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는 최근 구조조정과 감원이 한창이다. 올 상반기 주식거래가 활력을 잃으면서 고점 대비 거래 대금이 반 토막 났고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그래도 숨통을 틔운 것은 채권이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지난 7월 인하하면서 금리와 거꾸로 움직이는 채권에서 평가 이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새로운 수익 모델 마련에 고민하던 증권사들은 앞다퉈 채권 보유 비중을 늘리고 경쟁적으로 채권 전문 인력 영입에 나서고 있다.
[여의도서 불붙은 채권 전쟁] 캐시카우 ‘ 부상’… 인력 스카우트 ‘ 후끈’
지난 상반기 증권가에는 사상 최악의 그림자가 그리웠다. 유럽 재정 위기에 따른 증시 급등락으로 결정타를 맞아 거래 대금이 급감했고 증권사들의 실적은 거의 반 토막 났다. 국내 증권사들은 영업 환경을 감안할 때 일평균 거래 대금이 최소 6조5000억 원 이상은 돼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브로커리지(중개 수수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최대 13조 원에 이르던 코스피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지난 2월 6조8482억 원으로 감소했고 4~5월에 4조 원대로까지 뚝 떨어졌다. 최근엔 4조 원대 이하로까지 추락하는 등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 결과 증권사가 실적 악화의 늪에 빠졌다. 순이익이 전년 대비 반 토막이 넘게 줄었으며 3개사 가운데 1개는 적자를 봤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증권사 1분기(2012년 4~6월) 실적을 보면 증권사의 전체 순이익은 216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66억 원 감소(-72.7%)했다.

증권사의 수익원은 크게 브로커리지·트레이딩·자산관리·투자은행(IB)으로 나눠진다. 브로커리지는 수수료 수입이 5390억 원(-37.2%) 줄었다. 다른 때였다면 브로커리지 부진을 커버했던 자산관리 부문도 수익이 1060억 원에서 460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트레이딩 부문은 주식 관련 손실이 같은 기간 마이너스 370억 원에서 마이너스 4120억 원으로 무려 3750억 원의 손실을 봤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한국은행에서 현재 3.25%인 기준금리를 3.00%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의 통화정책 운용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강은구기자egkang@hankyung.com 2012.7.12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한국은행에서 현재 3.25%인 기준금리를 3.00%로 하향 조정하는 내용의 통화정책 운용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강은구기자egkang@hankyung.com 2012.7.12
채권으로 재미 본 증권사

이런 불황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은 채권이었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지난 7, 8월 각각 인하, 동결하면서 금리와 거꾸로 움직이는 채권에서 평가이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보통 채권은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떨어져 손실이, 금리가 내리면 가격이 올라 이익이 발생한다. 증권사 1분기 채권 관련 손익은 1조3910억 원으로 같은 기간 9620억 원 대비 약 44.6% 증가했다. 일부 증권사는 채권 보유로 수백억 원에서 심지어 1000억 원대가 넘는 차익을 거둔 사례도 있다는 전언이다. 국내 10개 증권사 상품 운용 손익이 1분기 674억 원에서 2분기에는 1399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신한금융투자는 전망했다.

증권사들의 채권 보유액은 꾸준한 증가 추세다. 증권사 채권 보유액은 5년 전 40조 원 규모에서 2011년 말 기준 104조 원까지 2배 넘게 늘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보유한 채권 규모는 60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많은 채권 운용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KDB대우증권은 지난해 말 잔액 기준으로 단기 매매 채권과 매도 가능 채권을 모두 포함해 평균 11조 원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국내 채권 규모는 10조3000억 원이고 외화채권도 7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까지 8조9650억 원 정도의 채권 보유 규모를 기록했던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6월 10조 원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한금융투자도 지난 3월 말 6조9600억 원이었던 채권 보유 규모를 지난 6월 말 8조 원대까지 대폭 확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증권사들이 올 들어 채권 운용에 주력하는 이유에 대해 전체 순수익 중 20% 내외였던 채권 운용 수익이 1년 새 30% 수준까지 급증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여의도서 불붙은 채권 전쟁] 캐시카우 ‘ 부상’… 인력 스카우트 ‘ 후끈’
증권사들은 최근 채권 보유 비중을 앞다퉈 늘리면서 대규모 평가익을 노리고 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삼성·KDB대우·우리투자·현대·한국투자·키움 등 6개 증권사의 단기 매매 금융자산 가운데 채권 잔액은 38조100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27.5% 늘었다.

