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증권업과 리서치센터의 역할

최근 국내 금융 투자 업계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자본시장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애널리스트들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지난 5월 31일 열린 ‘제주포럼’에서 국내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및 베스트 애널리스트들 6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증권업의 변화와 리서치센터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불꽃 튀는 논쟁을 소개한다.
[SPECIAL REPORT] 하이브리드형 인재 길러야… 비주식 부문‘강화’할 때
주제 발표 ①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리서치 본부장
[SPECIAL REPORT] 하이브리드형 인재 길러야… 비주식 부문‘강화’할 때
지난 30여 년을 돌이켜 보면 애널리스트란 직업은 많은 굴곡이 있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널리스트는 작게는 투자자를 위해 크게는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애널리스트들의 상황은 참 어렵다. 이유는 증권업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애널리스트들과 리서치센터도 이 변화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즉 기존의 리서치센터가 하던 업무 형태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증권업과 리서치센터는 어떤 도전에 직면했을까. 최근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급격하게 줄어드는 거래량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애널리스트들이 하는 분석이 오차가 지나치게 크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주가 예측을 넘어 주가 방향성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또한 애널리스트들의 연구 범위가 국내·대기업에만 한정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변화된 매매 패턴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주식 거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영향으로 프로그램 매매나 인덱스형 거래가 크게 늘었다. 개별 주식에 대한 분석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증권사 간의 경쟁 격화로 낮아진 주식 거래 수수료도 리서치센터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기존의 주식 분석 중심의 리서치센터가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증권업의 위기를 좀 더 살펴보자. 먼저 금융시장의 업권별 상품 규모 추이를 보면 은행·증권·보험 중 증권 관련 상품의 비중이 2009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다. 2009년 41.2%에 달하던 증권 관련 금융 상품은 2012년 1분 38.8%까지 줄었다.

증권업 1인당 당기 순이익도 줄어들고 있다. 2009년 업계 평균 7000만 원 수준이던 1인당 당기순이익은 2011년 기준으로 5000만 원까지 줄어들었다. 당연히 증권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도 안 된다. 은행 이자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의미다.

리서치센터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리서치센터와 가장 연관이 많은 법인 영업을 보자. 2003년 기준 주식의 프로그램 거래는 법인 거래량 중 16%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프로그램 거래의 거래량이 법인 거래량 중 38%에 달한다. 프로그램 거래는 기관투자가들이 자신들의 투자 전략을 프로그래밍해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매수 또는 매도하는 거래 방식이다. 이 거래가 늘어날수록 개별 애널리스트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어렵다.

이미 글로벌 투자은행(IB)은 기관 주식 영업에서 사람이 직접 하는 리서치 비중을 줄이고 기계화 서비스를 확대 중이다. 국내 법인 영업 시장은 아직 개인 브로커의 역량이 크지만 이는 곧 글로벌 IB와 마찬가지로 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한국 증권사보다 수익에 더 민감한 외국계 증권사는 애널리스트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서 각 리서치센터와 애널리스트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까. 먼저 원론으로 돌아가는 것, 즉 애널리스트들의 분석 정확도를 지금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둘째, 해외 종목에 대한 분석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를테면 삼성전자 담당자라면 애플의 상황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셋째, 해외 증권사와의 정보 교류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넷째, 기존의 주식 분석뿐만 아니라 채권 및 금융 상품 전반에 대한 분석도 리서치센터가 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해외 채권 및 해외 금융 상품에 대한 분석을 늘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리서치센터 내 애널리스트들의 성과 분석을 더욱 정교하게 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존의 연공서열식 급여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주제 발표 ②
정용택 KTB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SPECIAL REPORT] 하이브리드형 인재 길러야… 비주식 부문‘강화’할 때
KTB투자증권은 이제 생긴 지 4년을 지나고 있다. 역사에 비해 KTB투자증권 및 리서치센터의 역량을 더 높게 인정받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리서치센터장을 하기 전 애널리스트로 있을 때부터 고민이 하나 있었다. 국내 대다수의 리서치센터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특색 없는 분석을 해서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KTB그룹은 다른 금융 그룹과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벤처 투자에서 시작한 KTB그룹은 현재 벤처 투자는 물론 사모 펀드 및 자산 운용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IB 업무도 강한 편이다. 즉 브로커리지 중심의 타 증권사와 출발점과 수익 구조가 달라 보다 적극적으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현재 대부분의 리서치센터는 기업 및 산업을 담당하는 기업분석팀과 주식시장 및 거시경제를 담당하는 투자전략팀으로 나뉘어 있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이런 ‘전통적 이분법’에서 탈피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인 ‘코어비즈 리서치팀’과 ‘이노비즈 리서치팀’이다.

코어비즈팀에는 화학·정유·건설·조선·은행·보험 등 전통적 핵심 산업이 포함된다. 이들 산업은 전형적인 경기 산업이다. 경제 전반의 흐름을 읽는 게 중요하다. 이에 따라 거시경제 및 전략 애널리스트가 함께 배치돼 기업 분석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이노비즈팀은 정보기술(IT)과 바이오, 소재 및 부품, 엔터테인먼트 등의 성장형 기업의 분석에 집중한다. 이 팀은 삼성전자와 같은 대형 IT주 분석은 물론 타 증권사 스몰캡팀의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성장 기업의 ‘옥석 가리기’를 위해 퀀트 애널리스트들이 이노비즈팀에 배치돼 있다.

