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고도 서울의 정중심부에 자리한 용산의 역사는 슬프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조선 정부를 장악했던 청나라 위안스카이의 기지였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군이 주둔지로 삼았다. 광복 이후 줄곧 미군 기지로 사용되면서 용산은 지정학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동안 도심의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과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아 진행되면서 용산은 미래 서울의 초핵심 상권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기대로 용산에는 수년 전부터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고 마침내 상가 매매가가 명동과 강남 등을 제치고 서울에서 가장 비싼 지역으로 올라섰다.
명동·강남 뛰어넘은 용산 상가의 비밀 "재개발 사업 가시화… 상가 투자 수요 몰려"
2012년 여름 용산의 모습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용산은 너무나 극명한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의 이곳저곳에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는 한편 용산역·신용산역 주변 등 곳곳에는 포클레인이 현재 한창 부지 조성 공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 지역은 시대를 무색케 할 정도로 낙후된 주택과 상점이 즐비하기도 하다. 철거를 앞두고 있는 빌딩들은 흉물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용산 개발 사업이 최근 재개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수백 년간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를 차지했던 군부대와 철도청이 물러난 자리에는 외국계 기업과 고급 주상복합이 입주하고 도심 녹지 공원이 들어서면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최고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변모할 예정이다.

2006년 용산의 ‘역세권 개발 계획’이 확정된 후 마스터 플랜 발표까지 4년, 계획·설계까지 6년이 걸렸다. 그동안 사업자 선정과 자금 조달, 토지 보상 등에 차질을 빚으면서 삐걱거리고 갈등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1월 한강로 2가의 남일당 건물 철거를 놓고 세입자와 경찰, 용역 직원 간 무력 충돌로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 사태’라는 참극을 빚기도 했다.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은 지난해 10월 사업 시행자 지정을 요청한 데 이어 실시 계획 인가, 건축 허가 등의 모든 인허가 절차를 올해 말까지 마치고 2013년 초 착공할 예정이다. 현재 용산역 정면에 있던 낡은 건물과 집창촌의 임시건물은 종적을 감추고 가림막으로 가린 부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태다.

용산의 각 구역별로 보상 계획 및 이주 대책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낡은 상가와 주택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곳도 쉽게 볼 수 있다. 용산 역세권 개발 공사는 2016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명동·강남 뛰어넘은 용산 상가의 비밀 "재개발 사업 가시화… 상가 투자 수요 몰려"
2007년 8월 사업자 공모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사업비만 30조 원 이상이 예상되는 건국 이후 최대 도심 개발 프로젝트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지난해 7월 코레일이 사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삼성물산이 용산 랜드마크 빌딩 ‘트리플원(111층)’의 시공사로 선정됐다.

그리고 트리플원을 제외한 65개 고층 빌딩이 단계적으로 시공사 선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용산철도정비창 부지 44만2000㎡에 서부이촌동 지역 12만4000㎡를 추가 포함한 56만6000㎡ 부지는 현재 붉은 흙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지난 9월 4일 눈길을 끄는 부동산 리포트가 발표됐다. 3만여 개에 달하는 서울 시내 상가 매물 가격을 분석한 자료였다. 이에 따르면 서울에서 상가 가격이 가장 비싼 곳은 3.3㎡당 1억600만 원(1층 기준)으로 나타났다. 즉 만약 이곳에서 99㎡ 규모의 상가를 사려면 31억8000만 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는 서울 평균 2886만 원보다 3.6배나 비싼 가격이었다.

이곳은 바로 명동도 강남도 아닌 용산이었다. 1위에 오른 용산동3가는 신용산역 전면부 업무 시설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용산동3가 이외에도 용산역 주변의 한강로3가, 삼각지역 주변의 한강로 1가, 이촌역 하단부의 이촌동 등 용산구의 동들이 ‘상가 매매가 상위 10’에 4곳이나 포함되며 상위권을 휩쓸었다.
명동·강남 뛰어넘은 용산 상가의 비밀 "재개발 사업 가시화… 상가 투자 수요 몰려"
용산동3가의 상가 평균 매매가는 2006년 3.3㎡당 7683만 원으로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었다. 용산 개발 사업이 5~6년 동안 길게 끌면서 이미 투자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6년이 지난 현재 용산동3가의 매매가는 38% 올라 1억 원을 돌파했다. 용산동3가는 대부분 미군 기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상가는 지하철 4, 6호선 삼각지역에서 전쟁기념관 사이, 그리고 신용산역 앞 일부 업무 밀집 지역이다.

