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생활의 지킴이’ 국민연금이 창립 25주년을 맞았다.

설립 이듬해인 1988년 가입자 420만 명, 기금 5279억 원에 불과했던 국민연금은 어느새 2000만 명의 가입자와 380조 원의 기금을 보유한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했다.

가입자는 4.8배, 기금은 무려 719.8배 불어난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제 세계 금융시장에서 주목받는 ‘큰손’이다. 계속된 경제 위기 속에서도 발 빠른 해외 투자로 주요 연·기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국민연금의 현주소를 점검했다.
‘100세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 국민연금 투자 성적표
국민연금의 역사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말 국민연금법이 제정됐으며 이에 근거해 1987년 9월 국민연금공단이 설립됐다. 본격적인 국민연금 서비스는 다음해인 1988년부터 시작됐다. 운영 첫해인 1988년 말 국민연금 가입자는 420만 명에 불과했고 기금 적립금은 5279억 원으로 1조 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도입 초기 기금 고갈을 둘러싼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한때 전 국민적인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후 대비 수단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국민연금의 몸값은 더욱 치솟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국민연금은 몰라보게 성장했다. 지난 8월 말 자산 규모가 380조 원을 돌파하면서 네덜란드 공적연금(ABP)을 제치고 세계 3위 연·기금으로 올라섰다. 지난 6월 말까지만 해도 자산 규모로 본 세계 연·기금 순위는 일본 공적연금(GPIF)이 1551조 원으로 1위를 달렸고 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GPFG)이 685조 원으로 2위, 네덜란드 ABP가 378조 원으로 3위, 국민연금이 367조 원으로 4위를 치지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이런 순위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경제구조가 이미 성숙기를 지났고 인구 고령화로 연금 증가 속도가 정체된 선진 연·기금에 비해 국민연금은 매년 적립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젊은 연금’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자산 규모는 아직도 성장 초입 단계다. 국민연금 기금은 2020년에 1000조 원, 2043년에 2460조 원을 각각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이 일본 GPIF를 제치고 세계 1위 연·기금에 등극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문제는 투자수익률을 끌어올리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은 기금 고갈과 직결되는 문제다.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면 그만큼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100세 시대’ 대한민국의 미래, 국민연금 투자 성적표
최근 3년간 삼성그룹 순이익 앞질러

과거 국민연금은 안정적인 채권 투자에만 주력해 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채권에 돈을 묻어 놓으면 안정적으로 10% 이상의 수익을 꼬박꼬박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저금리로 지금은 2~3%대 수익률에 만족해야 한다. 국내에서 발행된 채권의 15.3%를 이미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어 이를 더 늘리기도 쉽지 않다.

사정은 주식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만 62조3000억 원을 투자하고 있는 ‘큰손’이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모두 합한 시가총액이 1174조 원(2012년 6월 말)에 불과해 국내 주식시장이 국민연금에는 너무 좁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벌닷컴 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10대 그룹 상장사 주식을 4%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기업 총수 지분율의 두 배나 되는 규모다. 총수가 있는 자산 순위 10대 그룹 상장사 93개사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지난 6월 말 현재 평균 4.14%로 집계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작년 11월 말 기준으로 국내 567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전체 상장 기업(1819개) 중 3분의 1에 가까운 기업의 주주인 셈이다. 이 가운데 5% 이상 지분 보유 기업만 157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확대를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2009년 전광우 이사장 취임 이후 해외 투자를 꾸준히 늘려 왔다. 국민연금은 2012년 8월 현재 영국을 포함해 일본·호주·독일·프랑스·미국에 상업용 빌딩과 쇼핑몰·공항·파이프라인 등 13개의 투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16조1000억 원에 불과하던 해외 투자 규모도 56조3000억 원(2012년 6월 말)으로 3배 이상 불어났다. 여기에는 부동산·인프라 등 대체 투자는 물론 해외 채권과 주식도 포함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2009년부터 3년간 자산 운용으로 64조 원을 벌어들였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이 휴대전화·반도체·선박 등을 팔아 남긴 순이익(62조5000억 원)을 앞지르는 규모다. 국민연금이 주요 연·기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일등 공신은 바로 해외 투자였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