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로또 열풍 현장을 가다

‘내가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이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해 국내 복권의 총 판매액이 3조 원을 넘어섰다.

‘고통 없는 세금’으로 불리듯 복권 판매로 거둬들인 수조 원의 수익금은 매년 국민주택기금·문화재보호기금 등 정부의 각종 공익사업의 밑천으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사행산업을 조장한다는 비난에 각종 규제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당분간은 ‘시장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1등만 17번 배출… 로또 명당에서는 무슨 일이?
로또복권(이하 ‘로또’)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분의 1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진 고속도로에 떨어뜨린 좁쌀을 찾는 격이다’라고 하지만 2002년 12월에 출시된 로또의 대박 행운을 총 2962명(1~522회차 누적, 나눔로또 제공)이나 누렸다.

전체 성인 인구의 0.007%에 불과하지만 ‘행운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오늘도 많은 이들이 로또를 산다. 서민들 가운데에서는 로또를 상류 사회로 편입할 수 있는 급행열차 티켓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5년 전부터 매주 로또를 사고 있다는 직장인 이구연(가명·32) 씨는 “호주 유학 이후 현실로 돌아오니 너무 갑갑해 복권을 사기 시작했다.

복권이야말로 혈연·학연·지연을 떠나 가장 공정하게 승자가 결정되는 게임이라서 좋다.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는데 모아둔 돈이 너무 없어 로또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행되는 전체 복권의 판매 수익은 2011년 3조290억 원, 2012년 3조2000억 원이다. 이는 2003년 ‘로또 광풍’이 불던 때와 비슷한 규모다.



로또로 2962명 인생 역전

복권은 적은 돈으로 인생 역전의 희망을 품게 하고 생활 속 기부 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목소리와 함께 일확천금을 노리게 하는 분위기를 조장하고 여타의 사행산업에 빠져들게 하는 가교가 된다는 비판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상계동의 스파 편의점은 로또 1등이 무려 17번이나 나와 이른바 로또 명당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기자는 설 연휴가 끝난 2월 12일 이곳을 찾았는데 한낮임에도 편의점 안은 로또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름은 편의점이지만 몇 가지 음료수만 구비해 놓았을 뿐 대부분은 복권을 구입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듯 했다.

17번의 1등 가운데 수동은 단 3번에 불과하다 보니 대개는 ‘자동’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엄청난 행운을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을 단 돈 1000원(1게임당)과 바꾸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5초면 충분했다. 계산하던 한 직원은 매주 약 4만~5만 명 정도가 로또를 사기 위해 이곳에 몰려든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손님이 적은 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설이 끝난 직후라 유난히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설 전에 회사에서 보너스도 받았을 테고 새해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고 찾아온 것 같다”는 것이다. 이월 금액이 많이 걸린 회차에는 가게 밖으로 200m 이상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불만을 갖는 이들은 적다고 했다.

손님 가운데 대다수는 남자였다. 20대의 젊은 청년들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연령을 막론했다. 편안한 등산복 차림의 중년 부부, 작업복 차림에 잠시 들른 것 같은 40대의 직장인과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찾은 이들 등등. 아이와 함께 온 가정주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주변에 주공 아파트 등 대규모 주택 단지가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유동인구 또한 많았다.

한 50대 남성은 “경기도 안산에서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왔다. 올해에는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어 목돈이 필요한데, 오늘 산 로또가 꼭 1등에 당첨됐으면 좋겠다”며 가게 앞에서 자신의 휴대 전화 카메라를 이용해 기념 촬영까지 해갔다. 가게 안에서 수동으로 번호를 기입하는 이들은 괜스레 부정을 탈까봐 우려돼 기자와의 대화도 피하려는 눈치였다.

이전에 1등에 당첨된 숫자들이 적힌 게시물을 신중히 살펴보면서 6개의 번호를 선택하는 모습에서는 일종의 의식 같은 ‘엄숙함’마저 엿보이기도 했다. 한 택배운전사가 급히 편의점에 뛰어들어와 로또를 사가기도 했다.
1등만 17번 배출… 로또 명당에서는 무슨 일이?
로또가 전체 복권 매출액의 90%

배달하러 온 줄 알았는데 로또를 구입한 것이냐며 기자가 말을 걸자 “지금 근무 중에 몰래 복권을 사러 온 건데 민망하게 왜 아는 척하느냐(웃음)? 올해는 운수 대통해 가게도 하나 차리고 아내랑 더 따뜻한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며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득달같이 사라졌다.

