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주자들의 대기업 정책 비교] 경제 민주화 공약 ‘ 봇물’… 출총제 재도입 ‘입장 차’](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502568.1.jpg)
박 근혜
경제 민주화를 정치권의 핫이슈로 끌어낸 주역은 바로 박근혜 전 위원장이다. 박 전 위원장은 작년 말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면서 경제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김종인 전 의원을 전격 영입해 야당이 공을 들인 경제 민주화 이슈를 선점했다.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경제 민주화를 가장 선명하고 가장 중요하게 언급한 것도 박 전 위원장이다. 그는 국민 행복 3대 핵심 과제 가운데 첫 번째로 경제 민주화를 꼽았다.
박 전 위원장의 경제 민주화 정책은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환 출자 금지,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 등을 통한 대기업의 소유 지배 구조 개선을 핵심 의제로 삼고 있는 야당 대선 후보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대목이다. 박 전 위원장은 야당의 주장을 ‘재벌 해체’로 규정하며 “우리 경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박 전 위원장은 ‘출총제 재도입 반대’, ‘기존 순환 출자 인정, 신규 순환 출자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출총제 재도입은) 실효성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용도 많이 든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7월 25일 새누리당 경선 후보 TV 토론회에서는 “자신이 투자한 투자액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며 신규 순환 출자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에 이미 순환 출자한 것은 그때 법이 허용했기 때문에 법을 믿고 한 것인데 지금 와서 안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과거까지 바로잡으라고 하면 10조 원 이상 들어가는 기업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라리 그 비용을 일자리 창출이나 미래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1986년 처음 도입된 출총제는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는 비운의 정책이다.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폐지와 재도입을 반복해 왔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비대화를 막기 위해 각 그룹별로 자회사에 출자할 수 있는 한도를 미리 못 박아 놓은 것이 핵심이다. 최초 도입 때는 순자산액 대비 40%로 출자총액 한도가 정해졌다. 이후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면서 1994년 출자 총액 한도가 40%에서 25%로 하향 조정됐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한때 폐지됐지만 부작용이 커지면서 2001년 3년 만에 부활했다.
이후 출총제는 재계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계속 약화되는 길을 걸었다. 2002년 적용 제외 조항이 신설됐고 2004년 적용 대상 기업집단이 축소됐으며 2007년 적용 대상 기업집단은 자산 6조 원에서 자산 10조 원으로, 출자 한도는 순자산액 대비 25%에서 40%로 대폭 완화됐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09년 공식 폐기돼 사라졌다.
순환 출자도 대기업의 소유 지배 구조와 직결되는 예민한 문제다. 순환 출자는 A기업이 B기업 지분을 소유하고, B기업이 C기업 지분을, 다시 C기업이 A기업 지분을 갖는 환상형 지분 구조(A→B→C→A)를 말한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못한 상당수 대기업이 아직 이러한 순환 출자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순환 출자가 1%에 못 미치는 소수 지분을 보유한 ‘재벌 총수’가 수백조 원의 대그룹을 장악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호 출자는 법으로 금지됐지만 순환 출자는 현실론에 밀려 그대로 허용됐다.
박 전 위원장이 경제 민주화의 요체로 삼는 시장의 공정한 룰 확립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이 전권을 위임받아 지휘한 4·11 총선 공약 중 상당수가 그대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박 전 위원장은 2월 29일 라디오 연설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 주기를 통한 사익 추구 행위와 무분별한 중소기업 영역 침해,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 등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어렵게 하는 일들을 방치할 수 없다”며 “계열사 간, 지배 주주 친족 간 부당 내부 거래를 반드시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 총선 공약은 경제 민주화를 통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주요 항목으로 포함하고 있다. ▷정기적인 내부 거래 실태 조사 및 친족 회사와 내부 거래 정기 직권조사 ▷특수 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한 부당 지원 행위 규제의 실효성 제고(현저성 요건 삭제) ▷중소기업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업종에 대한 진출 규제 ▷하도급 부당 단가 인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3배) 제도 도입 ▷중대한 담합행위에 대한 집단소송제 도입 ▷대기업 임원 및 지배주주 일가의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과 사면권 행사 억제 ▷상장 기업 및 대기업집단 비상장 계열사 ‘윤리헌장’ 제정 의무화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안철수
안철수 원장은 공식적인 대선 출마 발표를 미루고 있다. 하지만 7월 19일 발간된 ‘안철수의 생각’은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그의 정책 구상을 담고 있다.
안 원장은 “경제 양극화의 정점에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가 있다”며 “재벌 개혁을 통해 대기업의 특혜를 폐지하고 중소기업을 중점 육성하는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과 달리 경제 민주화의 초점을 재벌 개혁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안 원장은 출총제 재도입, 순환 출자 금지, 금산 분리 강화 등 핵심 쟁점에 대해 “대체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가공자본을 만드는 순환 출자는 없애는 방향이 맞고 유예 기간을 주되 단호하게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출총제 재도입과 관련해서는 “정권에 따라 없앴다 부활시켰다 하는데,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것 말고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금산 분리에 대해서는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다. 한국 상황에서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게 놓아 두면 더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 원장이 지적한 출총제 대안 마련 필요성과 관련해 영국식 의무 공개 매수제 도입 논의가 주목을 끈다. 물론 안 원장이 그의 책에서 직접 의무 공개 매수제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출총제 재도입과 관련한 가장 큰 논란은 경제력 집중 억제 효과가 생각보다 미미하다는 점이다. 경제개혁연구소 계산에 따르면 20대 그룹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출자 총액 제한 40%를 도입하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대기업은 SK그룹(2조4010억 원), 한진그룹(1조5662억 원), 한화그룹(2조651억 원), 현대그룹(3277억 원) 등 4개뿐이다. 여기에 예전처럼 신성장 산업 투자 등에 대한 적용 제외 및 예외 인정이 허용되면 출자 해소가 필요한 대기업은 SK그룹(3546억 원)과 한진그룹(2345억 원) 등 2개로 크게 줄어든다.
