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의도 정가에선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 같다. 총선 때 미풍이었던 경제 민주화 바람은 넉 달 뒤 있을 12월 대선에선 태풍급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전통적으로 경제 개혁을 외쳐온 민주통합당뿐만 아니라 ‘보수 정당’의 위치를 점한 새누리당까지 경제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어서다. 두 정당 중 먼저 당 대선 후보를 확정한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 후보도 후보 수락 연설에서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핵심 과제로 ‘경제 민주화, 복지, 일자리’를 꼽았다. 경제 민주화가 가장 앞으로 튀어나왔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연구소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 30여명으로 구성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 참석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이 경제민주화의 실체적인 의미와 실천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2012.6.12/뉴스1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연구소에서 열린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 30여명으로 구성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 참석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이 경제민주화의 실체적인 의미와 실천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2012.6.12/뉴스1
순환출자 금지 등 법안 제출

이 같은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MB 정부 들어 두드러졌다. 정부 초기에 747 공약 달성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폈다.

하지만 2008년 9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가 미국 뉴욕 지방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하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다. 세계경기 침체 우려 속에 정부는 경기 회복을 위해 대기업 우선 정책을 더 강화했다. 기업들의 성적표는 전반적으로 더 나아졌다.

반면 실물경기의 가장 끝에 위치한 자영업자들은 어려움이 커졌다. 중소기업의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일자리 확대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낙수효과가 크지 않자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진다고 국민들은 느끼게 됐다.

급기야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졌다. 지방선거가 시작된 후 서울을 내준 건 처음이었다. 한나라당은 홍준표 대표 체제가 깨지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당을 접수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 외부 인사들을 영입했는데, 그중 한 명이 김종인 전 청와대 수석이었다.

김 비대위원은 정책분과위원장을 맡으면서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개명한 박 전 위원장과 함께 당 정강·정책에도 보수를 들어내려고 했고 일감 몰아주기 처벌 등 김 위원장이 소신으로 갖고 있던 경제 민주화 정책들을 지난 4·11 총선 공약에 차곡차곡 반영했다.

총선 직전 김 비대위원은 스스로 비대위원직을 사퇴했고 총선 후엔 새누리당은 19대 소장파 국회의원들과 일부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정책을 이어받아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란 조직을 만들었다. 5선의 소장파 리더인 남경필 의원이 모임의 대표를 맡았으며 김세연·나성린·이종훈 의원 등과 친박계인 이혜훈 최고위원, 구상찬 전 의원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7월 정책위 의장에서 자진 사퇴한 진영 의원도 합류하면서 사실상 당 정책위원회 역할을 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박근혜 후보가 경선 캠프를 차리자 다시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복귀했다. 김 위원장은 수시로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찾아 격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모임은 19대 국회가 시작되자 매주 화요일 오전에 보수에서 진보까지 이념에 상관없이 경제 전문가들을 불러 스터디를 하고 있다.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의견을 듣는다(모임 소속 한 의원)”는 원칙에 따라 섭외가 이뤄진다. 섭외는 이혜훈 최고위원이 주도한다.

6월 5일 모임의 첫 회의에는 이혜훈 최고위원과 이종훈 의원이 발제를 했고 8월 12일엔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종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특강을 했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신광식 연세대 교수, 윤여준 전 장관,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이동걸 전 한국금융연구원장, 정충원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장, 이건목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이의영 군산대 교수(전 경제정의실천연합 재벌개혁위원장), 김종철 한겨레신문 정치부 선임기자 등도 특강 인사로 거쳐 갔다.

화요일뿐만 아니라 주중 수시로 따로 모여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7월 15일 첫 결과가 나왔다. 횡령·배임을 저지른 대기업 총수에게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경제 민주화 1호 법안(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 초선 비례대표인 민현주 의원이 대표 발의를 했고 모임 소속 스무 명 정도가 서명했다.

열흘 뒤인 7월 25일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는 것을 담은 2호 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표 발의자는 이종훈 의원이다.

급기야 8월 5일엔 대기업들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을 담은 3호 법안(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남경필 의원이 직접 기자들에 공식적으로 설명하는 자리를 갖고 대표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8월 24일엔 금산 분리 강화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도 4~5호 법안으로 기다리고 있다.
[한국 기업 안전한가] 여의도 이슈 떠오른 경제 민주화 "與 ‘실천모임’ 주도…‘너무 나갔다’ 반발도"
이한구 원내대표 ‘당론 아니다’ 선 그어

이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법안은 순환출자 금지 내용을 담은 3호 법안이다. 법이 통과되면 신규 순환출자는 아예 금지되고 기존 순환출자 부분에 대해선 주식 의결권이 제한된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들이 순환 출자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법엔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선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제9조의 2제4항의 조항이 신설되는데, 이 조항은 A계열사→B계열사→C계열사→D계열사→A계열사 구조의 출자 구조의 그룹이 있다면 마지막 단계인 D계열사가 출자한 A계열사 지분은 총수의 의결권에서 제한다는 내용이다.

남경필 의원은 “현재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기업에 대해 상호 출자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는데, 이를 순환출자라는 편법을 통해 가능하게 해주니 가공자본, 가공 의결권이 확대재생산되는 문제가 있다”며 “1565개 대기업 계열사 중 86.2%가 총수 지분이 하나도 없고, 주요 계열사의 지분도 1%가 안 되는데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를 정상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순환출자는 소유와 지배의 목적이 있는데, 소유는 막지 않지만 지배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라며 “민주당처럼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주식을 강제처분하라는 게 아니라 의결권이 없으니 주식을 보유하든지, 팔라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3호 안은 당과 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 캠프, 심지어 모임 내부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박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는 게 맞지만 기존 순환출자까지 소급 적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상호 출자는 제한하고 있어 사실상 상호 출자와 같은 효과를 내는 순환출자도 법 적용을 받아야 하지만 법을 소급해 적용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법안 발의에 서명하지 않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친박(박근혜)계 의원은 “이번 법안은 내가 생각했던 경제 민주화와는 거리가 멀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서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법안엔 모임 소속 의원 40명 중 17명이 서명하지 않았고 1, 2호 법안엔 서명했지만 3호 법안엔 서명하지 않은 의원도 꽤 된다. 강은희·권은희·이재영·정병국·황영철 의원 등이 이에 해당되는데 이 중 한 명은 “그나마 1, 2호 법안은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법안은 너무 나갔다고 생각한다”며 “야당의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려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 후보와 가깝고 과거 박 후보의 경제 교사 역할을 한 이한구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법안에 “당론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고 최경환 캠프 총괄본부장을 비롯해 강석훈·안종범 의원 등 캠프 핵심 경제통 의원들은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조만간 경제 민주화 종합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경환 캠프 총괄본부장은 기자와 만나 “현재 여권 내 경제 민주화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과 당내 그리고 캠프 3개 목소리가 각각 다르게 존재하는데 조만간 논의를 통해 협의점을 찾아 세부적인 박 후보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반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박 후보 캠프가 도와주지 않으면 민주당과도 연대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나서 향후 국회에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김재후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