로또 명당으로 소문난 후 사장의 처남·동생 등 가족들이 이곳에 투입돼 일하고 있다는 스파 편의점에서 전국 최다로 1등이 배출되는 이유를 묻자 한 직원은 “수락산·도봉산·불암산·북한산 등 정기가 좋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 일단 위치가 좋다. 또한 여기서 로또를 사는 분들이 정말 당첨됐으면 좋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판매하고 있어 그 바람이 전달되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복권 가게가 호황인 것은 경제 불황의 또 다른 이름 아니겠느냐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우리 같은 월급쟁이가 무슨 수로 수십억 원을 버나. 로또 말고는 대안이 없지 않나.” 복권 몇 장을 사서 나오는 한 남성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1등에 당첨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일단 빚 좀 갚고 싶다. 가족과 해외여행도 다니고 싶다. 나머지는 예금으로 넣어두고 이자도 차곡차곡 모을 것”이라며 이내 밝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기자가 찾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을 비롯해 부산 동구 범일동 부일카서비스, 경기 용인시 기흥구 로또휴게소 등 이른바 로또 명당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손님들로 날마다 북적이고 있다. 국내 로또 10년의 역사상 가장 높은 당첨금인 약 407억 원의 주인공을 탄생시킨 춘천 명동의 한 가판대 또한 로또를 사는 이들에겐 꼭 한 번 들러야 할 ‘성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 로또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로또를 사는 사람들보다 판매점 주인이 로또를 맞는 꼴이다. 해마다 도대체 얼마를 벌어들이는 것이냐’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로또에 당첨되는 대신 복권 판매점을 창업하고 싶은 이들도 많지만 원한다고 아무나 차릴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발행 기관인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로또 등을 파는 온라인 판매점의 판매인 추가 선정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2013년 2월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복권은 총 12종이다. 크게 온라인·인쇄·전자복권이 있으며 유사 복권으로 분류되는 스포츠토토도 추가 운영 중이다(표 참조).
1등만 17번 배출… 로또 명당에서는 무슨 일이?
이 가운데 인기가 가장 높은 복권은 역시 ‘로또’로, 지난해에도 로또의 판매액이 복권 전체 매출액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등에 당첨만 되면 어마어마한 돈을 거머쥘 수 있다고 해서 ‘인생 역전’이라는 별칭이 붙은 로또는 지난해 12월, 발행 10주년을 맞았다. 10년 치의 누적 판매액(1~522회차 기준)은 27조519억 원. 우리나라의 19세 이상 성인 한 명이 로또를 사는데 약 73만 원어치씩을 지불했다는 얘기다. 그간 지급한 총 당첨금만 6조350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로또복권의 초창기에는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불거지기도 했다.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자 당첨금 이월을 거듭하다 보니 당첨금 액수가 수백억 원에 이르면서 전국적으로 ‘로또 광풍’이 불었다. 로또복권 수탁 사업자인 나눔로또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로또 판매액이 2003년 3조8031억 원, 2004년 3조2803억 원으로 당시의 뜨거운 로또 열풍을 나타내고 있다. 2003년엔 빚까지 얻어 3000만 원 정도의 로또를 샀다가 당첨금이 적자 한 40대 남성이 지하철에서 투신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로또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거나 삶의 의욕을 잃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사행산업을 부추긴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정부는 2004년부터 복권 발행 기관을 기획재정부 산하(국무총리 산하에서 출발, 2008년에 변경)의 복권위원회로 단일화했다.

당첨금의 이월 횟수 또한 단 2회로 제한했고 1인이 한 번에 살 수 있는 상한액도 10만 원으로, 게임의 가격 또한 2000원에서 1000원으로 인하됐다. 정부의 이 같은 규제 정책으로 로또 열기는 2004년 이후 한풀 꺾였지만 금융 위기가 터진 2009년 이후부터 꾸준히 증가세로 돌아서는 추세다.

