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후의 치유의 인간관계


한 무리의 인간이 공통적으로 살아온 방식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결국은 각자의 ‘뇌’에 공통적으로 저장된 ‘행동 양식’이다. 그 행위들은 대부분 굳게 고정되고 반복되기 때문에 일상적인 행위가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성 역할이다. 고부 갈등은 대부분 여기에서 비롯된다.

남자의 집에 시집온 여성은 남성의 문화를 따라야 하고 남편을 가장으로 삼고 가사와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 시부모를 친정 부모보다 우선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이 엄연히 벌어지고 있다. 변형되고 형태는 달라졌지만 문화의 질긴 끈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문화는 삶의 형태가 반영되기 때문에 시대가 지나면 변화할 수밖에 없다. 부부 중심의 핵가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성장한 자녀와 사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부모 세대도 자녀 세대와 함께 사는 것을 피하게 된다. 핵가족의 가장 큰 문제는 어린 자녀의 양육이다. 맞벌이들에게는 양육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초기 갈등은 양육에 관여하는 시부모의 개입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시가에서 양육을 꺼리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됐다. 결국 양육의 문제 때문에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고 남편들은 본가보다 처가와 가깝게 살면서 처가 문화의 피할 수 없는 유입을 감수하게 된다. 점차 음식과 살아가는 습성 등이 처가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현실을 많은 남성이 불편해 한다. 문화적으로는 아직 남성이 집을 장만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여성 쪽이 집 장만에 기여하거나 장모의 성격에 의해 신혼부부의 삶에 관여함으로써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시작된다. 여성 인권이 높아지거나 어쩔 수 없이 부인의 경제력이 남편을 능가할 때 피할 수 없는 것이 장서 갈등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의 가정 갈등이 고부 갈등인 것처럼 장서 갈등은 여성의 지위가 높아짐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장서 갈등의 여성 측에서도 남성 중심적 가치관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딸이 경제를 책임지고 사위가 살림을 맡아 하는 것을 친정 엄마는 싫어한다.
고부 혹은 장서 갈등, ‘자녀의 삶에 개입하기’ 최소화하라
현재의 고부 갈등이나 장서 갈등 혹은 부부 갈등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각자가 생각하는 문화의 틀이 달라 생기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같이 살림을 분담하자고 주장하는 부인의 가장 큰 불만이 남편이 집을 장만하지 않는 것이라면 모순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육아와 살림을 주로 책임져야 한다면서 경제를 분담하자는 것도 모순이다.

고부 갈등의 문제도 현대인의 다양한 삶의 변화에 맞춰 대처해야 된다. 남성의 관점에서 결혼 초기에는 어머니보다 아내를 더 보호해야 한다. 삼십대 초반에 결혼한다고 가정하면 이때 어머니는 경제력을 포함해 사회적 힘이 많은 반면 아내는 아이를 임신 출산 그리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어머니가 연로해 힘이 없을 때는 어머니를 우선해야 한다. 젊었을 때 남편의 위함을 받은 여성은 굳이 남편의 요청이 없더라도 시어머니 삶에 대해 책임지려고 한다.

남편의 사랑을 받는 여성은 시어머니를 구박하는 일이 없다. 고부 갈등의 문제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그에 대한 남편의 태도에 있다. 마찬가지로 장서 갈등도 핵심은 부인에게 있다. 친정어머니의 개입을 용인했기 때문일 수 있다. 성장한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의 삶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핵가족화된 현대사회는 결혼한 자녀와 부모는 동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김병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사)행복가정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