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미술은 삶의 밸런스이자 자극제”

세계적 명품 브랜드 몽블랑이 2013년 ‘제22회 몽블랑 문화 예술 후원자상’ 한국 수상자로 김희근(67)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을 선정했다. 김 회장은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같은 해 한국메세나협회에서 수여하는 ‘2011 메세나 대상 메세나인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 예술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6월 4일 시상식에 앞서 르네상스 서울 호텔에서 김 회장을 만나 문화 예술 후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스페셜 인터별] 김희근 벽산 엔지니어링(주) 회장
보타이가 인상적입니다. 보타이를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거의 대부분 보타이를 맵니다. 건설업을 하는 데다 제 인상이 강해요. 배우라면 아무거나 입어도 멋있어 보이겠지만 저는 그게 안 되잖아요. 나이도 먹었고요. 좀 더 멋스럽게 나이 들어 보이려고 보타이를 매게 됐습니다. 사실 제가 성질이 급하고 못됐습니다. 한동안 파이프 담배를 피웠는데 담배를 꾹꾹 누르면서 분을 삭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격은 잘 변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문화로 눈을 돌리신 겁니까. 일종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요?

제가 해방둥이라 2년 있으면 일흔 살이 됩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어떻게 하면 멋있게 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멋있게 나이 드신 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분들을 보니까 봉사 활동은 기본이고 문화 예술 지원도 당연하게 여기더군요. 그게 참 좋아 보였어요. 그분들을 따라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경제도 마찬가집니다. 선진국들을 따라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한국이 세계경제 대국이 된 것 아닙니까.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한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몽블랑이 전 세계 12개국에서 후원상을 주는데, 한국도 3년 전부터 대상국에 든 거죠.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 롤모델이었습니까.

국제적으로 다양한 최고경영자(CEO) 모임이 있는데, 제가 몸담은 모임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모임인데, 1986년 가입해 벌써 30년 넘게 몸담고 있습니다. 1년에 몇 번씩 만나 공부하고 친분도 쌓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작고한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도 동료 회원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외국 CEO들이 많은데, 다들 참 열심히 사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롤모델이죠.

그런 생각을 갖는 분은 많지만 실제로 행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제게는 자연스러웠어요. 지금까지 꽤 오래 음악 단체를 후원하고 아티스트들을 지원해 왔습니다. 그 덕에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도 된 것이고요. 사업가가 심포니 이사장이 된 건 제가 처음입니다. 작가들을 후원하는 것도 그래요. 지금까지 1년에 그저 한 명, 20·30대 작가들을 지정해 조건 없이 2년씩 후원하고 있어요. 그림이 모이면 전시회도 열어 주고요. 그러다가 화가들에 대한 지원도 하게 된 것이고요. 돌이켜보면 그만큼 제 인생을 풍요롭게 한 것도 없는 듯합니다.
[스페셜 인터별] 김희근 벽산 엔지니어링(주) 회장
요즘 젊은 작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한국 작가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몇 년 열심히 하고 바로 빛을 보는 이도 많거든요. 예전 작가들과 달리 요즘 작가들은 해외 아트페어에 나가 먼저 이름을 알려요. 그런 다음 한국에 금의환향하는 거죠. 동남아에서는 한국 작가들의 위상이 대단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친구들이 단체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사려고 올 때도 많습니다. 중국 빼고는 홍콩·대만·싱가포르 작가 중에 신통한 작가가 거의 없거든요. 일본 작가들도 한국만 못하고요.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한국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죠. 기업이나 정부 지원만 좀 더 늘어나면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 거죠. 2년 전 몽블랑 문화 예술 후원상을 받은 윤영달 크라운 회장이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구인데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국악을 후원하잖아요. 제가 윤 회장한테 그랬어요. 회삿돈으로 그래도 되느냐고요. 그랬더니 광고보다 돈도 덜 들고 효과는 더 크다고 하더라고요. 기업가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정해 후원하는 풍토가 빨리 조성됐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는 기업가들도 문화 예술 후원에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자연스러운 방향이니까요. 그림에 양도세를 부과하는 것 때문에 걱정하는 분들이 있던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후대로 넘어가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때가 되면 컬렉션한 건 결국 기증하게 돼 있어요. 선진국이 그런 선례를 보여 주잖아요. 일본도 기증 문화가 상당히 발전해 있고요. 얼마 전 나고야 ‘티파니&잉글리시 가든’ 개관식에 초대돼 갔습니다. 그곳은 나고야의 건설 부동산 사업가가 컬렉션한 작품을 기증해 만든 곳이었어요. 컬렉션과 박물관 공사비는 사업가가 기증하고 운영은 나고야현에서 맡은 곳인데,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운영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겠죠.

그럼요. 박물관 하나 운영하는데 1년에 최소한 10억 원 이상 듭니다. 2대, 3대로 이어가기가 어렵죠. 결국은 국립·도립·시립의 형태로 가야죠. 그 대신 기증자에 대한 예우는 해 줘야죠. 샌프란시스코 미술관이 리모델링해 재오픈했을 때 가 보니까 기증한 사람 이름으로 방을 만들었더군요. 인정할 건 인정해 줘야 가진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기증하죠. 가진 사람도 그만큼 노력했으니까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래야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집니다.

끝으로 문화 예술 후원이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게 음악과 미술은 삶의 밸런스이자 자극제입니다. 마음껏 즐기기도 하고 어디 가서 알은체도 좀 하고요. 뉴욕에서 세종 솔로이스츠가 연주하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 친구들까지 다 옵니다. 그 친구들이 오면 수표 한 장씩 써 주고 갑니다. 후원이 일상화된 거죠. 그럴 때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