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끝내 ‘재정 절벽(fiscal cliff)’으로 떨어질 것인가.

11월 6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정 적자의 해법을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재정 절벽’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재정 절벽’은 정부의 재정지출이 갑자기 줄거나 중단돼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미국이 왜 ‘재정 절벽’의 위기에 몰렸을까.

백악관 예산정책국에 따르면 2011년 미국 연방정부의 예산은 3조6000억 달러였다. 이 가운데 2조2000억 달러(61%)는 조세 수입으로 충당하고 830억 달러는 중앙은행(Fed) 보유 자산에서 발생한 이익으로 충당했다. 나머지 1조3000억 달러(36%)는 국채 발행으로 조달했다.

그만큼 빚을 내 재정을 꾸려온 셈이다. 2009년 이후 매년 1조 달러 이상의 재정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9월 4일 기준으로 미국의 국가 부채는 총 16조160억 달러로 16조 달러를 넘어섰다.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서만 국가 부채가 5조 달러 정도 늘어났다.
워싱턴 저널 "정치권이 부른 ‘ 재정 절벽’ 위기"
국가 부채 16조 달러로 급증

미 정부는 국채를 무한정 발행할 수 없다. 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07년 9월 이전까지 의회가 승인한 정부의 부채 한도는 9조8150억 달러였다. 하지만 빚을 내지 않고 정부의 살림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자 매년 8000억~1조9000억 달러씩 한도를 늘려 왔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부채 한도 증액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리고 말았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지출을 크게 확대해 온 오바마 정부와 여당인 민주당이 부채 한도를 2조1000억 달러 더 늘려달라고 의회에 요구하자 공화당이 “부채 한도 증액만큼 재정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의회가 부채 한도 증액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미 정부는 국채를 더 발행할 수 없어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고 만다. 시장의 불안을 볼모로 잡고 대치하던 민주당과 공화당은 막판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부채 한도를 종전 14조2940억 달러에서 16조3940달러로 세 차례에 걸쳐 2조1000억 달러 늘리기로 했다.

문제는 미국이 또다시 부채 한도 증액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16조 달러를 돌파한 부채 총액이 연내 상한선인 16조394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화당 측은 복지 예산 등 재정지출을 감축하지 않으면 부채 한도를 늘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여야가 연말 대선까지 한 발씩 양보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매우 희박하다.

미 의회는 지난해 부채 한도 증액에 합의하면서 올 연말까지 재정 적자 감축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무조건 2012년부터 10년간 1조2000억 달러의 정부 지출을 축소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올 연말까지 여야가 새로운 예산안을 만들지 못하면 국방비와 사회보장비 등 내년에만 정부 지출 760억 달러가 자동 삭감된다. 재정지출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절벽’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재정 위기는 방만한 지출과 그에 따른 만성적인 재정 적자가 근본 원인이다. 그러나 최근 부각되고 있는 ‘재정 절벽’의 위기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정쟁에 매달려 예산 관련법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게 주된 배경이다. 따지고 보면 경제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 ‘리더십의 위기’로 볼 수 있다.


워싱턴(미국)=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