출총제는 출발부터 구조적인 취약성을 안고 있다. 출자 한도를 너무 높이면 구속력이 없고 반대로 너무 낮추면 대기업의 출자 여력이 줄어 민영화나 산업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발상의 전환’을 주장한다. 출자 제한이 아니라 출자 증대를 통해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즉 기업을 인수할 때 지금처럼 지분을 20~30% 사들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분을 100% 인수하도록 강제하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세제상 유리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른바 ‘영국식 의무 공개 매수제’다.
안 원장의 저서에서 또 하나 주목을 끄는 것은 기업집단법이다. 그는 “재벌 그룹은 사실 현행 법규상 초법적인 존재”라며 “현행법에는 재벌 체제에 대한 규정이 없고 주주 중심의 개별 회사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안 원장은 “(재벌 그룹을)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놓아 두지 말고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재벌 체제의 경쟁력은 살리되 단점과 폐해를 최소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이미 기업집단 자체를 법적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기업집단법 도입을 주장해 온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기업집단의 법적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인 총수와 참모 조직인 비서실, 그리고 각 계열사 이사회 간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며 “기업집단의 강점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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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상임고문은 박 전 위원장의 경제 민주화 공약에 대해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그는 7월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캠프가 지금 경제 민주화가 화두가 되니까 자기들도 하겠다고 간판만 걸고 있다”며 “경제 민주화는 재벌 개혁이 출발인데, 박근혜 후보의 경제 민주화에는 재벌 개혁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상임고문은 7월 12일 국회 기획재정위 첫 질의에서 “경제 민주화는 1%도 안 되는 소유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를 거느리며 초법적 경영을 하는 것을 개선하자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출총제 도입, 순환 출자 금지, 금산 분리 강화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 상임고문은 “새누리당은 기존에 이뤄진 순환 출자는 그대로 두고 신규만 막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미 순환 출자가 많이 이뤄져 재벌의 문어발식 계열 구조가 형성된 상황과 (재벌이) 골목 상권을 넘보고 있는 것을 해소하는 데 아무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두관 전 지사도 경제 민주화를 자신의 ‘정치적 유전자’ 중 하나로 꼽는다. 김 전 지사는 7월 17일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과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을 엄호했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조차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한다”며 “어떤 후보나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실천력이 문제”라고 말했다.
통합민주당의 경제 민주화 정책은 이미 당론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문재인 상임고문 등 대선 후보들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7월 9일 당론으로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출총제 재도입과 순환 출자 전면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출총제는 10대 그룹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재도입된다. 출자 한도는 순자산 대비 30%, 초과 출자는 3년 내 해소해야 한다. 만약 해소하지 않으면 초과 지분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고 공공 발주 사업 참여시 불이익을 받는다. 통합민주당은 출총제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즉시 재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개혁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순환 출자 해소 후 경영권 안정을 위해 대기업들이 추가로 사들여야 하는 지분 총액은 8조5000억 원에 불과하다. 개별 그룹별로는 현대차그룹이 5조9874억 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중공업 1조5763억 원, 삼성 7656억 원, 영풍 1799억 원, 현대 322억 원, 한진 169억 원 등이다. 흥미로운 것은 15개 그룹에서 발견되는 100개의 순환 출자 가운데 상당수가 외환위기 이후 형성됐다는 점이다.
통합민주당이 이미 관련 법안을 제출한 경제 민주화 정책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주회사 행위 규제 강화(부채비율 200%→ 100%, 자회사 지분율 40%→ 50%)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법인세 강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지분 한도 9% → 4%로 하향 ▷비은행 지주회사의 비금융 자회사 소유 금지 ▷재벌 범죄 사면 제한 ▷담합 등 중대 범죄에 대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내부 거래행위 실태 조사 후 공표 의무화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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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지사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7월 24일 TV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출마 선언에서 경제 민주화를 국정 핵심 과제로 제기했는데 상당히 의아했다”며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와 기업의 자유가 기본인데, 대한민국의 대표 선수인 대기업에 대해 브레이크를 너무 밟으면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지사는 같은 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불공정 거래는 고쳐야 하지만 소유 구조에서는 전문 경영이 나은지, 오너 경영이 나은지, 집단 경영이나 전문화를 통한 단일 경영에서 무엇인 좋은지 등은 기업이 선택할 문제이지 선악으로 가를 수 없다”며 “지금 같은 선단식 경영, 대기업 집단화 그 자체도 나쁘다고 말할 수 없으며 특히 우리는 내수가 작아 세계시장으로 나가 해외 기업과 맞서 이겨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순환 출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그대로 가야 한다”며 반대했으며 출총제 재도입은 “출자를 많이 하게 해야지 왜 출자를 막느냐”며 반박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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