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전통의 일본에서도 법조인은 최고 직업 중 하나다. 법률가로서의 직업 선호는 한국보다 높으면 높았지 결코 약하지 않다. 다만 요즘은 얘기가 좀 달라졌다. 고정관념을 깨는 변호사의 지위 하락이 적잖이 발생한 결과다. 로스쿨 이후부터다. 일본의 로스쿨(법과대학원)은 2004년이 원류다. 표준적인 수업 연한은 3년이되 법학 전공자에 한해 2년제가 가능하다. 93단위 이상을 들으면 신(新)사법시험 수험 자격과 법무박사(전문직) 학위를 받는다.

수료자는 5년 동안 3회까지 변호사 시험을 치를 수 있다. 그 이상은 ‘삼진아웃제’다. 여기서 떨어지면 예비 시험이 필수다. 신사법시험 응시 자격 취득 시험으로 로스쿨 졸업생 중 3회 탈락자와 비(非)로스쿨 출신자를 위한 제도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본의 로스쿨은 최근 5년간 모두 1만1000명의 변호사를 배출했다.

일본의 로스쿨 인기는 요즘 꽤 시들해졌다. 변호사가 되기도 힘들거니와 돼도 돈벌이와 명예가 예전만 못해서다. 당장 낮은 합격률 때문에 지원자가 급감하는 추세다. 2007년까지는 입학 정원을 채웠지만 2012년엔 4484명 정원에 3150명이 입학하는 수모를 겪었다. 로스쿨 지원 경쟁률은 13 대 1에서 4 대 1로 감소했다. 그나마 실제 입학은 더 줄었다. 올해에는 10개교 중 9개교(86%)가 신입생 미달 사태에 봉착했다. 학생보다 교원이 더 많은 학교도 있다. 지원자가 줄면서 2010년 1개교가 자진해 문을 닫은 후 내년엔 5개 로스쿨이 추가로 폐교할 예정이다. 규모 축소 등 로스쿨에 대한 정부·여론 중심의 구조조정 압박이 높아지자 일부는 통폐합 카드를 꺼내들었다. 힘겨운 단독 연명보다 합쳐서 위기 난관을 극복해 보자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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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개 로스쿨 폐교 예정

인기 하락의 원인은 무엇보다 제도 목적의 달성 실패에서 비롯된다. 변호사 자격 취득의 어려움과 신규 변호사의 취업난이다. 일본은 2006년 이후 신규 변호사 공급이 전체 인원의 10% 정도다. 매년 2000명 수준이다. 이 결과 2003년 2만 명이던 변호사는 2010년 3만 명을 넘어섰다. 법률 서비스의 양적 확대라는 노림수는 확실히 달성했다.

다만 변호사로선 공급 확대가 곧 경쟁 압박을 의미한다. 변호사의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규 인력의 일자리 찾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이로써 ‘가난한 변호사’의 실상은 공공연한 비밀을 넘어섰다. 실제 2011년 사법연수원을 마친 합격자 중 20%가 변호사 등록조차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일본변호사연합).

연회비(50만 엔)를 낼 능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일부는 자격 포기까지 결심한다. 취직해도 고액 연봉은 ‘그림의 떡’이다. 신출내기 변호사의 로펌 연봉은 대략 300만 엔대에 불과하다. 30대 중반의 월급쟁이 변호사의 연봉도 2007년 852만 엔에서 2009년 679만 엔으로 감소했다(임금 구조 기본 통계 조사).

로스쿨 위기 시대는 신조어까지 양산해 냈다. 로스쿨 졸업의 신규 변호사를 구분해 놓은 새로운 계급 단계다. 원래 연수 졸업생은 선배 사무실에 취직해 월급을 받으며 업무를 익히는 루트가 표준 모델이다. 얹혀사는 더부살이라는 점에서 ‘이소로(居候) 변호사’로 불린다. 이렇게 실력을 쌓은 뒤 독립하는 게 전체 변호사의 96%에 달한다.

그런데 이제 ‘이소벤(居候弁)’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식객을 받아줄 기존 사무소가 별로 없어졌다. ‘노키벤(ノキ弁)’은 그 아래 변호사다. 가까스로 취직했지만 월급 없이 의뢰인까지 직접 찾아다니는 비운의 하급(?) 변호사다. 혹은 고정급 없이 기존 사무소의 책상만 빌리는 경우도 해당된다. 최하위 계급은 ‘소쿠도쿠(卽獨)’로 불리는 변호사다.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홀로 의뢰인을 찾는 독립·재택 변호사다. 당연히 먹고살기 힘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트러블이 증가하고 있다. 오사카변협에 따르면 2006년 39건에서 2011년 98건으로 늘었다. 베테랑과 달리 경험 부족이 최대 원인이다.

