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년 전 만 하더라도 동네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영업도 잘돼 신작 블록버스터 영화는 예약해야 겨우 빌려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새 동네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곳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비디오보다 책 대여가 주력으로 바뀐 것이다.

그 많던 동네 비디오 대여점은 왜 사라졌을까.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온라인의 활성화다. 인터넷에 들어가 클릭만으로 영화든 드라마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TV(IPTV)와 디지털 케이블 TV의 등장도 비디오 대여점을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번거롭게 대여점에 가지 않더라도 집에 앉아서 보고 싶은 것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여전히 DVD나 CD 등을 대여해 주는 숍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이 위축되기는커녕 새로운 서비스를 추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골목마다 비디오 대여점이 줄지어 서 있고 대형 매장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20~40대가 주류를 이루는 이용자들 또한 계속해서 느는 추세다.

관련 업체들의 수익성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업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게오와 쓰타야를 보더라도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외형이 해마다 커지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역시 정보기술(IT)이 발달해 있고 온라인이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든 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비디오 대여점이 잘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비디오 대여점이 일본서 잘나가는 까닭, 한물간 서비스?…차별화로 승승장구
비디오 대여점이 일본서 잘나가는 까닭, 한물간 서비스?…차별화로 승승장구
게오홀딩스 연간 매출액 3조5000억 원 달해

1987년 비디오 대여업을 시작해 25년째 DVD·CD·만화책 등을 빌려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 상장 기업 게오(GEO)홀딩스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나고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한물간 서비스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기라도 하듯 순항하고 있다. 요즘은 기존 비즈니스 외에 재활용 의류 사업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3월 결산법인인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2011년 3월 기준으로 2530억 엔(약 3조5000억 원)에 이르고 영업이익도 140억 엔(약 2000억 원)이나 올렸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2010년 3월 대비 약 5%쯤 성장한 수치다.

점포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비디오 대여점, 재활용 의류 숍 등으로 나뉘는데 직영점과 프랜차이즈형 점포를 합쳐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총 1605개다. 이는 2010년 3월(1321개)에 비해 무려 300개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핵심 사업인 비디오 대여점 역시 2010년 978개에서 2011년 말 1171개로 크게 늘었다. 멤버십 회원 수도 2010년 3월 1150만 명 선에서 2011년 12월에는 1388만 명으로 230만 명 이상 증가했다.
비디오 대여점이 일본서 잘나가는 까닭, 한물간 서비스?…차별화로 승승장구
게오의 성공 비결은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직영점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체 점포 가운데 90% 가까이를 본사에서 직접 운영한다. 나머지는 프랜차이즈형 점포로 전직 임직원들이 소유하고 있다. 게오홀딩스를 이끄는 엔도 유조 사장은 “아마 프랜차이즈 형태로 점포를 운영했으면 지금의 성공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게오 같은 회사가 버티기 때문에 일본의 비디오 대여점 사업 역시 외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나름 선전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직영점의 장점은 많다. 같은 시스템으로 전 점포를 운영하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든 일사불란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고 관리적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전국의 숍 실태를 신속하게 파악해 문제점을 개선하고 소비자의 트렌드를 읽는 데도 유리하다. 더 나아가 재고 처리를 하는 데도 이점이 있다. 엔도 사장은 “직영점의 특성상 숍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망해 나간 자리에 들어가면 별도로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많아 숍을 낼 때 비용이 생각만큼 많이 들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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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 방식도 좀 독특하다. DVD·CD·만화 등을 대여해 주는 것 외에 중고나 신제품을 직접 팔기도 한다. 대여료는 DVD가 편당 보통 300엔(4200원)을 받고 좀 오래된 것은 100엔(1400원)에 빌려주기도 한다. 소비자가 매장에 가서 직접 구입할 때 가격의 10% 수준이다.

게오가 기존 비디오 대여점에 중고 의류 숍을 접목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기본적으로 중고 의류 숍은 별도로 운영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함께 직영하기도 한다.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입지 않는 옷을 싸게 산 다음 수선해 소비자들에게 웃돈을 붙여 되파는 사업으로 향후 게오의 또 다른 주력 사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엔도 사장은 “일본에서 중고 의류 시장은 해마다 10%씩 성장하고 있다”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의 반응도 아주 뜨겁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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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이나 자전거 대여 쪽으로 사업 확대”

일본에서도 비디오 대여점이 언젠가 한계 상황에 다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분명 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조짐은 최근 일부 나타나기도 한다. 중·장기적으로 전망을 불투명하게 보는 시각도 적지않다.

하지만 엔도 사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는 소비자가 만들기도 하지만 업체가 스스로 창출하기도 한다고 믿는다. 일본에서 비디오 대여점이 여전히 잘나가는 이유 역시 여럿 있지만 업체들의 노력 또한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블루오션을 찾아내고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게오는 앞으로도 점포 수를 더욱 늘릴 예정이다. 잠재 수요는 있지만 아직 점포를 내지 않은 곳이 많은 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엔도 사장은 “렌털 비즈니스 수요는 앞으로도 더욱 커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고 지금 하고 있는 것 외에 생활용품이나 자전거 같은 쪽으로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고야(일본)=김상헌 기자 ksh1231@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8월 6일 발행 871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