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등 중국 주요 도시를 여행한 독자라면 현대차의 쏘나타·아반떼 등이 ‘북경현대(北京現代·베이징셴다이)’ 브랜드를 달고 달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북경현대’는 중국 자동차 생산사인 베이징 자동차와 현대차의 합작 법인이다.

이는 중국에서는 일반적인 합작 형태다. 중국의 저렴한 생산비와 넓은 내수시장을 감안할 때 해외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것보다 합작 법인을 통해 중국 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일본 닛산과 중국 둥펑자동차의 합작 법인인 ‘둥펑르찬’, 일본 도요타와 중국 이치의 합작 법인인 ‘이치펑텐’ 등도 같은 사례다.

비록 합작사이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외국 기업과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경쟁 관계에 있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도 독자적인 모델을 개발해 판매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사로서는 중국 현지 생산 과정에서 제조 기술이 유출되는데 따른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된 사례가 있었다.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외국사인 독일 폭스바겐과 중국 최대 자동차 생산사인 이치 사이에서다.
OLYMPUS DIGITAL CAMERA
OLYMPUS DIGITAL CAMERA
중국 경제관찰보 등 중국 매체는 최근 폭스바겐이 이치의 특허 침해 여부와 관련한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엔진과 변속기 관련 특허 기술 4종을 이치가 도용해 독자적인 신차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기술은 ‘골프’ 등 폭스바겐의 주력 자동차 모델에 사용되는 ‘EA111’ 엔진과 ‘MQ200’ 변속기에 적용되는 것이다.

독일 매체들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2010년 이치의 특허 도용 사실을 인지했다. 당시 폭스바겐은 정식으로 항의했으며 이치는 “해당 기술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치가 최근 EA111 엔진과 완전히 동일한 ‘4GB’엔진을 내놓으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폭스바겐 측은 이치가 새로 내놓은 엔진과 변속기는 모델 이름만 다를 뿐 나머지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치폭스바겐은 1990년 세워져 1991년 가동을 시작한 ‘1세대’ 합작 자동차 회사다. 장춘공장을 시작으로 중국 내에 4곳의 자동차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내 판매량은 56만2515대로 전년 대비 21.2% 늘어나는 등 중국 내 주요 자동차 생산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폭스바겐, 이치 눈치 살펴

재미있는 것은 양쪽의 반응이다. 잘못은 이치가 한 것이 명백한 데도 정작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폭스바겐이다. 폭스바겐 고위 관계자는 “이치 측이 폭스바겐의 자동차를 현지 생산하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도용했다”면서도 “당장은 대응할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 누적된 문제가 곪아 터졌는데도 합작 파트너인 이치에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치 측은 폭스바겐의 문제 제기가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 이치 측의 한 기술 전문가는 경제관찰보와의 인터뷰에서 “폭스바겐이 철 지난 기술을 내세워 과민 반응하고 있다”며 “합작 관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떠나면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적반하장식 반응에도 폭스바겐 측은 제대로 항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4월 마틴 윈터콘 폭스바겐 대표(CEO)가 중국을 방문해 원자바오 총리와 이치폭스바겐 운영 기간을 앞으로 25년간 연장하는 데 합의한 직후이기 때문이다.



노경목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