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싸이가 ‘새’로 데뷔했을 때도 많은 이들이 놀랐다. ‘싸이코’에서 따왔다는 ‘싸이’라는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았고 연예계 대세를 거스르는 비주얼과 직설 화법이 작렬하는 음악적 코드도 ‘좋게 말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발표하는 음반마다 평균 이상의 성공을 거뒀지만 사실 ‘새’ 만큼의 파격은 아니었다. ‘강남스타일’은 싸이가 초심으로 돌아가 그때의 감성으로 만든 회심의 역작이다. 가장 ‘싸이스러운’ 음악이 세계를 뒤흔든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싸이 홀릭’에 빠졌다. 심지어 박지성과 김연아를 제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한 외국인 VIP 전문 여행사가 주한 외국인 및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56%의 지지를 받으며 ‘가장 만나고 싶은 한국인 1위’로 뽑혔다는 소식도 들린다. ‘강남스타일’은 노래나 뮤직비디오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싸이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불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싸이라는 캐릭터는 ‘강남스타일’의 효과를 배가했다. 대중문화 평론가들과 가요계 관계자들이 ‘강남스타일’의 인기 비결로 주저 없이 ‘싸이 효과’를 먼저 꼽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강남스타일의 경제학] 인기 비결 입체 분석 "언어 초월 B급 유머… 전략‘치밀’"
비결 1 B급 문화 관통한 ‘싸이 식’ 유머

‘강남스타일’이 불러온 파장은 팔 할이 뮤직비디오가 풍기는 ‘코믹’ 요소 때문이다.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 올라오는 외국인들의 리액션 영상을 봐도 뮤직비디오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많다. 지하 주차장, 한강 둔치, 유람선 위, 엘리베이터, 목욕탕, 지하철, 경마장, 요가 현장, 횡단보도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보이는 엽기적 상황 설정과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황당한 웃음을 선사한다. 바로 여기에 첫 번째 포인트가 있다.

그동안 케이팝이 해외에서 주목받은 사례는 많았지만 대놓고 ‘코믹’을 표방한 ‘강남스타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신선함 그 자체였던 것. 미국 ABC 방송에 출연한 싸이가 인터뷰에서 “강남은 한국의 베벌리힐스와 같은 곳”이라며 “춤·장소·뮤직비디오 주인공 모두 베벌리힐스 스타일이 아닌데도 계속 베벌리힐스 스타일이라고 우기는 게 포인트”라고 ‘반전의 묘미’를 설명하긴 했지만, 굳이 이런 설명이 없어도 통할 만큼 언어를 초월한 코믹 포인트가 제대로 먹혔다.

‘강남스타일’이 ‘B급 문화’를 관통했다는 것도 성공 요소다. ‘주류에서 벗어난 하위문화(sub-culture)’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B급 문화’는 키치(Kitsch: 통속 취향에 영합하는 저속한 예술 작품)와도 맥락을 같이하는데, 현재 전 세계적으로 ‘B급 문화’가 대세로 떠올랐다. 유례없는 경기 불황이 주요 배경 중 하나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소식투성이인 상황에 심각하고 진중한 것보다 유쾌하고 재밌는 것 그 자체에 모두가 열광하는 것이다. 음악 평론가 김작가는 “‘B급 문화’는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 하위문화로 주목받고 있다”며 “이처럼 세계적인 문화적 저변이 있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전자처럼 문화도 복제된다는 인터넷 밈(Meme: 비유전적 문화 요소) 현상을 낳았다”고 말한다.

철저히 ‘허접함’을 의도한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싸이의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 결과물이다. 가장 싸이다운 노래에 가장 싸이다운 뮤직비디오가 탄생하게 된 건 그래서다. 싸이는 ‘한심하고 어이없는 행동’, ‘세상의 관습과 일상에서 벗어난 유쾌한 일탈’을 표현해 줄 아이디어를 적극 내놓았다. 촬영 현장에 놀러왔다가 얼떨결에 출연한 노홍철의 ‘저질 댄스’ 퍼포먼스도 즉흥적으로 담겼다. YG 측 관계자는 “싸이는 모든 컷을 촬영할 때마다 좀 더 한심해 보이는 그림이 나올 수 있도록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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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결 2 중독성 강한 후크송과 말춤

미국의 유력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포스트는 ‘강남스타일’에 대해 “중독성 강한 비트와 후렴구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매료당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허핑턴포스트의 진단은 정확하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등 싸이 특유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가사도 깨알 같은 재미를 주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사를 파악하고 있을 때의 얘기다.