결국 일본의 로스쿨은 총체적 위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최근 일본변호사연합의 설문 조사에서 “로스쿨이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문에 69%가 “그렇다”고 했을 정도다. 제도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고치는 게 옳다. 그런데 이마저 쉽지 않다. 수임 경쟁만큼 치열하게 펼쳐지는 이해관계인의 밥그릇 싸움 때문이다. 기존 변호사의 출신별 대결 양상이 날카롭다. 자신들이 시장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후배들의 합격률 증가에는 이구동성 반대하지만 불협화음을 없앨 제도 개선과 관련해선 동상이몽이다. 구(舊)사법제도 출신은 과거 제도로의 회귀를, 로스쿨 출신은 현재 제도의 안착을 강조하니 타협점이 찾아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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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학비로 평균 318만 엔 빚

로스쿨의 문제점은 다양하게 거론된다. 일단 제도 목적을 훼손한 낮은 합격률과 로스쿨의 규모 과대를 뺄 수 없다. 애초 합격률은 70~80%가 상정됐다. 이 정도야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실제로는 턱없는 수준이다. 첫해 48%에 달했던 합격률은 2011년 24%까지 떨어졌다. 물론 할 말은 있다. 70~80%란 게 모든 로스쿨에 해당되지 않을 뿐더러 그 수치는 5년에 걸쳐 3회 수험한 결과의 누적 합격률이란 반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 규모 논란은 피하기 힘들다. 애초 정부가 상정한 적정 규모는 20~30개 정도였다. 많아도 40개에서 묶어 인원을 4000명으로 제한할 생각이었지만 실제로는 74개 대학, 5825명의 정원으로 시작됐다. 지방대의 균등 기회 요구와 지역 의원의 정치 로비 등으로 난립이 반복된 결과다. 즉 경쟁자가 많아지고 응시 기회마저 3회로 제한되면서 시험 합격이 만만치 않아진 것이다. 합격률 0%의 지방 로스쿨까지 생겨났다.

비용 문제도 민감한 이슈다. 로스쿨의 고액 학비는 또 다른 거대 장벽으로 지적된다. 로스쿨의 연간 학비는 사립이 100만~250만 엔대에 달한다. 비교적 저렴한 국공립조차 80만 엔대다. 시험에 합격해도 금전 부담은 여전하다. 최근 사법 연수생에게 주어지던 생활비 조의 급여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월급 대신 생활비를 빌려주는 대여 제도(300만 엔)로 변경됐다. 이 때문에 설문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사법 연수생 중 53%가 로스쿨 학비 등으로 평균 318만 엔의 빚을 진 상태다(일본변호사연합회).

교육 현장의 문제도 심각하다. 교과 내용만 해도 학교마다 가지각색이다. 일정 수준을 갖춘 법조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취지와 달리 로스쿨마다 커리큘럼과 교육 레벨이 ‘들쑥날쑥’이다. 실무 인력의 양성소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판례만 읽거나 학술 보고서에 천착하는 로스쿨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엄정한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보조금을 줄이거나 조사·지도를 엄격히 하자는 요구다.

한쪽으로 치우친 교육진의 구성도 한계다. 로스쿨은 실무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에도 불구하고 강사진은 대부분 학자 위주로 편성됐다. 외부의 실무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적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학교 운영상의 관례를 볼 때 균형 잡힌 교육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따라서 일각에선 대학의 자치 능력에 맡기기보다 적극적인 통폐합과 교수·학생 감원 등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게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일본 로스쿨의 현실은 한국에 꽤 괜찮은 반면교사다. 비록 한국 제도가 미국 모델을 지향하고 세부 운영에서도 일본과 차이점이 많지만 전체적인 마찰 원인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장 상황과 교육 현실 등에서 한일 양국은 유사점이 많다. 즉 배출 인력의 질적 향상을 실행할만한 로스쿨의 경쟁력 여부가 의문스럽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한국에서의 인기 하락 개연성도 충분하다. 한국은 제도 운영의 객관성과 투명성 결여마저 지적됨으로써 일본보다 갈등 여지가 한층 더 높다. 일본과 달리 재정 지원 없이 무한 경쟁에 내몰린 한국의 로스쿨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 모델에서 타산지석을 검토해볼 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