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예술 공연과 가난한 젊은이의 거리였던 대학로가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이제 대학로는 서울 시내에서 ‘비싼 길’ 중 하나다. 부동산 전문 업체 부동산114가 지난 8월 3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로 상권 중 하나인 동숭동의 상가 평균 매매가격은 8000만 원으로, 서울시 행정구역 중 용산동3가 다음인 2위를 차지했다.
2006년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도드라진다. 2006년 동숭동 상가 평균 매매가격은 5333만 원으로, 행정구역 중 6위였다. 2006년과 2012년의 서울시 상가 평균 매매가격은 각각 2364만 원, 2886만 원으로 522만 원 늘었다. 같은 기간 동숭동 상권의 가격이 3000만 원 정도 오른 것과 비교하면 대학로 상권의 거래 가격이 크게 인상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상가 매매가격뿐만 아니라 권리금·보증금·임대료도 상승했다. 점포라인에 따르면 올해 3.3㎡당 대학로 상가의 평균 보증금은 183만2158원, 권리금은 347만5165원, 월세는 9만640원이다. 2008년 이후 소폭 감소하다가 2010년 이후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학로 상권 가격이 상승한 가장 큰 요인은 ‘안테나 숍’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안테나 숍은 주요 고객층의 동향이나 트렌드 변화 등을 감지하는 가게를 말한다. 이 때문에 수익성보다 홍보나 마케팅, 자료 수집 등이 목적이어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안테나 숍이 만들어지곤 한다. 대학로는 하루 유동인구가 10만여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연령층은 10~40대가 주축이라 기업들은 이곳에 안테나 숍을 세워 소비 동향을 파악하곤 한다. 이 때문에 대학로는 ‘1호점’이 많은 편이다. 유동인구 10만…안테나 숍 집중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성균관대로 이어지는 거리에 있는 ‘뚜레쥬르 카페’는 제1호 카페형 뚜레쥬르다. 혜화역 1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에 있는 파리크라상 또한 대학로가 제1호점으로, 파리바게뜨의 카페형이다. 베스킨라빈스·미스터도넛·놀부부대찌개 등도 대학로에 첫 가게를 열었다.
장용훈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유행에 민감한 젊은 계층이 가장 많이 모이는 지역 중 하나인 대학로는 대형 프랜차이즈나 대기업 직영 매장이 가장 우선적으로 입점을 고려하는 곳”이라며 “경쟁하듯 상권에 진입하기 때문에 기존 건물의 상대적인 가치가 상승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자연히 상가 매매가격이나 임대료 등도 올랐다. 대학로에서 10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해 온 박덕규 씽크탱크부동산 사장은 임대료 인상의 첫 시작으로 2000년 ‘스타벅스 입점’을 꼽았다. 대학로 스타벅스는 1999년 이대점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생긴 ‘제2호 스타벅스’다.
최초에 대학로 스타벅스가 있던 자리는 흥사단 건물 1층으로, 지금은 의류 매장 톱텐(Top10)이 들어와 있다. 박 사장은 “맨 처음 스타벅스가 흥사단 자리로 들어오려고 했을 때 흥사단 쪽에서 ‘해외 상업 업체’란 이유로 입점을 반대했었다”며 “하지만 스타벅스 측에서 비싼 임대료를 제시했기 때문에 들어오게 됐고 그 이후 대학로 임대료의 기준이 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박 사장은 현재도 대학로 임대료를 정하는 게 기업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주축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카페들은 비싼 임대료를 주고 들어와도 그에 상응하는 이윤을 얻을 수 있어 비싼 가격에도 계약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소상공인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대학로 카페는 2011년에서 2012년 한 해에만 47개에서 64개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대학로의 ‘토박이’들이 떠나가는 것도 상가 매매가격 상승의 한 원인이다. 이재승 팀장은 “대학로는 배짱 없는 사람들은 텃세 때문에 장사를 못할 정도로 토박이들이 강한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토박이들이 최근 들어 점점 대학로 건물을 파는 추세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박덕규 사장은 “예전에 대학로 자리가 서울대 문리대 자리였던 만큼 대학로 건물주는 서울대와 관련된 사람이라든가 공연 연극계 종사자들이 많아 임차 안정성이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건물주들이 바뀌면서 임차 안정성보다 비싼 임대료를 얻을 수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선호하고 그런 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서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은 대학로 상권에서 버티지 못해 나가고 그 자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채워 가는 형국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로를 보아 왔다는 김효원(26) 씨는 “고등학생 때 대학로에 놀러왔을 때는 프랜차이즈보다 작고 독특한 가게들이 많아 놀러가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학로만의 색깔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늘어나는 것은 대학로 상권만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학로가 다른 곳에 비해 가격 상승 폭이 큰 이유는 ‘제한적 상권 확장성’ 때문이다. 대학로는 성균관대·혜화동로터리·이화동사거리·낙산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학로 지도’ 그 밖으로는 확장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홍대나 종로 등 계속 확장할 수 있는 상권과 다른 지리적 환경을 갖고 있는 셈이다.
