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명품 업체들이 고민에 빠졌다. 세계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명품에 높은 관세를 매겨 중국과 유럽 매장에서의 판매 가격 차이가 너무 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명품 업체들은 이 가격 차이를 줄이기 위해 유럽 판매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 업체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 그룹(LVMH)은 최근 중국과 유럽 매장 제품 판매 가격 차이가 사상 최대 폭으로 벌어져 중국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장 자크 귀오니 LVMH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콘퍼런스 콜에서 유럽 매장 제품의 가격을 인상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루이비통과 LVMH의 이익에 맞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답했다. 가격 인상을 시사한 것이다.

프라다는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프라다는 “유로가 계속 약세를 보이면 중국과 유럽 매장의 판매 가격 차이를 줄이기 위해 유럽 매장의 판매 가격을 최대 10%까지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시리즈]
중국 상하이 난징시루 명품거리.
김정욱기자 haby@2007.12.19
[중국시리즈] 중국 상하이 난징시루 명품거리. 김정욱기자 haby@2007.12.19
유럽보다 약 40% 비싸게 판매돼

중국 판매 가격은 유럽보다 약 40% 비싸다. 루이비통의 대표적 가방 제품인 ‘스피디 30’은 베이징이나 상하이 매장에서 6100위안(964달러)에 팔린다. 그러나 같은 제품의 유럽 판매 가격은 500유로(619달러)다. 샤넬의 ‘타임리스 클래식 플랩’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는 3100유로(3839달러)인 반면 중국에서는 3만7000위안(5850달러)이다.

가격 차는 최근 유로가 위안에 비해 약세를 보이면서 더욱 벌어졌다. 유럽 재정 위기 여파 때문이다. 작년 이후 유로는 달러 대비 약 15%, 위안 대비 16% 각각 떨어졌다. 트래디션 시큐리티 앤드 퓨처스의 크리스천 귀요트 애널리스트는 “가격 차가 너무 많이 벌어졌다”며 “명품 업체들은 신속히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업체들은 수년간 중국 정부에 관세를 낮추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들어주지 않고 있다. 관세를 낮추면 세수가 줄어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명품 업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중국의 판매 가격을 낮추면 이익이 줄고 브랜드의 평판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의 판매 가격을 높이면 재정 위기로 지출을 줄이고 있는 유럽 소비자들이 더욱 지갑을 닫을 우려가 있다.

명품 판매 가격의 차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명품 쇼핑 여행을 떠나고 있다. 쇼핑 여행 전문 업체인 글로벌 블루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유럽·싱가포르·홍콩 등지로의 여행에서 평균 1만1000유로를 쓴다.

중국이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명품 업체들은 최근 몇년간 호실적을 누려 왔다. 구찌의 모회사인 PPR그룹은 올해 실적이 작년보다 크게 개선될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LVMH와 에르메스인터내셔널도 같은 전망을 내놨다. 프라다는 상반기 브랜드 부문 실적이 40.5% 증가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유럽 재정 위기 여파로 선진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지만 중국 등 신흥국 소비자들이 명품을 사들이기 시작한 덕택이다.

프랑스 증권사 크레디트아그리콜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담당 애널리스트는 “명품 업체들이 유럽 판매 가격을 5~10% 이상 인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중국 소비자들의 해외 명품 쇼핑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판매 가격이 오르면 구매량은 줄어들 것이라고 WSJ는 전망했다.


전설리 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sljun@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8월 13일 발행 87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