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모시기는 절실한 미션이다. 그만큼 사장 인재의 부족 현상이 심화됐다. NHK는 흑자 기업인데도 후임 사장이 없어 폐업하는 기업이 연간 7만 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일본 기업의 60% 이상이 후임 사장 때문에 고민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중소(중견)기업일수록 사장 실종은 더 심하다.
사장직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신문 광고로 사장 모집을 알리는 대기업도 적지 않다. 연봉은 부르는 게 값이다. 어차피 능력을 갖춘 CEO라면 충분한 이익을 거둬들일 것이란 판단이다. 사장 공모 광고를 낸 건설 자재 메이커 ‘도요텍스’는 “기업 발전을 위해 사외에서 인재를 모셔오자는 취지”라며 “연봉은 크게 상관이 없다”고 했다.
사장을 찾아달라는 의뢰 기업도 많다. 인재 구인 회사에는 차세대 사장 후보 발굴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필요조건은 예측 불가능의 경영 동향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장상이다.
CEO 품귀 현상의 이유는 뭘까.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사장의 자격 조건 때문이다. 글로벌화는 급속한 상황 변화가 일상적이다. 해외 전략은 임기응변이 필수다. 그런데 그간 일본의 사장 양성 풍토는 좀 달랐다. 전후 재벌 해체를 계기로 소유·지배구조가 변하면서 내부 승진이 CEO 배출의 유력 관행으로 정착됐다.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장기간 직무 전환을 거쳐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갔다. 전문 경영인의 외부 수혈이 일상다반사인 미국형과는 구분된다. 하지만 최근 국경 장벽의 해소와 글로벌 경쟁 격화가 반복되면서 내부 승진 CEO가 한계에 달했다. 내부 지향적인 대응 지체가 대표적이다. 반면 금융 위기 이후 꿈쩍도 하지 않는 내수 침체의 대안 차원에서 해외 공략은 필수불가결하다. 이 때문에 사장 공모의 자격 조건엔 공통점이 있다. 전통적인 내부 승진 CEO와 구분되는 역량 보유자를 선호한다. 이를테면 신규 수요를 일찍 읽어내고 라이벌보다 뛰어난 협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적절한 설비 투자를 결정하고 무엇보다 해외 사정에 밝은 게 필수다.
중요한 건 해외 공략에서 확인되듯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이다. 오픈 마인드의 필요다. 이는 장기·안정적인 경영 환경에 익숙한 사내 승진 CEO가 위험 수용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즉 ‘경영+해외’라는 공통 경험의 보유자가 선호된다. 이는 대다수 일본 기업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다. 경영 교육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해외 정통파가 적기 때문이다.
대안은 구체적이다. 시세이도는 아예 인사제도를 개혁하기로 했다. 헤드헌팅을 통해 외부에서 인사부장을 뽑아 새로운 인사 개혁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국내외 자회사에서 일정 기준을 갖춘 사장 후보자를 선발해 일찍부터 경영 능력을 심화시키려는 시도다. 소프트뱅크는 특별 학교까지 만들었다. 사장 후보자를 조기에 육성해 체계적으로 발굴하기 위해서다.
장기간에 걸쳐 기업 경영을 집중적으로 가르침으로써 후임 사장 후보군을 확보하자는 차원이다. 손정의 회장이 2년 전 다양한 인재를 모아 경영 노하우를 가르치고 자신의 후계자를 키우려고 개교했다. 정보기술(IT) 기술자에서부터 현역 관료와 의사 등 사내외에서 300명이 모여들었다. 매년 성적순으로 하위 20%를 교체해 최종 인재가 발탁되는 시스템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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