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거리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평화로운 일상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재난은 공포와 비극의 현장이다. 하지만 재난에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을 인터뷰하던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끔찍한 고통을 겪었음에 틀림없을 그들의 얼굴이 자주 행복으로 환해지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웃들이 모두 집 밖에 나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돕고 즉석에서 급식소를 만들고 노인들을 보살피며 보낸 특별한 그 순간들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 시작해 그로부터 99년 뒤에 일어난 뉴올리언스 허리케인과 홍수에 이르기까지 다섯 건의 대재앙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다. 기존 사회질서가 갑작스레 무너진 폐허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재난은 인간의 본성과 공동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재난 영화나 대중매체는 재난이 덮치면 사람들이 병적 흥분에 빠지고 광포해지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런 대혼란 속에서 우리는 야수 아니면 희생자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은 이런 선입견들과 거리가 멀다. 재난이 닥친 도시에서 사람들은 문득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재난의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재난은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의 건강과 사회의 정의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확인해 준다.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공동체와 인간애는 이제는 잃어버린 인류의 ‘낙원’을 떠올리게 한다. 재난으로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밤하늘을 뿌옇게 만든 빛 공해가 갑자기 사라지고 태고적 별자리가 모습을 나타낸다. 재난은 지옥을 관통해 도달하는 낙원이다.
[Book] ‘이 폐허를 응시하라’ 外
레베카 솔닛 지음┃정해영 옮김┃512쪽┃펜타그램┃2만 원





이동환의 독서 노트 ‘진화론 산책’
교과서에 시조새를 실어야 하는 이유

올 초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는 현행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 실린 시조새와 말 등 다윈의 진화론 근거로 교과서에 실려 있는 증거들이 논란이 있으니 내용을 삭제 혹은 수정해 줄 것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요청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증거로 기술된 시조새 내용이 삭제된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유명 과학 저널인 네이처에 ‘한국,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항복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며 한국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과학계는 즉각 시조새 관련 내용의 삭제를 반대하는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한국갤럽은 지난 7월 이런 진화 논란과 관련해 설문 조사했다. 그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의 45%가 진화론을 인정하지만 성경의 창세기에 바탕을 둔 창조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려 32%나 된다. 요컨대 진화론과 창조론을 서로 대립되는 과학 이론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Book] ‘이 폐허를 응시하라’ 外
며칠 전인 9월 5일 과학기술계의 석학 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의 진화론에 대한 청원을 검토한 후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이론의 하나로 과학기술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학생 모두에게 반드시 가르쳐야만 한다고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시조새의 화석은 현재 진화의 상징적 존재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반드시 삭제할 필요는 없다”며 “조류는 공룡의 한 계열, 수각류에서 진화한 것으로 시조새 이외에도 수각류 공룡의 특징을 공유한 다양한 원시 조류 화석이 이미 발굴됐다”고 덧붙였다. 즉 시조새 내용은 교과서에 계속 실려야 한다는 얘기다.

‘진화론 산책(원제 Remarkable Creatures)’은 이런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진화발생생물학(이보디보, Evo Devo)의 거장으로, 이 책에서 진화론을 개척한 학자에서부터 현재까지 지난 두 세기에 걸친 과학사에서 가장 극적인 모험과 중요한 발견을 소개한다.

책의 시작을 장식한 인물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다. 그의 5년에 걸친 남아메리카 여행은 책으로 남겨졌고 찰스 다윈은 훔볼트를 존경하게 돼 마침내 비글호를 타고 펼쳐진 5년의 세계 여행은 진화론을 탄생시킨 배경이 됐다.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알프레드 월레스와 월터 베이츠는 아마존강과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각종 동식물 표본을 수집했다.


션 B. 캐럴 지음┃구세희 옮김┃391쪽┃살림Biz┃1만5000원
북 칼럼니스트 eehwan@naver.com



경제는 정치다
이헌재 지음┃272쪽┃로도스┃1만5000원
[Book] ‘이 폐허를 응시하라’ 外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한국 경제의 개혁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을 역동성 상실에서 찾는다. 과거의 시스템은 이미 작동을 멈췄지만 대안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옛 시스템은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발목만 잡고 있다. 과거의 퇴행적인 관성이 지배하는 노인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1960년대 체제의 극복과 중심 세력의 교체를 역설한다.



약탈적 금융사회
제윤경 외 지음┃264쪽┃부키┃1만3800원
[Book] ‘이 폐허를 응시하라’ 外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의 주범은 누구일까. 이 책은 은행·카드·보험 등 금융권의 약탈적 금융 시스템을 그 배후로 지목한다. 과거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덕에 기사회생한 금융사들이 지금은 사회 대다수를 빚의 노예로 전락시킨 채 돈 잔치에만 몰두하고 있다. 약탈적 금융은 채무자가 갚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돈을 빌려주고 이익을 뜯어내는 것을 말한다. 금융회사·언론·정부 등 약탈자와 그 공범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폭로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리더의 말
안미헌 지음┃248쪽┃흐름출판┃1만3000원
[Book] ‘이 폐허를 응시하라’ 外
리더를 위한 스피치 노하우를 담았다.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만이 아니라 다양한 직급의 리더들이 매순간 조직에서 현안을 논의하고 결과를 도출해야 할 때 크고 작은 스피치 상황에 놓인다. 이때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를 어떻게 구성하고 꾸미고 표현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이 달라진다. 1단계는 자신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상대의 입장과 생각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우선이다.



곁에 두고 싶은 책
박성희 지음┃272쪽┃민음인┃1만2000원
[Book] ‘이 폐허를 응시하라’ 外
35년 동안 언론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세상과 사람 사이에서 부침을 겪을 때마다 도움을 얻은 책 중에서 76권을 가려 뽑았다. 평생 동안 가까이 두고 삶의 길잡이로 삶을 만한 책,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그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책, 살면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저절로 손이 가는 책들이다. 위로가 필요할 때에는 희망을 역설한 장영희의 ‘축복’과 엄청난 시련을 극복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은 ‘지선아 사랑해’를, 외면하고 싶은 자신과 마주해야 할 때는 박완서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읽는다.
[Book] ‘이 폐허를 응시하라’ 外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