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의 ‘코미디 본능’ 발산

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장광, 김인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外
과거의 통치자들은 스타성 있는 캐릭터로 자주 부각된다. 정조나 세종이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용되는 빈도와 깊이는 이젠 꽤나 넓어졌다. 이들은 개혁의 비전을 제시한 지도자로 소구된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조명한 통치자의 캐릭터는 광해군이다. 광해는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장장 15년(1608~1623)을 왕좌에 앉고서도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한 비운의 군주였다.

영화는 ‘승정원일기’에 적힌 단 한 줄의 문구, 바로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에서 착상했다. 광해군 8년에 있었던 실록에서 사라진 기록, 15일간 광해의 행적을 둘러싼 영화의 상상력은 바로 광해의 ‘바람막이’다.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모티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관료들의 모략으로 의식을 잃은 광해 대신 왕과 똑같이 생긴 광대 하선이 광해의 자리에 앉게 된다. 하선은 왕의 말투와 걸음걸이를 습득하고 국정을 대신 ‘연기’한다. 자고 일어나니 천민에서 조선의 15대 왕이 된 하선은 난폭한 광해와는 딴판으로, 따뜻한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의 핵심은 하선이 왕 노릇을 하는 동안 바른 정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데 있다. 인물은 광해와 하선이라는 두 인물로 나뉘어져 있지만 따지고 보면 하선이 펼치는 마지막 부분의 선정은 광해가 당쟁의 희생자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조선 왕 중 가장 총명하다는 그 두뇌를 원 없이 펼쳤다면 도달했을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두 인물의 간극을 오가는 건 단연 이병헌의 몫이다. 표면적으로는 1인 2역이지만, 그는 막상 따지고 보면 광해와 하선, 광해를 연기하는 하선, 통치자가 되어가는 하선까지 다양한 버전의 연기를 컨트롤해야 했다.

신경증을 앓는 예민한 광해가 기존 이병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이라면, 하선은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이병헌의 가장 색다른 모습이다. 하선의 캐릭터 구축으로 이병헌에게 그간 보지 못했던 코미디들이 깨알같이 펼쳐진다. 왕이 용변을 볼 때 벌어지는 에피소드, 머리를 찧어대는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상황 코미디를 눈살 찌푸리지 않을 정도로 조율하는 것도 연기 생활 20년 차 이병헌의 내공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미덕은 각 장면의 재미만 부각할 과장된 ‘신 스틸러(Scene Stealer)’를 배제하고 간다는 점이다.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많은 영화들이 범하는 오류, 즉 무조건 웃겨야 한다거나 감동을 쥐어짜야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명백히 자유롭다. 오랜만에 품격 있는 대중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무척 반가운 작품이다.




체인징 사이드:부부탐구생활

감독 파스칼 포자두
출연 소피 마르소, 대니 분, 앙트완 뒬레리, 롤랑 지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外
여성 감독 파스칼 포자두가 섬세하게 구성해 낸 현대 부부의 완벽 분석기. 이혼 위기에 닥친 9회 말 2아웃 부부. 위기 탈출을 위해 일밖에 모르는 남편과 낭만적인 현모양처 아내의 역할을 바꿨다. 소피 마르소가 중년의 위기를 겪는 아내 아리안으로 출연한다.



이탈리아 횡단밴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外
감독 로코 파팔레오
출연 로코 파팔레오, 맥스 가제, 알레산드로 가스먼



왕년에 잘나가는 동네 밴드였던 네 명의 친구들이 어느 날 음악에 다시 꽂혀 밴드 재결성을 결심한 뒤 재즈 페스티벌에 출전하기까지의 10일 동안의 여행기를 다룬 로드무비. 이탈리아 개봉 당시 7개월 동안 장기 상영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작품.



피쉬 탱크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外
감독 안드리아 아놀드
출연 케이티 자비스, 마이클 패스빈더, 키어스턴 워레잉

여느 열다섯 살 아이들처럼 외톨이 미아는 늘 고민이 많고 학교에서도 문제아다. 여름방학 동안 엄마는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한 명을 데려오는데, 사랑과 이해를 약속하는 그 남자는 모녀의 삶을 혼란에 빠뜨린다. 2009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이화정 씨네21 기자 zzaal@cine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