부동산114 장용훈 연구원은 “용산동3가는 신규 공급된 상가의 영향보다 한강로 도시 환경 정비 사업으로 삼각지역 1, 2번 출구와 13, 14번 출구 인근 지역이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됨에 따라 기존 근린 시설의 매매 가치 올랐다”고 설명했다.

또한 용산에서 진행 중인 각종 개발 사업의 수혜 지역인 한강로3가·한강로1가·한강로2가 상가의 기대 가치가 급격히 높아졌다. 한강로 일대의 상가 매매가격은 2006년에 비해 평균 70% 정도 올랐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재 상가의 3.3㎡당 매매가격은 한강로3가 7338만 원, 한강로1가 7265만 원, 한강로2가 4675만 원으로 집계됐다.

용산역·신용산역·삼각지역 부근에 분포하고 있는 고급 주상복합 단지에 상가가 그렇게 활성화돼 있는 것은 아니다. 삼각지역 부근에 모여 있는 용산파크자이·용산삼각지GS자이·대우월드마크용산에는 레스토랑과 커피 전문점 등 상가가 그나마 밀집해 있다. 하지만 용산시티파크 1, 2단지 등의 단지에는 편의점·은행 등이 소수 입점해 있을 뿐이다.
명동·강남 뛰어넘은 용산 상가의 비밀 "재개발 사업 가시화… 상가 투자 수요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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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타워 부근 노른자위 상가 부각

투자자들과 인근 부동산 업자들은 LS용산타워(구 국제빌딩)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상가 조성에 눈길이 쏠려 있다. 용산역 전면 2, 3구역과 국제빌딩 주변 3, 4, 5구역은 ‘코엑스몰’과 마찬가지로 신용산역과 연결되는 대규모 지하상가가 조성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LS용산타워 옆에 들어선 태평양 사옥도 대형 빌딩으로 재건축할 것으로 결정됐고 미군 기지는 용산민족공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미 LS용산타워 지하 아케이드와 최근 입주를 시작한 아스테리움의 지하상가가 연결돼 신용산역까지 통해 있다. 특히 아스테리움 지하상가는 신용산역에서 용산민족공원을 연결하는 통로가 될 예정이다. 따라서 용산민족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면 ‘핫’한 노른자위 상권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용산 일대 상가의 미래 가치에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반면 아직 매물이 많지 않아 가격이 치솟고 있는 상태다. 아스테리움 부동산의 진영범 과장은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이라 매물이 많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상가 수요가 매우 많다”며 “1주일에 30건 이상의 문의가 오고 있다”고 밝혔다.
명동·강남 뛰어넘은 용산 상가의 비밀 "재개발 사업 가시화… 상가 투자 수요 몰려"
그에 따르면 상가 투자를 문의하는 이들이 개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유명 커피 전문점과 레스토랑 등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벌써부터 이곳에 상점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수요는 약 30%가 투자 차원에서 매수하려는 이들이고 나머지는 실제 장사를 하기 위한 임대 문의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재 용산 일대의 상가 가격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고 보고 있다. 미래 가치만 보고 아직 상가가 형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선투자하는 것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경고한다. 시티파크 내 스타부동산의 유진아 과장은 “상가 조성 계획이 확정되고 착공에 들어간 후 불확실성이 사라졌을 때 투자하는 것이 좋다”며 “올해 말이면 어느 정도 상가 구성의 윤곽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114 장 연구원은 용산 개발 사업과 관련해 “앞으로 보상과 인허가, 자금 조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유럽발 경제 위기 등 외부 변수에 따라 국제업무지구 사업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용산의 다른 일부에서는 1~2년 전 치솟았던 상가 가격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 용산의 주상복합 빌딩 1층에서 한식당을 하고 있는 김모 씨는 “1년 반 전 개업할 때만 해도 임대료가 제일 비쌌다”며 “아직 용산의 유동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아 최근 상가 주인이 세입자를 잡기 위해 임대료를 낮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용산은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라 청량리·왕십리, 상암·수색과 함께 3부 핵으로 지정됐다. 지정학적으로 종로 도심과 강남, 영등포·여의도 권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핵심 지역으로서의 기능이 기대되고 있다. 2018년 신분당선 용산~강남 복선전철이 개통되면 경기 남부권 수요도 아우르며 용산은 주거·업무·상업의 중심지로서 ‘포스트 강남’으로 점쳐지고 있다. 용산 개발 사업이 보상을 두고 일부 혼선을 빚고 있기는 하지만 투자자와 실수요자에게는 여전히 장밋빛 호재로, 인기를 지속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취재=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사진=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