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전 유통 업계의 가격 인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가전 유통 삼국지’로까지 묘사되던 가격 전쟁이 유통 업체들의 사기극이라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면서 급기야 중국 상무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유관 부처가 최근 조사에 들어갔다.

가격 전쟁을 도발한 곳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징둥이다. 중국의 1, 2위 가전 유통 업체 쑤닝과 궈메이가 타깃이다. 시점은 쑤닝의 인터넷 쇼핑몰인 쑤닝이궈우 설립 3주년(8월 15일)을 하루 앞둔 8월 14일이다. 쑤닝이 이때에 맞춰 판촉 활동을 벌일 것으로 예상한 징둥이 선수를 친 것이다.

징둥의 최고경영자(CEO)인 류창둥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선전포고했다. 류 CEO는 8월 14일 오전 “쑤닝과 궈메이보다 10% 이상 싸게 판다. 향후 3년간 마진 제로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오후 4시 쑤닝은 “징둥보다 모든 제품에서 싼값에 팔겠다. 만일 징둥보다 비싼 제품이 나오면 즉시 가격을 내리고 구매 고객에게 그 가격 차의 2배를 배상하겠다”고 대응했다.
[중국] 가전 유통 인하 경쟁 ‘점입가경’ "징둥 대공세에 쑤닝·궈메이 맞불"
그러자 류 CEO는 “가격 마지노선은 없다. 쑤닝이 1위안에 팔면 징둥은 0위안으로 내릴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날 오후 10시엔 궈메이도 가세, “인터넷에서 징둥보다 5% 싼값에 팔겠다. 이번 주 금요일부터 1700여 개 (오프라인)점포에서도 인터넷과 같은 가격에 팔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가격 전쟁의 배후엔 최근 2년간 증시 상장을 추진해 온 징둥의 다급함이 있다는 분석이다. 류 CEO가 “이번 ‘가격대전’이 3개월 내 끝나지 않으면 징둥의 기업공개(IPO) 계획은 또다시 1년 더 늦춰질 수 있다”고 우려한 게 이를 보여준다.

시장 일각에선 징둥에 투자했던 투자자 일부가 발을 빼기 시작했다는 설도 돌았다. 류 CEO가 투자자들과 맺은 협약서에는 매출 등의 실적이 약속한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면 류 CEO와 창업 멤버들이 회사를 떠나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쑤닝이 주가 하락으로 자금난에 빠져 있는 상황을 이용하려는 것도 징둥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배경으로 꼽힌다. 쑤닝은 점포 확장과 판촉 확대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빌렸고 이 과정에서 상장된 쑤닝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지만 주가는 하락세다. 쑤닝의 주가는 지난 3월 11.35위안의 고점을 찍은 뒤 6.65위안(9월 6일)까지 밀리며 거의 반 토막 난 상태다.

이 때문에 자금을 빌려준 측과의 당초 약속에 따라 주식을 더 넘겨주든지 현금을 줘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쑤닝은 이 때문에 47억 위안의 증자를 마친 지 한 달여가 지난 8월 13일 80억 위안에 이르는 회사채 발행 계획을 공고했고, 바로 다음날 징둥은 가격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중국] 가전 유통 인하 경쟁 ‘점입가경’ "징둥 대공세에 쑤닝·궈메이 맞불"
하지만 중국 언론들은 한결같이 “뇌성벽력은 컸는데 비는 안 왔다”는 식의 소비자들의 반응을 전했다. 한 인터넷 쇼핑몰은 6개 가전 유통 업체들이 판매하는 제품 가운데 가격을 내린 곳은 4.2%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모처로부터 입수했다고 전했다.

심지어 징둥이 8월 15일 0시에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린 뒤 판촉 활동을 했다는 제보도 소개됐다. 일례로 마쓰시타의 55인치 발광다이오드(LED) TV는 8월 13일과 14일만 해도 1만2999위안이었지만 15일 0시에 2만999위안으로 껑충 뛰었고 그날 낮에 9500위안 내린 11499위안에 판다고 홍보했다는 것이다.

중국 법규에 따르면 원가는 최근 7일간 가격 중 가장 낮은 가격이기 때문에 징둥의 행위가 사실이라면 소비자를 속인 게 된다고 중국 언론들은 지적한다. 중국 당국이 전격 조사에 나선 배경이다. 심지어 당국의 샘플 조사에서 징둥은 제로 마진을 선언한 것과 달리 평균 10%의 마진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가격대전이 중국 유통 업계에 부족한 진정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