외국인들 귀에는 들릴 리 없는 한글 가사로 된 ‘강남스타일’을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떼창’할 수 있는 건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과 ‘헤이, 섹시 레이디’ 등 반복되는 후렴구 때문이다. ‘헤이 마카레나’만 알아도 대략 따라 부를 수 있었던 ‘마카레나’를 떠올리면 설명이 쉬워진다. 특히 ‘오빤 강남스타일’ 부분은 일본어로는 ‘가슴이 건담 스타일’로 들리고 영어권에서는 ‘오픈 콘돔 스타일(Open Condom Style)’로 들리는 것도 관심 유발 요소 중 하나다.

‘강남스타일’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말춤’도 빼놓을 수 없다.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 떼로 말춤을 추는 플래시 몹 이벤트가 벌어지고 LA 다저스 홈구장에서 5만여 명이 말춤을 추는 진풍경이 벌어지는가 하면 다양한 ‘스타일’을 패러디한 말춤 동영상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말춤의 인기를 증명한다.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트위터에서 말춤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싸이가 밝힌 말춤 탄생 비화는 이렇다. 콘서트 뒤풀이 때 댄스 팀에 상금을 걸고 장기 자랑을 할 때가 있는데, 지난해 대구 콘서트 후 가진 회식 자리에서 나온 춤이 말춤이라는 것. 그러나 싸이의 안무를 맡고 있는 이주선 매니아 단장이 “똑같은 안무도 싸이가 하면 코믹하게 바뀐다”고 표현한 것처럼 말춤을 코믹하게 승화한 건 역시 싸이였다.



비결 3 YG의 전략+콘텐츠에 집중

2010년 9월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에 합류한 싸이는 YG로 옮긴 후 발표한 첫 앨범에서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2년이 지난 후 ‘강남스타일’로 ‘초대박’을 터뜨렸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YG의 지원은 달라진 게 없다.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싸이를 지원하는 YG의 방식은 ‘싸이의 음악적 색깔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음악은 물론이고 음반 디자인에서부터 뮤직비디오·안무·프로모션에 이르기까지 싸이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그러나 ‘강남스타일’ 돌풍에는 분명 소속사인 YG의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

YG의 측면 지원은 콘텐츠에 대한 집중 투자와 기존에 구축해 놓은 다양한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마케팅과 홍보로 압축된다. YG의 수장인 양현석 대표는 ‘좋은 콘텐츠의 힘’을 누구보다 강조한다. 꼭 방송 매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좋은 콘텐츠만 있다면 전 세계 어디로든 뻗어나갈 수 있다는 양 대표의 소신은 ‘강남스타일’에서도 증명됐다. YG는 그간 방송에 투입되는 공력을 줄이는 대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여기에다 2008년부터 유튜브에 공식 채널을 만들고 YG 블로그를 여는가 하면 인터넷 TV로 자체 방송을 하는 등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빅뱅·2NE1 등 소속 뮤지션들이 방송 활동 없이도 음원 차트 순위를 휩쓸고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오는 것도 그에 따른 결과물이다. 싸이 역시 ‘강남스타일’로 국내 방송 무대에 선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지만 유튜브에서만 7300만 조회 수를 넘기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강남스타일’ 패러디물을 적극 활용한 것도 결과적으로 ‘강남스타일’의 파급력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8월 30일 오후 현재 유튜브 검색창에 ‘강남스타일’로 검색하면 4310개의 영상이 검색되고 영문 ‘GANGNAM STYLE’로 검색하면 1만1400개의 영상이 검색된다. 이는 전날 올라온 영상보다 한글 검색은 200건 이상, 영문 검색은 500개 이상 늘어난 결과로 벌써 공개된 지 한 달이 넘었는 데도 관련 영상이 수없이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정도다.

관련 영상의 많은 부분은 패러디 영상과 리액션 영상이다. YG 측은 ‘강남스타일’을 유튜브에 발표한 후 패러디 작품을 공모하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는 등 애초부터 관련 동영상이 불러올 파급효과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그 자체로 인기 있는 패러디물, 리액션 동영상이 자연스레 ‘강남스타일’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낳은 것이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