또한 대학로는 문화지구로 지정돼 있어 건물의 신축이나 확장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제한적이다. 건물은 높이 25m, 대지 990㎡ 이상의 신축이나 확장을 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심사를 받아야 하고 대부분은 정부에서 허가해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학로에는 유니클로나 자라와 같은 대형 의류 매장이 없다. 업체 관계자들은 들어오고 싶어 하지만 대학로에 그와 같은 의류 업체를 수용할 만한 대지 조건을 갖춘 곳이 없기 때문이다. CGV거리 쪽에서 장사하는 한 업체 사장은 “이 거리의 건물 중 70%는 엘리베이터조차 없다”고 말할 정도다.
이렇듯 제한된 환경에 기업들이 몰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래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던 거리도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대학로 CGV가 있는 옛 농심가 거리 뒤쪽은 최근 들어 ‘소나무길’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상가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박덕규 사장은 “대학로 거리마다 상가들이 들어차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오프(off) 대학로(혜화동로터리에서 한성대 넘어가는 뒤쪽에 상권)’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나 연극 업체들이 ‘오프 대학로’에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는 추세다.
‘오프 대학로’는 말 그대로 ‘인(in) 대학로’의 반대 개념으로, 대학로의 비싼 땅값을 버티지 못한 순수 극단이나 자영업자가 모여서 새로 형성된 상권이다. 혜화동로터리에서 한성대 쪽으로 가는 길 뒤쪽으로 소극장과 작은 카페들이 모여 있다.
2007년만 해도 소극장이 5~6개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인 대학로’의 비싼 땅값 때문에 ‘오프 대학로’에 모이는 극장이나 상점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잡지 ‘연극인’을 발행하는 이진아 편집위원은 ‘오프 대학로’를 “작은 대학로의 느낌이 난다”고 소개했다.
‘오프 대학로’에서 만난 한 사람은 “이곳은 좋은 연극도 많고 호객 행위도 없어 연극을 보고 싶을 때 자주 찾게 된다”며 “연극을 보러 다니길 좋아했는데 대학로가 워낙 복잡해지고 호객 행위에 질려 안 가게 됐다”고 말했다. “정체성과 상업성 동시에 잡아야”
대학로 본연의 모습인 ‘문화 거리’가 사라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소극장 대표들은 대학로에서 영업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하고 소극장들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 보호 조치 등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마로니에 공원 쪽이 대학로 문화지구로 지정되며 그 지역에는 노래방이나 술집 등 유흥 놀이 시설 신규 입점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연극 업체들은 문화지구 지정 규모가 협소해 연극 산업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장사가 안 되니까 일종의 ‘돈이 되는’ 공연을 하는 풍토가 강해졌다. ‘개그콘서트’와 성인용 연극이 그 예다. 실제로 한 연극인 단체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연극 단체들을 상대로 ‘대학로 연극 질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소송을 한 적이 있다.
법원에선 호객 행위도 영업의 하나로 인정하되 대학로 내부에서 자정작용을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연극 업체 사이에서도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다. 대학로 이용객 또한 ‘호객 행위 때문에 불편하다’는 입장과 ‘재밌는 공연을 알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는 입장으로 갈린다.
연극 업체와 소극장 임대인의 불만과 반대로 대학로 건물주들은 ‘문화지구 지정이 개인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상태다. 문화지구 제한 조치 때문에 건물 증축도 하지 못하고 임대료 사업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재승 팀장은 “대학로 건물주들은 소극장을 꺼리지만 대학로 전통이라는 이유로 ‘울며 겨자 먹기식’ 임대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입장들을 모두 모아 대학로 발전을 상의하는 사단법인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가 존재하긴 하지만 유명무실하게 된 지는 오래다. 서로의 이윤만 주장해 발전적 논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자금 집행 과정에서도 잡음이 생기고 서로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 반목이 생겨 유명무실해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대학로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점포라인 김창환 대표는 “서울 북쪽에 대학로를 대체할 만한 상권이 없고 연극단 및 거리 공연 문화의 풍성함이 다른 곳에 비해 여전해 유동인구량이 줄어들 염려가 없으며 서울에서 경기 북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대학로 상권은 높은 가격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로는 연인들의 거리이기 때문에 비싸더라도 인테리어가 예쁘고 시설이 좋은 상점을 만드는 게 좋다’고 창업 전문가들은 덧붙였다.
주변 상인들은 입을 모아 양질의 공연 예술 문화를 정착시켜 대학로를 찾는 사람을 늘려야 하는 것이 현재의 과제라고 말했다. 박 사장 또한 “대학로에 대한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공연 문화가 대학로의 정체성이자 인구 유입의 원인이라는 걸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며 “인사동의 쌈지길처럼 대학로에도 대학로 정체성에 맞는 확실한 랜드마크가 생긴다면 정체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hankyung.com┃사진 서범세·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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