채권 운용 수익은 증권사의 명실상부한 새로운 투자 대안으로 떠올랐다. 세계적인 경제·금융 위기를 경험한 투자자들이 중위험·중수익 상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증권사가 채권과 그 관련 상품에 주목하는 이유다. 차상기 금융투자협회 채권시장팀장은 “유럽발 위기로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데다 은퇴연금이나 연·기금 등이 안정적인 채권 투자에 몰리면서 채권시장의 규모가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우선 증권사들은 채권운용팀을 기존에 비해 강화하거나 채권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일찍이 채권 리서치와 운용에 발 빠르게 움직인 우리투자증권은 올해 초 채권분석팀을 신설했다. 리서치전략팀에 속해 있던 채권분석파트를 독립시켜 별도 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이를 위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출신 연구원과 씨티은행 출신 연구원을 각각 영입해 기존 9명이던 채권분석팀을 11명으로 확대했다. 금리 분석 3명, 기업 신용 분석 8명 등이다. 국내 증권사의 채권 관련 팀 중 가장 많은 인원이다. 신용 분석 분야에서 업계의 인정을 받고 있는 신환종 연구위원이 팀장으로 채권분석팀을 이끌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채권분석팀은 매주 채권 시황자료를 발간하고 있으며 최근 한국계 해외 채권(Korean Paper) 기업 분석을 담은 자료를 처음으로 발간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1.2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1.2
채권 전문 인력 몸값 치솟아

동양증권도 지난해 리서치센터를 두 개로 분리했고 한 센터 내에 채권분석팀을 신설했다. 동양증권은 탄탄한 채권 분석 능력으로 소매 채권(리테일) 부문에서 강점을 가졌다. 하지만 최근 각 증권사마다 채권 전문 인력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인력 이탈이 잇따르고 있다. 동양증권에서 채권분석팀을 이끌던 최종원 팀장은 8월 초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신용 분석 업무를 맡게 됐다. 지난 4월에도 동양증권의 강성부 채권분석팀장이 신한금융투자로 자리를 옮겼었다. 이때 강 팀장과 함께 3명의 동양증권 연구원이 신한금융투자로 이직한 상태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동양증권으로부터 채권분석팀 인력 3명을 스카우트하면서 채권 애널리스트 6명을 확보하게 됐다. 신한금융투자도 채권 통화 상품(FICC) 본부단위의 체제 구축을 통해 전문 인력을 보강하고 본부 단위의 시장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채권전략팀을 마련해 더욱 짜임새 있는 운용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대신증권·현대증권·메리츠종금증권 등은 최근 잇따라 외부 기관의 주요 인력을 영입하고 채권운용팀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 현대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은 올 들어 채권 운용 전문가로 꼽히는 김신 사장과 김용범 대표를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혔다. 김 사장은 국내 채권 브로커 1세대다. 김 대표는 보험사와 외국계 증권사를 두루 거치며 채권 운용을 맡아 왔다.

또 KDB대우증권과 한국투자증권도 업계서 손꼽히는 채권 운용 전문가를 임원으로 앉히고 채권 운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초 홍콩 현지법인에 ‘글로벌 트레이딩 센터(Global Trading Center)’를 마련한 KDB대우증권은 외화채권의 투자 지역과 자산을 유럽·미국·아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으로 다변화하며 외화채권의 통합적 운용을 강화할 계획이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그동안 주식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시장의 변화에 맞춰 채권 분석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약 1500명의 애널리스트 중 채권 담당은 10%도 안 되는 100명 미만”이라며 “증권사들이 채권·신용(크레디트)·상품(커머더티) 등 비주식 부문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쪽으로 수익성 개선의 방향을 잡고 있어 채권 전문 인력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 쪽에서 채권 전문가를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국내 채권뿐만 아니라 수익률 잠재력이 보다 좋은 해외 채권을 발굴하고 운용할 전문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 실망한 개인 투자자들이 채권의 매력에 눈을 돌리면서 증권사들은 채권 투자자 잡기에 나섰다. 삼성증권은 지난 8월 8일 전 지점에서 동시에 투자 설명회를 열고 채권 투자의 장점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매달 열리는 자산 관리 세미나에서 최근 주요 교육 이슈는 채권 등 저금리 시대를 대비하는 대안 투자다.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PB센터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채권 설명회는 일반 점포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여의도서 불붙은 채권 전쟁] 캐시카우 ‘ 부상’… 인력 스카우트 ‘ 후끈’
채권 관련 상품 ‘봇물’

