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Book] GDP는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外
1930년 경제학자 케인스는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발표했다. 역사적인 자본 축적률과 기술 진보의 비율을 기초로 만약 자본 투자가 매년 2% 성장하고 기술 효율성은 1% 성장을 계속한다면 100년 뒤 선진 국가에서의 생활 표준은 지금보다 4~8배 더 높아져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담았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 3시간만 일해도 충분하고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경제적인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여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하는 ‘진정한 문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지금 케인스의 이러한 장밋빛 예언은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인류는 여전히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도 벅찬 실정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무한 경쟁 속에서 자유나 여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돈키호테적인 몽상일 뿐이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은 ‘성장 지상주의’에 칼날을 들이댄다. 저자들은 ‘좋은 삶을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많은 돈을 벌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는 마치 점점 더 뚱뚱해지려고 먹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 책은 국내총생산(GDP) 성장에 대한 집착에도 도전한다. 우리는 여가가 늘고 오염이 줄어들기를 원하지만 GDP에는 이 중 어떤 것도 포함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경제성장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의 성장’인지도 물어야 한다.

로버트 스키델스키 외 지음|
김병화 옮김|376쪽|부키|1만6000원




생산적 복지와 경제 성장

김인춘 외 지음|436쪽|
아산정책연구원|2만 원

복지 체제 확립에서 한국이 참고해야 할 6개 나라의 사례를 담았다. 그리스·아르헨티나·일본은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실패 사례다. 반면 스웨덴·영국·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공 사례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은 선진국 도약을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복지가 함께 이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선진국들도 ‘복지병’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들은 맹목적인 복지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개혁을 통해 생산적 복지 체제를 확립했다.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이순희 옮김|624쪽|
열린책들|2만5000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불평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그가 불평등을 문제 삼는 것은 단지 그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불평등은 비효율을 가져 온다. 오늘날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이런 불평등을 초래한 방식이 어떻게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는지 명료하게 보여준다. 불평등은 시장의 힘과 정치적 권모술수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생겨났다.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

윤성식 지음|272쪽|예담|1만3800원

저자는 제자들 사이에서 ‘모모 교수님’으로 통한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속 모모처럼 어떤 이야기든 기꺼이 경청하고 진심으로 조언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강의실·교정·기숙사에서 수많은 학생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들 못지않게 방황을 거듭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들어 있다.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성공을 위한 팁이나 요령을 던져주지 않는다. 시련과 좌절에 빠진 이들의 등을 토닥거려 주는 감상적인 위로 대신 다시 쓰러지지 않는 방법을 들려준다.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김승완 외 지음 |208쪽 |
남해의봄날 |1만3800원

30~40대 지식노동자들의 지역 비즈니스 도전기다. 9명의 젊은이가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거대도시 서울을 벗어나 작은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제주의 정보기술(IT) 기획자와 바리스타, 충북 괴산의 지역 뮤지션, 강원도 화천의 연극 연출가, 강원도 속초의 번역가, 전북 전주의 오너 셰프, 전남 순천의 큐레이터, 경남 통영의 기획·편집인 등이 그 주인공이다. 지역에 내려가면 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종우의 독서노트

일본 경제 부담없이 읽기
백년 기업이 넘쳐나는 나라
[Book] GDP는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外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iminvestib.com

1988년의 일본은 대단한 나라였다. 세상의 모든 기업을 시가총액 순으로 세울 때 상위 50개 중 33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50위에 들어 있는 미국 기업 14개를 다 합쳐봐야 시가총액 1위인 NTT의 1.5배에 지나지 않았다. NTT 1주의 가격은 도요타자동차 한 대 값과 맞먹을 정도였다. 2013년 일본은 활력을 잃어버린 나라로 치부되고 있다. 우리 언론들이 심심치 않게 이제 일본 전자회사들은 한국의 적수가 아니라는 얘기를 할 정도다. 그래도 일본은 대단한 나라다.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고 해외에 가지고 있는 재산은 산정이 힘들 정도로 많다. 정부의 빚이 GDP의 240%에 달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후기 산업혁명이 끝났을 때 선진국이 아니었던 나라 중 유일하게 일본만이 지금 선진국 위치에 서 있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건 1854년이다. 일본의 적응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힘을 발휘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연간 목표했던 만큼 석탄을 캐내느냐 아니냐를 경제의 최대 관심사로 여기던 나라가 20년간 호황을 거치면서 미국과 대등한 경쟁력을 갖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최절정기는 버블 경제 시기였다. 일본 황실 터를 팔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체를 사들일 수 있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버블 경제의 붕괴와 함께 일본의 성장은 20년째 멈춰 버렸다. 미국의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서구의 정책 입안자들은 ‘일본처럼 하지 않으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 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일본을 정책 능력이 떨어지는 대표적 국가로 본 것이다.

일본은 성장 동력이 사라진 나라일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은 곤고구미(金剛組)라는 회사다. 지금부터 약 16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절을 짓고 유지·보수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데 일본에 있다. 1000년 이상 된 회사는 곤고구미만이 아니다. 8개 기업이 1000년 이상을 버텨 왔고 100년이 넘은 기업은 2만 개도 넘는다. 우리는 동화제약과 두산 두 개밖에 없다. 인간 중심의 경영 역시 살아있다. 과거 일본 경제의 특징이었던 연공서열제와 메인뱅크 제도가 최근 약해졌지만 직원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한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정신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가 경제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면서 모델이 되고 있는 나라다.

강철구 지음|346쪽|어문학사|1만6000원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