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의 역설, 중국의 춘제(春節:설) 폭죽놀이 논란, 10년 만에 재현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공포의 악몽, 세계 1위 무역 대국 등극….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이들 뉴스를 관통하는 이슈가 있다.

올 들어 베이징 등 중국의 중동부 지역을 엄습한 스모그다. 지난 1월에만 베이징에서 닷새를 제외하곤 스모그가 계속 발생했다. 베이징처럼 다른 중동부 지역에서도 호흡기 환자 급증, 고속도로 봉쇄, 항공편 결항 등의 소식이 생중계식으로 TV를 통해 보도됐다. 이런 스모그가 뒤덮은 지역이 한반도의 6.5배인 143만㎢에 달했다.
[중국] 커지는 스모그 공포 , 곳곳서 고통 호소…성장 방식 변화 ‘ 필요’
[중국] 커지는 스모그 공포 , 곳곳서 고통 호소…성장 방식 변화 ‘ 필요’
LA와 런던 스모그 혼합판 양상

중국 언론에선 1948년 로스앤젤레스(LA) 스모그와 1952년 런던 스모그를 소개하며 오염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런던 스모그로 당시 닷새 동안 무려 1만2000여 명이 사망했다. 베이징 스모그는 자동차 배출 가스가 주요인인 LA 스모그와 석탄 난방 때문에 발생한 오염 물질로 생긴 런던 스모그의 혼합판이다.

중국과학원에 따르면 베이징 대기 오염원의 25%는 자동차 배출 가스이고 석탄 위주의 난방과 인근 지역에서 들어오는 오염 물질이 각각 20%를 차지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급증한 고층 빌딩 때문에 스모그가 쉽사리 흩어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올해 춘제를 앞두고 불거진 폭죽놀이 논란도 스모그 때문이다. 중국청년보는 섣달 그믐날인 지난 2월 9일 논평에서 “폭죽을 버려 이성 시민이 되자”고 주장했다. 칭화대 등의 환경보호 전문가들이 폭죽 금지를 포함해 대기오염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한 데 이은 것이다.

2003년 중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베이징 사스의 악몽이 재현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 기업 주재원들이 베이징 근무를 기피한다거나 베이징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종난산 중국공정원 원사는 “대기오염이 사스보다 더 무섭다”며 베이징에서 10년간 폐암 증가율이 60%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의 대응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행정책임제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베이징시가 1월 29일 화상 전화 회의를 통해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라며 대응 조치를 발표한 게 네티즌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지도자의 지시까지 기다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지도자보다 시민의 고통을 먼저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관료에게 책임을 묻는 행정책임제가 아직도 정착되지 못했다는 한탄이 이어진다.

중국에선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으로 성장 방식의 변화를 꼽는다. 중국이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무역 대국으로 올라섰다는 뉴스가 빛이 바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의 저명 경제학자 우징롄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학술위원회 부주임은 저부가가치 수출로 고성장해 온 중국은 그 대가로 과도하게 에너지를 소비해 스모그 같은 환경오염 문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외국 기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최근 가솔린 등 정유 제품의 품질 상향 결정으로 당장 2014년까지 추가 창출될 탈황 설비 시장 규모만 500억 위안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쿄도는 베이징 시장 앞으로 보낸 친필 서신에서 기술을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기민함이 한국에도 아쉬운 때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