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글로벌 TV 신화의 뒤를 이으며 한국 가전의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특히 양문형 냉장고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이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 5월 초 시장조사 기관인 GfK와 NPD 집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양문형 냉장고는 지난해 33.1%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양문형 냉장고는 2006년부터 6년 연속 판매 1위로, 영국·프랑스·독일 3개국에서는 10년간 시장점유율 1위다. LG전자는 26.4%의 점유율로 2위를 차지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60%에 육박한다.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글로벌 가전 브랜드 월풀은 지난해 12.3%로 시장점유율 3위로 나타났다.

고급 양문형 냉장고의 미국 시장점유율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25.6%, 20.4%로 나란히 1위와 2위에 올랐다. 월풀은 7.4%로 6위에 머물렀다. 전체 냉장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점유율 1위인 월풀이 양문형 냉장고 세계시장을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내주면서 미국 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하단 냉동고형 냉장고에 대해 반덤핑 혐의를 씌워 판매를 막으려고 했지만 최종 기각된 일도 있었다.

양문형 냉장고뿐만 아니라 전체 냉장고 시장에서도 조만간 삼성전자가 월풀을 추월할 기세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의 냉장고 시장점유율은 13.49%로 1위인 월풀을 1% 미만으로 추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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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세계 1위 월풀 추월할 듯

국내 냉장고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의존도가 더욱 절대적이다. 국내 냉장고 전체 시장 규모는 연간 85만~90만 대로 추정되는데, 이 중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이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대우일렉트로닉스가 5% 정도의 점유율로 3위, 월풀 등 외산 가전 업체들의 국내 냉장고 시장점유율은 채 2%가 안 되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냉장고에 있어서도 오랜 라이벌로 ‘대전’을 벌이고 있다. 핵심은 용량 싸움이다.

냉장고만큼은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 소비자들도 대용량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삼성과 LG의 본격적인 대용량 경쟁은 2010년 3월 LG전자가 801리터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하며 냉장고 800리터 시대를 연 것이 시작이다.

그해 9월 삼성전자가 840리터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해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더니 지난해 3월에는 다시 LG전자가 10리터 큰 850리터 양문형 냉장고를 선보였다. 이후 9월에는 삼성전자가 860리터를, 두 달 뒤에는 LG전자가 10리터 큰 870리터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했다. 2007년만 해도 600리터급이 국내 양문형 냉장고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했지만 5년 만에 200리터 이상이 늘어난 셈이다.

국내외 할 것 없이 냉장고 시장의 트렌드는 단연코 ‘대형화’다. 국내 가전 브랜드의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글로벌 냉장고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활약’을 하면서 세계시장에서 대형 냉장고 트렌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사실 생활 가전 시장에서 냉장고 대형화 이슈는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더구나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장 보는 횟수가 줄어들어 식품 보관 기간이 늘어났고 대형 마트 구매가 늘면서 많은 양의 식품을 한 번에 보관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도 대형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냉장고는 보통 10년 정도 사용하는 가전으로 간주한다”며 “구매 시점에서 장기적인 미래를 고려하다 보니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구매력 내에서 최대 용량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시장조사 기관 GfK코리아와 업계에 따르면 국내 냉장고 시장에서 800리터급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10%에서 2011년에는 30%로 3배 증가했고 올해는 600리터급 이하 양문형 냉장고가 자취를 감추고 800리터급 이상 제품 이 40~5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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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7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900리터급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하며 또 한 번 맞붙었다. 냉장고 용량이 늘어나도 제품 외부 사이즈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용량 경쟁은 곧 치열한 기술 경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고 용량에서 뒤져 있던 삼성이 먼저 치고 나갔다.

지난 7월 4일 삼성전자는 서울 서초 사옥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열고 세계 최대 900리터 용량의 냉장고 신제품 ‘지펠 T9000’을 선보였다. 이번 신제품은 세계 1등 삼성TV 신화의 주역인 윤부근 사장이 직접 챙긴 야심작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세계 최대 용량과 함께 냉장실을 위쪽에, 냉동실을 아래쪽에 배치한 T-타입 내부 구조로, 이른바 프렌치도어(FRD) 냉장고다. 프렌치도어는 국내보다 북미 등 해외에서 인기가 더 높다. 현재 미국 냉장고 시장에서 FRD 냉장고는 약 4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금액으로는 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용량 경쟁은 기술력 싸움 의미

삼성전자의 신제품이 발표된 지 며칠 후 LG전자가 910리터 디오스 냉장고 신제품을 선보이며 다시 세계 최대 용량 타이틀을 가져왔다. 역시 FRD 냉장고로 소비자들이 냉장고를 사용할 때 냉장실을 80% 더 많이 쓰기 때문에 사용 편의를 고려해 위쪽에 배치했다는 게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900리터 냉장고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뜨겁다. 삼성전자의 신제품은 한 달 만에 1만 대가 팔려나갔고 LG전자의 신제품도 약 한 달간 진행한 사전 예약 판매 기간 동안 업계 예상 대비 2배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효율과 스마트 기술은 냉장고 시장의 또 다른 화두다. 전력난에다 경기 불황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까지 겹쳐 전기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갈수록 용량이 커지면서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은 필수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대용량·고효율 기술력은 이미 인정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양문형 냉장고는 에너지 효율이 ‘A++’, BMF 냉장고는 ‘A+++’를 달성했으며 LG전자도 지난해 유럽 양문형 냉장고 기준 최고 등급인 ‘A++’를 인증 받아 에너지 관련 규정이 제일 까다롭다고 알려진 유럽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LG전자는 최근 미국에 출시한 ‘5분 급속 냉장’ 프렌치도어 냉장고 역시 미국 환경보호청이 고효율·친환경 제품에만 수여하는 ‘에너지 스타’ 인증을 받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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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LG전자의 900리터급 신제품만 놓고 보면 에너지 효율은 일단 LG전자가 낫다. 삼성전자의 신제품은 전력 효율이 1개월당 38.6kWh로 한 달 전기요금이 2870만 원 선이고 LG전자의 신제품은 1개월당 35.8kWh월로 700리터급 양문형 냉장고의 평균 소비 전력과 비슷한 수준이다. 리터당 소비 전력 비교 시 에너지 효율은 약 30% 정도 오히려 향상됐다.

‘스마트 가전’도 전 세계 가전 업계의 이슈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보관 중인 식품의 유통기한을 체크하는 등 관리가 가능하고, 요리 레시피와 쇼핑 추천 리스트 등을 알려주는 똑똑한 기능을 갖춘 스마트 냉장고는 미래형 생활 가전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미 이런 ‘가상’ 같은 현실을 가능하게 한 스마트 냉장고를 출시한 바 있다. 스마트 냉장고의 가격이 일반 냉장고보다 비싸다는 단점은 있지만 향후 기능이 계속 업그레이드되면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근거는 최근 막을 내린 ‘IFA 2012’에 있다.

삼성과 LG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가전 업계들이 공통적으로 ‘가전제품 간의 네트워킹’ 기술을 선보였는데, 이는 스마트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기본 기능으로는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시대에 갈수록 진화하는 ‘혁신 기술’이 가져올 미래 냉장고의 모습은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