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커스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가면 세계적 금융그룹 AIG가 지난해 11월 완공한 지상 55층 규모의 IFC 빌딩이 우뚝 서 있다.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에 눈길이 가지만 출근길에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전체 임대 면적 32만㎡ 중 가장 먼저 지어진 원(one) IFC 빌딩뿐이다. 30개 기업이 입주를 마친 원 IFC 빌딩과 달리 바로 옆에 있는 투(two), 스리(three) IFC의 임대율은 한 자릿수로 극히 저조하다. 스리 IFC는 입주 기업이 아예 없어 2~3명의 경비원만 썰렁하게 빈 빌딩을 지키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11.11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11.11
불 꺼진 여의도 오피스 빌딩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여의도에 밀집한 금융 업계의 상황이 악화된 탓에 상당수의 증권사나 금융사가 여의도에서 짐을 싸고 나왔다. 가뜩이나 빈 사무실이 많은데 축구장 약 40개가 넘는 총면적 32만㎡의 공룡 빌딩인 IFC가 들어서면서 공실률을 치솟게 했다.

게다가 여의도에는 올 7월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짓고 있는 지상 50층 규모의 FKI타워(총면적 16만9000㎡)가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라 2013년에도 공실률은 10% 전후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물건이 빠지는 흐름은 더딘데 대형 공급이 줄을 잇다 보니 공실률이 고공 행진하게 된 것이다.

1월 30일 오피스 투자 전문 업체 교보리얼코가 지난해 12월 총면적 3300㎡ 이상, 지상 8층 이상의 800여 개 오피스 빌딩을 대상으로 한 공실 및 임대표 현황 조사에 따르면 여의도 일대 오피스의 2012년 4분기 공실률은 전 분기에 비해 0.41% 포인트 하락한 11.14%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분기에 공급된 투 IFC에 한국의료재단과 AIGKRED 등이 들어오면서 약 1만1200㎡, HP빌딩에 알리안츠생명이 들어오며 약 3800㎡의 공실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분기 서울 지역 오피스 공실률 6.23%, 도심 비즈니스 구역(종로·을지로·남대문)의 공실률 6.31%, 강남권 공실률 5.26% 등에 비하면 현저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분기 여의도권의 공실률 4.64%와 비교해도 무려 2.4배나 증가했다. 교보리얼코의 관계자는 “여의도 일대는 2006년 2분기부터 지난해까지 사실상 빈 사무실이 없을 정도로 1~3%대의 낮은 공실률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한파에다 대형 오피스 빌딩 공급 물량이 넘치다 보니 공실률 최고라는 불명예를 얻은 듯하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적어도 공실률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4분기 서울 지역 오피스의 공실률은 전 분기보다 0.65% 포인트 상승했다. 도심 비즈니스 구역의 공실률 또한 전 분기보다 0.28% 포인트 올랐다. 이는 도심 곳곳을 임차해 사용하던 서울시청 관계 부서가 2012년 9월 완공된 서울시청 신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남대문로의 상공회의소빌딩, 을지로의 재능빌딩 등이 비었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 파이낸스센터의 필립모리스, RBS은행·증권 등이 타 권역으로 이전 또는 규모를 줄이면서 약 9100㎡의 공실이 발생하게 됐다. 교보리얼코 측은 서울 지역 빌딩의 공실률 고공 행진은 올해 1분기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3년 1분기에 신규 공급 물량이 2012년 4분기에 비해 약 4배 이상 증가하기 때문이다. 공급이 집중되는 용산과 마포구 상암동을 중심으로 공실률이 큰 폭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오피스 빌딩 시장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강남권의 사정은 어떨까.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강남권 오피스 임대 시장의 공실률은 테헤란로변 신축 오피스 공급으로 전 분기에 비해 0.28% 포인트 소폭 오른 5.26%로 조사됐다. 삼성동 EK-타워(1만8900㎡), 역삼동 K오피스(1만5300㎡) 등의 신규 공급 및 역삼동 푸르덴셜타워의 1만2000㎡ 공실 증가의 영향으로 공실률이 상승했다. 그나마 역삼동 소재 큰길타워·본솔빌딩·PMK빌딩 등은 보험사 자산설계센터(FP) 지점 임차 계약을 통해 500~1500㎡ 규모의 공실을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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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강남·공급 증가…‘렌트프리’ 묘책 먹히나

대체로 4분기 강남의 주요 도로변인 테헤란로의 공실률은 4%대, 강남대로는 5%대이지만 강남권 중대형 빌딩의 공실률은 이보다 더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테헤란로에 즐비한 대기업과 벤처업체들이 주변 지역으로 사옥을 이전하고 신규 오피스 공급이 잇따르면서 당분간 강남 지역에도 불 꺼진 오피스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빈 사무실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강남권의 중소형 빌딩 매입 컨설팅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원빌딩부동산중개의 정동훈 팀장은 “강남권 오피스 빌딩 임대는 경기 불황 및 대기업 계열사 이전 등에 따른 임차 법인의 이탈을 우려해 1년에 1~2개월은 무상으로 임대하는 렌트프리(rent free)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신축 건물은 회의실·대강당·도서관 등을 건물에 설치하고 입주사에 무상으로 제공해 조기 임차와 장기 임차를 유도하고 있다”며 “주로 자산 관리 업체에서 관리하는 대형 빌딩은 표면 임대료는 고정하고 렌트프리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실질적인 임대료(비용)는 낮추고 표면 임대료(수익률)는 다소 인상해 임대료 상승률의 하락 폭이 크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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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로 표면 임대료가 떨어지면 빌딩 가격(부동산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져 자산 가치의 증진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고 한 번 인하한 임대료를 다시 올리기가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실질적인 비용을 낮춰 주는 계약을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자산 관리 업체 신영에셋이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서울 및 분당에 있는 총면적 6600㎡ 이상 또는 10층 이상의 880개 오피스 빌딩을 대상으로 1월 30일 조사 발표한 ‘임대 정보 및 공실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동일타워, 수서효성빌딩 및 SPC 양재빌딩 등 다수의 중대형 빌딩이 공급되면서 4%대 중·후반에서 5% 초반까지 공실률이 상승됐지만 강남의 2012년 연간 오피스 빌딩 거래 건수가 24건에 달할 정도로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임대시장 역시 조만간 안정세를 되찾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12년 연말에 공급될 예정이었던 도곡동 오피스가 2013년 연초로 이월돼 준공될 예정이고 총면적 9만9217㎡의 향군 잠실타워가 역시 1분기 중에 공급될 예정이지만 이들 빌딩은 삼성과 LG 등 대기업 계열사가 대부분을 사용할 예정이어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신영에셋의 관계자는 또한 “저금리 추세 장기화에 따라 실물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더욱 증가할 전망이며 이에 따라 강남권을 중심으로 중소형 빌딩에 대한 실사용 법인 및 개인 투자자들의 수요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낙관론을 펼쳤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