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는 유럽 업체들과 다른 차원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6월 12일 삼성동 코엑스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제2회 한·유럽연합(EU) 경제협력합동회의’에서 한스 크리스찬 바텔스(Hans Christian Baertels) BMW코리아 부사장은 의미심장한 말로 운을 띄웠다. 이 자리는 한·EU 수교 50주년과 한·EU 자유무역협정(FTA) 2주년을 계기로 향후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 열린 자리였다. 그러나 바텔스 부사장은 작심한 듯 해묵은 불만을 토해냈다.

그는 “한·EU FTA가 체결되면서 한국보다 EU가 더 많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한국산 자동차의 유럽 수출은 4만5000대가 늘었지만 유럽차의 한국 수출은 3만3000대에 그쳤다. 향후 1~2년이 지나면 8~10%이던 자동차 관세는 상호 완전 철폐된다. 그러나 문제는 비관세 장벽”이라고 말을 이었다. 바텔스 부사장이 언급한 비관세 장벽은 기술 표준의 문제였다. 그는 유럽의 품질 인증 제도인 UNECE (유엔유럽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는 표준을 말함)를 언급하며 “한국과 유럽이 UNECE로 표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BMW코리아가 한국 정부·자동차 업계 맹비난한 까닭, ‘한국 기업 봐준다’…정부에 불만
김효준 사장 국세청 출두한 다음 날

이어 바텔스 부사장은 한국과 EU의 자동차 업계가 안전·연비 등에서 해결할 문제가 있다며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차량 안전 부분이다. 그는 한국자동차안전기준(KMVSS)을 언급하며 “EU는 차량 안전·점검과 관련해 공공기관이 점검하는데 홍보·마케팅 이전에 검증이 이뤄지고 소비자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등 엄격한 반면, 한국은 제조사 차원에서 자가 인증만 하면 되고 (인증이 허술하다 보니) 판매 이후에 리콜 사태가 벌어진다”며 한국 정부와 업계에 불만을 토로했다.

둘째, 연비 규제와 관련해서다. 그는 “언론 등에서 수 개월간 연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FTA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지만 지금까지 큰 진전은 없다. EU에서는 제3기관의 검증을 받고 있는데, 한국은 이 역시 자가 검증만 하고 있다. 한국 업체들이 EU 기준을 추가하려는 듯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새로운 합의 도출 과정인지 이대로 그칠지는 잘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셋째,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다. 바텔스 부사장은 “한국 정부가 프랑스 기준을 자세히 보고 있는 듯한데, 프랑스에서는 연비에 따라 세금이 다르게 되어 있고 저연비 차량은 소비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이 문제도 FTA에서 더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텔스 부사장의 주장은 유럽차들이 까다로운 인증 과정과 복잡한 규제를 받는 반면 한국 정부는 자국 자동차 산업에 너무 관대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는 다른 차원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회의에 참석했던 허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부회장이 발끈했다. 발언 기회를 얻은 그는 “EU가 채택하고 있는 형식 승인제와 한국·미국 업체가 채택한 자가 인증제는 제도상의 차이라고 본다. 그렇게 보면 한국 또한 유럽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 EU는 한국 정부의 기관 인증을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EU에서는 ‘UNECE의 ‘E’ 마크를 달면 한국에서 통용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상호 호혜도 평등도 아니다. 한국은 32개 기준에 대해 EU 기준을 동등하게 인정해 주기로 했는데, 국내 업체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어도 전체 FTA와 조화가 불가피하다고 해서 받아준 것이다. 이런 것들은 제도적 차이라고 인정해 줘야지 ‘비관세 장벽’이라고 애기하면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바텔스 부사장이 한국 정부에 불만을 쏟아낸 것은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는 BMW코리아의 김효준 사장이 세금 탈루 의혹으로 국세청에 출두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