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기 침체에 대비한 대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새해 경영계획 조사는 대기업들의 비관적인 내년 경기 전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 응답 기업 중 36%가 내년에 투자를 줄일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는 작년 말 같은 조사에서 새해 투자 축소 계획을 밝힌 비율(18%)의 두 배에 해당한다.

소폭 축소가 27%, 대폭 축소가 9%를 차지했다. 경영 환경에 대해서는 63%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 29%가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더 나아질 것’으로 본 기업은 9%에 불과했다.

경제성장률 전망도 작년보다 하락했다. 지난해 말 조사에서는 86%가 3% 이상 성장을 예상한 반면 올해는 응답 기업의 60%가 2%대 성장을 점쳤다. 내년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85%가 ‘없다’고 했지만 15%는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 투자 심리 ‘최악’ 600대 기업 설문…내년 투자 축소 36%
손익분기 환율 1050~1100원

대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면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최근 3분기 투자설명회(IR)에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공통적인 경영 화두는 ‘투자 축소’였다.

매년 투자를 늘려온 삼성도 내년 상황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착공한 화성사업장 내 시스템반도체 17라인 건설공사를 중단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건설 중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A3 라인 공사를 중단하고 대신 기존 A2 공장의 남은 공간에 확장 라인(A2E)을 짓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올해 중국 3공장, 브라질 공장을 준공한 만큼 내년에는 신규 투자를 줄일 계획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11월 9일 브라질 공장 준공식에서 “해외 생산 기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올해 하이닉스 인수를 포함해 사상 최대인 19조 원을 투자한 SK도 내년엔 투자를 소폭 줄일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지며 최태원 SK 회장은 SK경영경제연구소 등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1주일에 수십 건씩 검토하며 경영진과 사업 계획을 짜고 있다.

투자 축소뿐만 아니라 구조조정도 가시화하고 있다. 이미 연말을 앞두고 르노삼성·현대중공업·삼성카드·삼성화재·씨티은행·SK커뮤니케이션즈 등이 명예퇴직을 받았거나 받고 있다. 연말 인사 태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도 불안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이 1080원대까지 하락한 상태다. 전경련 조사에서 58%의 기업이 내년 환율이 1050~110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측했고 33%는 1000~1050원대를 예상했다. 손익분기 환율을 묻는 질문에 48%가 1050~1100원, 32%가 1000~1050원이라고 답한 것을 감안하면 수출을 해봐야 남는 게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예기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달러당 1070원대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내년은 환율 등의 영향으로 올해보다 좋지 못할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판단해 최대한 지출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