리테일(소매) 고객들 사이에서 채권 투자에 대한 수요가 커지자 각 증권사 자산 관리(WM) 관련 부서는 채권 관련 투자 상품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브라질 국채는 물론 국민주택채권·물가연동채권을 비롯해 채권 랩어카운트, 채권형 펀드 랩, 단기 채권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채권형 펀드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수익률은 물론이고 자금 유입 면에서도 주식형 펀드를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펀드 평가 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연초 이후 해외 채권형 펀드와 국내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8월 9일 기준)은 각각 8.64%, 3.93%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주식형 펀드(2.68%)와 해외 주식형 펀드(-7.05%)를 앞서는 수치다. 해외 채권형 펀드와 국내 채권형 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은 각각 6.83%, 5.94%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1.14%)와 해외 주식형 펀드(-7.90%)는 마이너스 성과를 냈다.

‘AB이머징마켓증권투자신탁[채권-재간접형]ClassA’는 연초 이후 15%의 수익률로 해외 채권형 펀드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 채권형 펀드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우리KOSEF10년국고채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채권]’으로 7.1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자금 유입 면에서도 채권형 펀드가 주식형 펀드를 크게 앞섰다. 연초 이후 해외 채권형 펀드와 국내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각각 5728억 원, 8556억 원 증가한 반면 국내 주식형 펀드는 148억 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금통위가 8월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 상황이 추가적으로 악화된다면 하반기 중 한 번 정도는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하반기 금통위의 추가 금리 인하와 시장금리의 하락을 예상한다면 앞으로 안전 자산 선호도에 따라 우량 기업 채권 등 채권형 상품에 투자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채권 투자 수익은 일시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증권사의 수익성 확보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수수료 수입 급감으로 증권사 내부 분위기는 최악이지만 채권 운용을 잘한 증권사들은 실적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전 자산 선호 때문에 채권시장이 너무 과열돼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7월 채권시장 하루 평균 거래액은 19조490억 원으로 지난해 12월 13조2540억 원보다 43.7%나 급증했다. 안전 자산 선호 경향이 계속될지, 아니면 투자 자금이 위험 자산으로 서서히 이동할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유럽뿐만 아니라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불확실성 등으로 본격적인 경기 부양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안전 자산 선호 경향이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반대로 미국·독일 국채와 스위스 프랑의 초강세가 과열 국면으로 이어지면서 그동안 회피했던 위험 자산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채권시장이 지속적으로 현재의 수익성을 담보할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증권사들의 수익 다변화 노력은 계속될 예정으로, 채권 운용 인프라 구축에 성공하는 등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곳만이 반 토막 실적 벼랑 끝에서 빠져나올 것으로 보인다.
소매채권에 관심이있는 고객들이 증권회사를 찾아 상담을 받고 있다.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2005.12.19
소매채권에 관심이있는 고객들이 증권회사를 찾아 상담을 받고 있다. /양윤모기자yoonmo@hankyung.com 2005.12.19
주목할 만한 채권 및 상품 “이머징 국가 채권 발굴해야”

일반 투자자들의 ‘중위험·중수익’의 선호가 지속된다면 국내외 채권과 채권형 상품에 투자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해외 채권은 높은 수익률의 잠재력을 갖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환종 우리투자증권 채권분석팀 팀장은 “해외 채권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며 “브라질·멕시코·칠레·인도네시아·필리핀·체코·폴란드 등 이머징 국가의 채권을 발굴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머징 국가에 투자하는 국공채 펀드는 좋은 수익을 내고 있다. 해외 채권형 펀드 투자는 국내 채권 금리 대비 높은 이자를 기대할 수 있고 다양한 지역과 채권에 대한 분산투자가 가능해 안정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환 헤지가 어려운 이머징 현지 통화 채권에 투자할 때에는 시장 불안에 따른 성과 하락 위험이 높다. 업계 전문가들은 해외 채권 펀드에 투자할 때는 환율이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 헤지에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경기 사이클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이일드 채권 펀드(high yield fund)는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이일드 채권 펀드는 고수익·고위험 펀드로, 일반 채권보다 신용도가 낮은 채권을 일부 편입한 펀드 상품이다. 수익률은 높지만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원금 손실의 우려가 있다. 미국 하이일드 채권은 해외 채권 중 가장 유망한 투자 대상으로 거론된다. 글로벌 자금의 지속적인 투자 흐름과 미국 기업의 높은 현금 보유, 이익 성장 등을 고려할 때 높은 성과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물가 연동 국채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물가 연동 국채는 원금과 이자 지급액을 물가 변동에 따라 결정하는 채권으로,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라 금리가 움직인다.

취재=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