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담당 애널리스트인 내가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입학사정관제가 뭐예요?’다. 학부모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전형인 입학사정관제는 대입 모집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심지어 서울대에서는 모집 정원 중 80%를 수시로 선발하며 모두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는다.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수능 위주의 획일적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해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소위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였다.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1995년에는 100% 수능 성적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소위 성적 위주의 획일적 선발 방식만 존재하던 시기였는데, 아버지는 그 당시 나를 입학사정관제에 걸맞은 방식으로 키웠다. 소위 입학사정관제의 얼리어답터라고 부를 만하다.

딸 셋의 막내였던 내게 아버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공부해라”, “왜 공부를 못하니”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심지어 시험공부를 한다고 밤을 새우던 내게 “왜 밤을 새우니,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 것이란다”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또한 독서를 즐겼던 내 손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딸들의 필독서였던 ‘신데렐라’, ‘백설공주’ 대신 추리소설이 쥐어져 있었다. 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초지일관 추리소설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이웃들은 여자애가 왜 추리소설만 읽느냐며 혀를 끌끌 찰 때 아버지는 어린이와 중·고교생을 위한 추리소설을 열심히 사주시곤 했다.

지금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교와 학원에 열심히 데려다 주는 운전사 역할을 하지만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께서는 대학생이자 성인이 된 큰언니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아르헨티나로 사업을 하러 떠나셨다. 각각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이었던 세 딸들은 1년 반 동안 가정경제를 매우 씩씩하게 꾸려나갔다.
[아! 나의 아버지] 입학사정관제의 얼리어답터
[아! 나의 아버지] 입학사정관제의 얼리어답터
심지어 예고를 다녀서 실기시험도 준비해야 했던 작은언니는 대학생인 큰언니의 뒷바라지로 성공적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나 역시 고등학교 내내 입시 스트레스나 사교육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먼, 일명 최근 교육계에서 요구하는 ‘자기 주도 학습 전형’으로 자연스레 대학에 입학했다. 자녀 입시에 매달리는 요새 학부모들에겐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독립적인 삶을 사는 아르헨티나 현지인들의 얘기를 해주시며 대학 입학금과 첫 학기 등록금을 주신 후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 용돈을 벌어라”는 말씀과 함께 금전 지원을 해주지 않으셨다. 결국 입학금과 첫 등록금은 내 인생에서 아버지에게 받은 마지막 돈이었고 대학생 시절 과외에서부터 래프팅 캠프 진행, 레크리에이션 강사, 국제 행사 진행, 아이스크림 가게 점원 등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 와중에 호텔에서 행사를 지원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금융권에 종사하는 애널리스트와 금융 관계자들을 보면서 기필코 졸업하면 내가 저 자리에 있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애널리스트를 하게 된 근간이 됐다.

계면쩍지만 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 상을 수차례 받았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사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해외 유학파도 아니다. 이런 내가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얼리어답터였던 아버지의 자기 주도형 학습에 근거한 교육철학 덕분이었지 않을까.


김미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