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900명이 뽑은 ‘10년 후 한국의 대표 기업·대표 CEO’

제약 부문에서는 업계 매출 순위 ‘넘버3’ 유한양행이 1위 동아제약을 따돌리고 10년 후 한국을 대표할 1등 기업으로 선정됐다. 화학 부문에서는 ‘LG그룹의 자존심’ LG화학이 예상대로 선두를 차지했고 에너지 부문에서는 SK그룹의 맏형 SK이노베이션이 한국전력과 GS칼텍스를 밀어내고 첫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제약·화학·에너지] 유한양행·LG화학·SK ‘별 중의 별’
▶제약= 유한양행의 1위 등극은 다소 의외였다. 유한양행의 2011년 매출은 6677억 원으로 동아제약(9072억 원)과 녹십자(7629억 원)에 이어 3위에 그쳤다. 이런 흐름은 2012년 실적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동아제약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제약 업계 1위 기업이고 녹십자는 백신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동아제약을 위협하고 있는 제약 명가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번 설문 조사에 응한 900명의 한국인이 유한양행을 첫머리에 올려놓은 이유는 뭘까. 먼저 투명 경영, 윤리 경영으로 잘 알려진 유한양행의 참신한 이미지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한양행의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는 모든 소유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에 고스란히 환원해 ‘노블레스 오브리주’를 실천한 경영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유한양행이 투명성과 윤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것도 창업주의 이 같은 기업 철학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1936년)를 도입했고 제약 업계 최초의 정년 연장(2010년)을 시행했다. 경영 실적 면에서도 지난해 트라젠타·비리어드 등 10여 품목에 이르는 대형 도입 계약이 이뤄지면서 큰 폭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3년 목표 매출액이 9200억 원으로 ‘1조 원 클럽’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업계 6위인 종근당이 3위로 점프한 것도 눈에 띄는 결과다. 종근당은 1972년 제약 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제약 연구의 신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근당은 지난해 딜라트렌·살로탄 등 기존 주력 상품을 비롯해 리피로우·칸데모어·이모튼 등 신규 제품들까지 고른 성장세를 보이며 ‘톱 5’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점이 이번 조사에서 호평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톱 5’에 속하는 한미약품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체면을 구겼다. 한미약품은 ‘퍼스트 제네릭→개량신약→신약’으로 이어지는 한국형 연구·개발(R&D) 전략으로 2000년 중반 국내 제약 업계 매출 2위로 급성장하며 1위인 동아제약을 바짝 뒤쫓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영업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최근 발기부전 치료제 ‘팔팔’과 천식 치료제 ‘몬테잘’ 등의 판매 호조로 실적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



▶화학= LG화학이 1위로 꼽힌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계 화학 업계에서도 그 명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특허 평가 기관인 페이턴트 보드(Patent Board)는 지난해 2월 세계 17개국 2500개 기업의 특허 순위를 발표했는데, LG화학은 화학 분야 6위에 이름을 올렸다. 10위권 안에 든 한국 화학 기업은 LG화학이 유일했다.

2010년엔 화학 산업 전문 조사 기관인 ICIS(Independent Commodity Information Services)에서 선정한 글로벌 화학 기업 중 ‘올해 최고의 기업’에 뽑혔다. 매출 기준 세계 100대 화학 기업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꼽힌 것이다. 제품력에서도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필름 패턴 편광 안경 방식 3D TV용 광학 필름을 2010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세계시장 85%라는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석유화학 사업에서도 1990년대 말 독자적인 공법으로 ‘차세대 촉매’로 불리는 메탈로센계 촉매를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 2008년에는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함께 가진 엘라스토머 제품을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 기업들의 아성을 촉매에서부터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허물어버린 셈이다.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분야도 LG화학의 미래를 밝게 보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LG화학은 지금까지 제너럴모터스(GM)·포드·르노·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등 10개 이상의 글로벌 메이저 자동차 회사를 고객사로 확보, 안정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2위에 오른 SK케미칼은 기초 화학물질과 완제 의약품을 생산하는 SK그룹의 계열사다. 그린 케미컬 사업, 생명과학, 가스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최근 고기능성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글리콜(PETG) 수지 개발에 성공했고 신사업인 바이오 디젤 사업도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국내 4대 그룹 계열사라는 점이 기대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3위인 삼성정밀화학은 크게 정밀화학과 전자재료, 일반화학 사업 등 3부문으로 나뉜다. 정밀화학 사업은 주력 분야로 국내외에서 경쟁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전자재료 사업은 삼성정밀화학의 전략 사업으로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현상액 원료로 사용되는 재료 등 다양한 소재를 만들고 있다. 주요 제품인 메셀로스(Mecellose)는 업계 1위에 올라 있다. 국내 태양광 사업의 선두 기업인 OCI는 태양광 업황의 불황으로 순위가 8위까지 밀렸다.



▶에너지= SK이노베이션·한국전력·GS칼텍스가 10% 이상을 얻어 상위 그룹을 형성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2년 연결기준 매출 73조여 원을 올린 한국을 대표하는 에너지 기업이다. 지난해 수출도 53조6000억 원을 기록하며 전체 매출 중 수출이 73%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지난해 세계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서산 배터리 공장, 정보전자 소재 공장을 가동한데 이어 인천 콤플렉스(CLX) 밸류업 프로젝트, 울산 파라자일렌(PX) 공장 착공, 스페인 카르타헤나 윤활기유 공장 착공 등 국내외에서 글로벌경쟁력 향상을 꾀했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와 정보 전자 소재 분야에서도 혁혁한 성과를 내고 있다. 1996년부터 시작된 전기차 배터리 연구는 2005년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팩 개발로 이어졌고 지난해 전기차 1만 대에 공급할 수 있는 서산 배터리 공장을 완공하기에 이르렀다.

올 1월에는 독일의 자동차 부품 업체 콘티넨탈과 합작해 ‘SK-콘티넨탈이모션’을 설립하면서 세계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보 전자 소재 분야에서는 리튬이온분리막(LiBS)과 연성동박적층판(FCCL), 트리아세틸셀룰로스(TAC) 필름 사업이 3대 축으로 미래 전망이 밝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매출 290조 원을 올리는 ‘기술 기반의 혁신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

2위에 오른 한국전력은 전력 판매 부문에서 독점적 위치를 갖고 있는 기업이다. 조사에 응한 국민들이 한국전력을 높이 평가한 것은 해외 원자력발전 사업, 해외 신·재생발전 사업 등 신규 사업에서 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전력은 2020년까지 10기의 원전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고 화력발전 사업도 지난해 요르단전력공사와 전력 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밖에 요르단 푸제이즈 풍력 사업, 이집트 수에즈만 풍력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고 발전용 원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해외 자원 개발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국내 4대 정유사에 속하는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9위와 11위에 머무르며 성장 잠재력을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