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유자·불법 점유자와 재계약은 위험

부동산 경매에서 낙찰 후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그 많은 돌발 상황은 주로 명도 과정에서 발생한다. 낙찰 받은 부동산의 전 소유자 또는 임차인과의 임대차 재계약으로 인해 낙찰자가 곤란에 빠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간혹 낙찰 후 점유자를 만나 부동산을 인도해 줄 것을 요구했을 때 점유자가 ‘임대료를 지급하고 사용할 테니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자’고 요구할 때가 있다. 낙찰 받은 목적이 실사용에 있다면 당연히 일언지하에 거절하겠지만 임대 수익을 노리고 낙찰 받았다면 여간 구미가 당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도 비용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임차인을 구할 때까지의 ‘기간의 손실 비용’과 ‘부동산 중개 수수료’도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재개발 예정지인 노원구 상계동 1050-2번지 일대.

/허문찬기자  sweat@  20100706
시공사 선정을 앞둔 재개발 예정지인 노원구 상계동 1050-2번지 일대. /허문찬기자 sweat@ 20100706
임대차 계약서 쓰는 순간 ‘인도명령’ 불가

그러나 이와 같은 점유자의 제안은 그리 녹록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그 점유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임대차 계약금까지 받았더라도 이후 임차인이 임대차 잔금(보증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잔금을 지급하지 않으니 낙찰자는 당연히 인도명령을 신청하겠지만 이때 점유자가 낙찰자와 작성한 임대차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인도명령 결정이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임대차 계약이 체결됐다는 것은 이미 낙찰 물건에 대한 명도 문제가 협의에 의해 종결됐다고 법원은 판단하기 때문이다. 임대차계약의 불이행으로 임차인을 내보내려 한다면 인도명령이 아니라 명도소송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점유자의 임대차계약 제안은 무조건 거절해야 하는 것일까. 점유자가 전 소유자냐, 불법 점유자 또는 임차인이냐에 따라 낙찰자의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 소유자나 불법 점유자라면 임대차계약은 일단 위험하다고 봐야 한다. 전 소유자는 이미 채무로 인해 부동산을 매각당할 정도로 재정적으로 위태로운 상태다. 임대차 계약금은 어떻게든 지급하더라도 잔금이 지급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점유자가 불법 점유자라면 남의 물건을 그전부터 권원(權原: 행위를 정당화하는 법률적인 원인)도 없이 점유하고 있을 정도의 무법자라는 말이고, 그 무법의 희생양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임대차계약을 요구하는 점유자가 임차인이라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임차인이 관리비 또는 공과금을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는지, 경매로 매각되기 전에 월세를 전 소유자에게 제날짜에 지급했는지 여부를 살펴보면 된다. 요즘은 월세를 은행 계좌로 입금하는 게 대부분이라 임차인이 월세를 어김없이 지급했다면 그 사실을 증빙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떠한 이유로든 결국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면 만약의 불이행에 대비해 계약 조건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임대차 계약서 작성과 계약금의 수령 절차는 생략하는 것이 좋다. 임대차계약은 하되 약정한 날에 임대차 계약서 작성과 보증금 전부의 지급을 동시에 하는 방법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계약서 작성과 계약금 지급에 의한 ‘권원 없는 점유자에서 적법한 임차인으로의 전환’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약정한 날이 도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인도명령의 절차는 계속 진행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약정한 날 점유자가 다른 말을 하더라도 명도 기간이 길어지지 않는다. 약정일 도래 전에 인도명령 결정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 인도명령 결정문에 기한 ‘강제집행’을 신청하지 않는다면 강제집행은 진행되지 않는다. 낙찰자가 인도명령 결정을 받아 놓고 약정일까지 강제집행만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점유자가 안다면 그 임대차 약정을 그리 호락호락하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김재범 지지옥션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