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6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경제 민주화와 관련한 대선 공약을 발표하기 위해 들어섰다. 공약을 발표하는 내내 경제 민주화 관련 공약을 최종 총괄했던 김종인 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진영 당 정책위 의장과 후보 비서실 소속의 안종범 의원이 박 후보 옆에 자리했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하고 박 후보가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서면서 당 쇄신을 위해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인물이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박근혜 후보와 김종인 위원장은 사실 계약적 관계에 가깝다”며 “박 후보는 대선을 위해 김 위원장을 내세워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고 김 위원장은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의 공약에 경제 민주화 정책을 넣을 수 있어 서로 윈-윈 관계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김 위원장에게 대선 기간에 접어들자 공약의 전권을 쥐어준 건 박 후보다. 대선 공약을 총괄하는 자리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에 김 위원장을 앉히고 김 위원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산하에 경제민주화추진단을 만들어 단장 자리도 겸했다. 그의 추진력이 부딪칠 때마다 박 후보는 김 위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막상 대선 공약 발표가 가까워지자 둘 사이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김 위원장이 보수 정당으로선 받기 힘든 경제 민주화 공약을 마련하면서부터다. 박 후보가 꾸준히 입장을 밝혀 온 대기업의 기존 순환 출자에 대한 허용에 대해 규제로 바꾸고 대기업집단법을 제정하며 대기업 총수가 피의자가 됐을 때 국민들이 배심원이 되는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의무화하고 학습지 교사, 보험 판매사, 화물차 사업주 등에 대한 노동3권을 보장한다는 내용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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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화 공약 갈등…정치적 결별

이런 공약의 최종안은 이달 초 박 후보를 김 위원장이 직접 만나 전달했다. 경제 민주화 공약을 제외하면 직접 전달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김 위원장이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이 공약안을 받은 박 후보는 2주일 정도 고민했다.

박 후보는 지난 11월 11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김 위원장을 불렀다. 경제 민주화 공약을 상의하는 자리로 알고 나간 김 위원장은 자리에 가보니 박 후보를 비롯해 황우여 당 대표, 진영 정책위의장, 서병수 사무총장,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이정현 공보단장, 이학재 비서실장, 안종범·강석훈 의원 등을 배석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도 이날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지역구인 부산 일정으로 자리가 파할 때쯤에야 도착했다. 김 위원장 한 명을 두고 11명이 둘러싼 형세였다.

이 자리에서 박 후보는 “내가 로비를 받을 사람이냐. 15년 동안 정치하면서 한 번도 로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김 위원장을 나무랐다. 김 위원장이 이틀 전 한 방송에 나와 경제 민주화 공약 확정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까 박근혜 후보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로비도 있고 하니까…”라고 말한 데에 대한 항의였다.

이후 김 위원장은 당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후보나 경제 민주화 공약에 대한 발언도 삼갔다. 결국 11월 15일 최종 공약 확정을 논의하는 공약위원회 회의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제 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는 11월 16일엔 박 후보 옆 자리 대신 전남 담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과 박 후보의 10개월간의 밀월 관계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