이 중 코어비즈팀의 수익원은 기존의 리서치센터와 마찬가지로 개인 및 법인 브로커리지 수수료에서 찾고 있다. 반면 이노비즈팀은 KTB그룹 전체의 전략을 서포트하는 형태다. 벤처 펀드 및 사모 펀드가 직접 투자할 만한 기업을 발굴하고 분석하는 역할도 맞게 된다. 물론 코어비즈팀는 인수·합병(M&A) 등 그룹 IB 부서의 사업을 돕는 역할을 한다. 즉 앞으로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단순한 증권사의 리서치센터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물론 이 같은 계획은 애널리스트의 제한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게 분명하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의 규모는 다른 중형 증권사와 마찬가지로 50여 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생산성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생산성을 강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타 증권사와 비슷한 관점이나 분석 툴로 접근하는 자료를 지양하는 것이다. 둘째, 분석의 자동화나 시스템화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뜻이다.
[SPECIAL REPORT] 하이브리드형 인재 길러야… 비주식 부문‘강화’할 때
<패널 토론 참석자>
사회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사회 조윤남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기존의 주식 위주의 분석을 넘어 채권 및 상품의 분석을 적극 추진해 ‘자산 클래스의 다양화’를 꾀했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그룹의 비전에 따른 ‘내부 역량 강화’로 조직 개편의 의도가 정리된다. 이에 대해 각 패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확실히 비주식 금융 상품이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는 게 지금 금융시장의 흐름이다. 그래서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역시 비주식 금융 상품 위주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는 데 많은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금융상품 개발 시 관련 애널리스트가 투입되기도 한다.
이와 별도로 리서치센터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고 있는 최근의 흐름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분명 ‘틀렸다’고 강조하고 싶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보고서는 다른 어떤 연구 기관의 보고서보다 질이 높다고 자부한다.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는 이론과 현실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널리스트는 세상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직군이다.

그렇다면 애널리스트의 목표는 확실하다. 지금 이상으로 역량을 더 키운 ‘하이브리드형 인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기금이나 기관의 자산 운용 규모가 커지면서 애널리스트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나아가 한국의 대기업들도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산업의 전문가인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수요가 더 증가했다. 그러므로 지금의 ‘주식 스페셜리스트’에서 ‘경제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역할까지 애널리스트가 해내야 한다. 시니어 애널리스트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다. 시니어가 될수록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자신의 산업군 분석에 갇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 발짝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불과 3~4년 전에 비해 지금 애널리스트의 업무가 많아졌다. 두 배는 늘어난 것 같다. 문제는 기업 분석 업무보다 펀드매니저를 위한 서비스와 마케팅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는 질적인 측면의 향상보다 단순한 양만 늘어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역시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는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고 싶지는 않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시장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연구해 보자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애널리스트의 역량을 이전에 비해 더 크게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홍성국 센터장의 이야기처럼 이제는 애널리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더욱 더 다양한 비즈니스 영역에서 발휘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개인 고객들에게는 재무 설계와 은퇴·인생 설계까지 해줄 수 있는 능력, IB 고객들에게는 그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 기업 고객들에게는 신사업 진출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즉 지금보다 더 다양한 분야에 본인의 능력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증권업과 리서치센터가 놓인 변화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미국의 금융 위기 이후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저성장의 시대에 돌입했다. 저성장 시대에선 고성장 시대처럼 모든 주식의 가격 상승이 꾸준히 우상향하지는 않는다. 즉 이제는 전체 주식 중 오르는 종목의 비중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뜻이다.

애널리스트로서 이런 때 필요한 게 ‘관점의 전환’이 아닌가 한다. 즉 이제는 주가가 오르는 종목보다 ‘떨어지는 종목’을 찾는 애널리스트가 진정 필요한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그간 항상 지적되는 한국 애널리스트들의 문제 중 하나는 언제나 ‘바이(Buy)’만 외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 ‘셀(Sell)’을 이야기하는 애널리스트가 필요해졌고 만약 그의 분석이 맞는다면 그 누구보다 주목받는 애널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나조차 ‘셀’을 이야기하기 두렵다. 그래서 증권사는 물론 자산 운용사, 나아가 기업을 아우르는 금융 투자 업계 전체의 생태계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셀 리포트’와 관련해 업계 전체 혹은 금융 당국에서 어떤 ‘룰’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를테면 리서치센터의 전체 리포트 중 셀 리포트를 10~20% 정도 반드시 쓰도록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의 자산운용 시장은 게임의 룰이 완전히 변했다. 자산운용사들은 개인 고객의 돈보다 국민연금 등 대형 기관의 돈을 운용하는 게 주업무가 됐다. 국민연금은 매년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현재도 국민연금이 기업 지분 5%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게 200곳이나 된다. 이 주식은 쉽게 사고팔기 힘들다. 보험이나 기타 금융회사도 마찬가지다. 이는 곧 리서치센터의 주수익원인 법인들의 거래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외국계 투자자들의 자금을 국내 증권사들이 맡아 거래하는 것이 새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이미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오는 수익은 모두 한국 증권사가 아닌 외국계 증권사의 몫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증권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안이 나올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의 증권 산업은 실제로 위기에 몰려 있다. 리서치센터는 더하다. 자칫하면 안방을 고스란히 내줄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증권사가 고사하고 금융 산업 전체가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 및 정부 당국에서 어떠한 시스템적 변화를 고려해 줄 때가 된 것 같다.

임진균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한 가지 강조해야 할 부분은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무조건’ 훨씬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즉 저성장 시대는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기 힘든 시대라는 뜻이다. 이는 곧 투자의 트렌드를 감지하는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부에서 나오는 ‘애널리스트 무용론’은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본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애널리스트의 생산성이라고 본다. 어떤 애널리스트가 좋은 애널리스트인지 정밀하게 평가하는 툴을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해졌다. 앞으로 리서치센터들이 더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이 부분이라고 본다.
[SPECIAL REPORT] 하이브리드형 인재 길러야… 비주식 부문‘강화’할 때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