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을의 처지를 동정하고 각자 갑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회 전반의 의식 개혁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를 꼬집어 풍자하는 이야기가 있다. 직업이 각기 다른 검사·정치인·기업인·선생님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노래방과 술집에 갔다. 누가 밥값·술값을 계산할까. 그리고 누가 마지막까지 계산을 하지 않을까. 누가 ‘갑’이고 ‘을’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주로 기업인이 밥값·술값을 계산할 것이고 마지막까지 계산을 하지 않는 이는 선생님이다. 기업인은 정치인·검사에 대해 을의 입장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선생님이 왜 기업인·정치인·검사보다 슈퍼 갑의 위치에 있을까. 이유는 이들 모두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경제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 슈퍼 갑의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에 물량을 강매하고 폭언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불공정 거래 실태와 을에게 억울한 비즈니스 관행이 회자되고 있다. 전국적인 유통 대기업과 공급 업체, 프랜차이즈 본점과 가맹점, 완제품 업체와 부품 공급 업체 사이에 갑을 관계가 만연돼 있다. 불행히도 통상 갑을 관계는 건전한 상생의 관계이기보다 을의 희생이 강요되고 갑은 반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경제 민주화와 상생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고조되다 보니 그간 슈퍼 갑의 위치를 향유한 기업들에 대한 비난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있다. 그런데 갑을 관계 속에서 이익을 취한 대기업을 옹호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몇몇 대기업을 마녀사냥 식으로 비난하고 그 회사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가 개선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성경에서 죄지은 여인에게 돌팔매를 하려는 군중에게 던진 예수의 질문처럼 우리 모두가 갑을 관계에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질러 온 공범이기 때문이다. 갑을 관계는 사회 전반적으로 연결돼 있는 하나의 먹이사슬과 같은 구조이지 어느 대기업만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다.

대개 갑으로 행세하는 그 또한 누군가로부터 을의 입장에서 고통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리점 사장에게 폭언한 직원은 회사의 사장에게는 을이고, 사장은 주주나 채권은행에 을일 수밖에 없다. 은행은 금융감독원 등 관료에게 을이고, 관료는 정치인에게, 정치인은 언론 및 시민단체에 을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CEO 에세이] 갑을(甲乙) 문화의 청산
이런 사슬의 반대 방향으로 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갑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갑의 횡포를 하는 누군가를 비난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도 관행처럼 굳어진 갑의 역할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반문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을의 설움을 당하면서 자신이 보유한 갑의 권리를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집살이를 심하게 한 며느리가 더 지독한 시어머니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따라서 우리 사회의 ‘갑을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을의 처지를 동정하고 각자 갑의 권리를 포기하는 사회 전반의 의식 개혁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대중가요의 유행처럼 잠시 인기를 얻다가 사그라져 가는 일시적인 운동이 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정권 초기에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여론의 부정적인 타깃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몇몇 기업들이 발 빠르게 상생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진지하고 지속적인 변화가 아닌 우선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의도라면 우리 사회의 갑을 문화가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