항간에는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복권의 판매액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정확히 수치로 증명된 바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복권이 나타날 때마다 ‘열풍’이 부는 것 같다고 나눔로또의 박정기 과장은 전했다. 그는 “2002년 12월에 발행된 로또를 비롯해 2011년 7월에 출시된 연금복권 등이 복권의 판매액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로또 1등 당첨금이 이월(463회 차, 2011년 10월 15일)됐을 때에도 판매액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1등만 17번 배출… 로또 명당에서는 무슨 일이?
1등만 17번 배출… 로또 명당에서는 무슨 일이?
40대 가장이 확률 가장 높아

그렇다면 1등에 당첨되는 이들은 과연 누구 일까. 1등 당첨자의 신상 통계 결과 서울·경기 지역에 84㎡(30평형 대) 이하 자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월평균 소득 300만 원 미만, 행정·사무직 종사, 대학교 졸업 학력의 40대 기혼 남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 동료이거나 ‘옆집 아저씨’가 행운의 주인공이었던 것. 이는 2월 5일 나눔로또가 2012년(475~526회차) 한 해 동안 로또 1등에 당첨된 346명 중 1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구두 설문 조사에서 밝혀졌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사례에 비춰 볼 때도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복권을 구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에 도입된 연금복권도 퇴직 후 노후 자금 등을 원하는 40대와 50대 직장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고 복권위원회는 밝혔다.

이에 대해 ‘눈물은 남자를 살린다’의 저자인 이홍식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는 “40, 50대 남성들은 자녀들의 교육비도 많이 들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본인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에 대한 불안감도 가장 크다. 당장은 불안을 극복할만한 실질적 대안이 없기 때문에 복권에 희망을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성과나 경제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중년 남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돈이다. 이들이 복권을 가장 많이 사는 계층인 이유는 부의 축적을 통해 가정이나 직장에서 존경 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로또에 당첨되면 세금은 얼마를 내야 할까. 5만원 초과~3억 원 이하일 때엔 22%, 3억 원을 넘을 때는 33%를 내야 한다. 지난해에 132억 원이라는 최고 당첨금을 받은 행운의 주인공은 세금을 제외하고 약 88억 원을 지급 받았다.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증여세다. 대개 당첨금을 주변에 나눠주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자는 6억 원, 부모님이나 성년인 자녀는 3000만 원, 미성년자인 자녀는 1500만 원,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500만 원까지 증여세 없이 줄 수 있다.
1등만 17번 배출… 로또 명당에서는 무슨 일이?
규제 탓 판매액 OECD 3분의 1 수준

한편 지난해 10월 충북대 사회과학연구소가 발표한 ‘국내 복권 시장 적정 규모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우리나라의 연평균 1인당 복권 판매액은 48달러(약 5만2000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인당 165달러, 아시아 8개국(중국·홍콩·일본 등)의 평균인 152달러에 비해 훨씬 적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권 판매액 비중도 OECD와 아시아 평균이 각각 0.43%, 0.62%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0.24%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해당 연구를 주도한 이연호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에서는 복권에 대한 사행성 비난 여론이 거세며 총량 규제 등 복권 판매에 대한 규제 정책으로 인해 복권 판매액이 OECD 국가들이나 아시아권의 수준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사행성을 부추기는 관련 산업의 과도한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매년 복권·카지노·소싸움 등 약 7개 사행산업의 매출 총량을 정한다. 지난해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정한 복권 판매 총량은 2조8753억 원이었다. 2013년의 총량은 현재까지 미정이다.

이 교수는 경제 규모와 소득수준, 성별 구성, 연령별 분포, 재정 상태 등을 감안했을 때 단기적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적정 복권 판매액을 76~78달러, 지금보다 약 1.7배 정도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로또 발행 초기에는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병폐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2회로 제한된 이월 횟수, 1000원으로 인하된 복권의 판매 가격 등에 대한 규제 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환경기금’ 등과 같은 일종의 ‘목적 복권’ 등을 발행해 부족한 사회적 재원을 충당하는데 복권의 수익금을 활용, 일반인들에게 소외 계층 기부 등 복지에 참여하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복권위원회 기금사업과의 정석철 사무관은 복권 판매액으로 조성된 기금을 올 한 해 공익사업에 9371억 원, 법정 배분 사업에 5232억 원 정도 사용한다고 밝혔다.



글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