 기자들과의 북한산 산행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굳이 범주화한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적 입장”이라며 “정치적 자유를 넘어 사회·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안 의원의 진보적 자유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안 의원의 싱크탱크 격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을 맡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6월 19일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 “독재와 전제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자유주의’와 시장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관점에서의 ‘진보’를 결합한 개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유를 향유할 인간의 평등한 권리, 온정주의를 거부한 법의 지배, 결사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시민사회 등 현대 민주주의적 가치가 자유주의 이념으로부터 온 것”이라며 “또한 진보는 신자유주의의 시장 근본주의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결과를 비판하고 이에 따른 양극화와 불평등 같은 사회문제를 민주적 방법으로 개선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진보 학자들 사이에서도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김욱 배재대 교수는 “사실상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를 이상으로 보고 있지만 남북 분단 등 우리 정치 현실을 감안해 과도기적 성격으로 내세운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김영태 목포대 교수도 “통상 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데 진보적 자유주의는 과연 어떤 입장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 “우리나라 정치 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상 정당이 이념이 아닌 특정 인물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결국 (안철수 신당도) 인물 중심으로 정치 세력이 모이고 있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이와 관련, “복잡한 사회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이념과 가치가 공존 협력해야 한다”며 “의제 제시에 그치지 않고 곳곳에 있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의제를)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호기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