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미래 경영인을 배출하는 경영대의 고민도 크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책임과 함께 기존의 경영학을 넘어 아시아 중심의 경영학을 발전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두희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5월 31일 오후 고려대를 방문한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을 만나 ‘경영대의 역할과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전설적 투자가’ 짐 로저스 2박3일 동행 취재] “서구의 이론을 가르치는 것은 시간 낭비”
아시아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아시아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내가 아시아로 이주해 온 까닭은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는 영국의 시대, 20세기는 미국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한국·일본·대만·홍콩·싱가포르 등에 이미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 1930년대 영국 정책 결정자들의 어리석음으로 경제 위기가 발생했고 이때 많은 자산이 미국으로 흘러왔다.

마찬가지로 최근 금융 위기로 미국에서 아시아로 많은 돈이 움직이고 있다. 배경이 뭐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는 앞으로 아시아에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수요가 급팽창한다는 의미다. 아직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인프라가 부족한 것을 비롯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시아의 경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남북통일이 몇 년 안에 이뤄진다면 앞으로 10~20년 안에 한반도는 가장 역동적인 곳이 될 것이다.

경영대 학장으로서 서구의 것이 아닌 아시아의 경영학에 대해 교수들과 많이 논의하고 있다. 아시아 경영학이라는 게 무엇이고 어떤 것을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

서구를 근간으로 하는 경영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1969년에 노벨 경제학상이 수여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서구가 세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아시아는 돋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서구는 저물고 있고 아시아에서 역동적인 붐이 일어났다.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의 리콴유 등 경제 업적이 뛰어난 이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야 하지만 아직 아시아에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 없다.

노벨 경제학상은 서구의 학문을 바탕으로 할 뿐 아시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컬럼비아대 경영대에서 교수로 일할 때 학생들에게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다. 지금 현실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지도했다. 서구의 경제는 붕괴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서구 중심의 이론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며 의미 없는 일이다.
[‘전설적 투자가’ 짐 로저스 2박3일 동행 취재] “서구의 이론을 가르치는 것은 시간 낭비”
당신은 실질적인 투자뿐만 아니라 이론에도 해박하다. 그리고 서구와 아시아를 둘 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경영대에 조언을 한다면….

많은 대학들이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웃음) 나는 시장에 대해 이론으로 접근하고 가르치는 게 매우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경영대 교수로 있을 때 학생들에게 “MBA 과정을 당장 때려치워라. 네가 배우는 이론은 모두 잘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학장은 늘 내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웃음)

우리(경영대)는 너무 많은 경영학 지식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이 훌륭한 기업가나 리더로 만들 수는 없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리더로 키우기 위해 역사학·철학과 같은 인문학을 가르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커리큘럼에 인문학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당신의 생각에 100% 동의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나에게 묻는다. 나는 항상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아니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요. 마케팅이나 회계를 공부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반박한다. 나는 “부자가 되려면 역사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한다. 경영학은 세계경제가 급변하는 만큼 불과 몇 년만 지나도 쓸모없는 지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외국어를 공부하라고 권한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에게 나는 TED를 볼 것을 권한다. 수많은 전문가의 강연을 들으며 많은 영감과 조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다니려면 기회비용 등을 포함해 20만 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그 비용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본다. 그 비즈니스가 망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서 배운 것이 적어도 강의실에 앉아 배우는 것보다 훨씬 값지기 때문이다.
[‘전설적 투자가’ 짐 로저스 2박3일 동행 취재] “서구의 이론을 가르치는 것은 시간 낭비”
기업에서 경영 효율성과 투자수익률을 강조하다 보니 금융 위기나 분식회계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대학에서 경영 윤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가.

윤리학은 암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즉 교육하고 배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세계적인 경영대를 나온 많은 경영인들이 위법행위를 하고 감옥에 간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많은 대학들이 경영 윤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투자 시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그만큼 많은 수익도 가져 올 수 있다. 어려운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어떤 기준과 근거로 판단하는가.

당장에는 옳은 결정인지 옳지 않은 결정인지 알 수 없다. 내가 투자하는 것이 앞으로 가격이 오를지 떨어질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왜 투자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우선 결정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이성적인 유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농업의 미래가 밝다고 믿고 있고 이를 강조해 왔다. 그렇다면 무엇에 투자할지 고민해 보면 트랙터 제조사 등에 투자해야겠다는 결론을 얻는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정보 중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3~4가지 사실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하는 게 좋다. 이때 바로 철학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수많은 책과 경험이 머리에 축적돼 있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동승 좌석에 앉지 말고 운전석에 앉으라고 강조한다. 택시를 타면 편할 수 있지만 직접 운전할 때 느끼는 재미는 알 수 없다. 직접 운전해야 F1 레이서가 될 수 있는 꿈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뭐든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주문한다. 네가 만약 항공 업계에 있다면 어떻게 이 업계에서 부를 창출해 낼지 스스로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수많은 관련 정보와 통계자료가 있다. 이를 어떻게 수집하고 분석해 수익을 확보할 방법을 찾을지 고민해야 한다. 뭐든지 직접 결정하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후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월스트리트의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여러 자료를 내놓지만 전망이 틀릴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직접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대담=이두희 고려대 경영대학장 |정리=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