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기본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은 쉬운 듯하지만 어렵다. 성장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재고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의류 산업은 재고 관리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를 가르기도 한다. 재무제표에서 재고자산은 미래 예측의 시그널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수상한 경영진은 재고자산을 조작하는 회계 부정을 저지른다. 투자자들을 속이는 행위다. 그만큼 재고자산에 대한 평가는 신중할 필요성이 있는 중요한 지표다.

동대문시장은 한국 의류 시장의 메카다. 동대문시장은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시장으로 변화했다. 새로운 신진 디자이너들은 자기만의 개성, 디자인의 영역을 개척하는 의류 및 봉제 산업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지역이 됐다. 필자도 가끔씩 동대문시장에서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한다.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디자인이 훨씬 세련돼졌다. 가격은 백화점 매장 가격보다 저렴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높은 중위권 가격권이다. 최근 유행하는 SPA(제조·유통 일괄형 의류)와 유사한 수준의 가격대다. 오히려 몇몇 매장은 고가 제품도 판매되고 있다.

동대문의 변화처럼 의류 부문 상장 기업들에서도 변했다. 과거 여성 의류 브랜드로 성장했던 논노, 남성 의류의 대명사였던 제일모직·코오롱 등은 새로운 변화의 영역으로 전환했다. 의류 산업은 부가가치를 생성하고 있다.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아웃도어 시장 영역은 일반 의류 시장보다 더 높은 성장세를 보여주기도 한다.
무더운 낮을 피해 시원한 밤에 쇼핑을 즐기기 위해 동대문 패션타운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노점상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8
무더운 낮을 피해 시원한 밤에 쇼핑을 즐기기 위해 동대문 패션타운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노점상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09.08
재고는 반드시 ‘적정하게’ 유지돼야

의류는 자체 브랜드 생산 업체 혹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로 구분된다. 브랜드 및 생산 방식의 중요성도 있지만 의류 산업 분석의 핵심 요인은 재고 관리다. 재고 관리는 매우 어렵다. 패션은 시시각각 변한다. 경쟁 업체는 비슷한 제품을 바로 생산할 수 있다. 따라서 고가 제품은 브랜드 관리와 재고 관리를 동시에 한다. 이 때문에 생산은 최적 수준에서만 이뤄지고 재고자산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지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류는 계절에 따라 제품이 변화되기 때문에 재고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유행’은 민감하게 소비자의 구매력을 변화시킨다. 이번 시즌에 판매되지 않은 제품은 다음해 같은 시즌에 같은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는 여력은 매우 적다. 새로운 제품군들이 경쟁 업체들에서 ‘유행=패션’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경기가 불황 국면에서는 재고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백화점의 성인 남자 양복 매출액 추이를 경기를 점검하는 바로미터로 점검하기도 한다. 경기 불황기 재고 관리의 어려움은 유동성 문제를 촉발한다. 반면 호황 국면에서는 재고자산은 더 높은 영업이익으로 돌아온다.

의류 제조업체인 A와 B 두 기업을 비교해 보자. A 기업은 OEM 생산 비중이 높은 기업이고 B 기업은 자체 브랜드 비중이 높은 기업이다. 브랜드 가치, 판매 네트워크, 생산 규모, 생산 시설의 노동력 비교 등을 제외하고 단순하게 재고자산 변화만으로 이들 기업의 가치 변화에 대한 미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필자가 펀드를 운용할 때는 A 기업을 선택했다. 2011년 양사 모두 매출액 성장률은 각각 23%, 28%로 시장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올린 회사들이었다. 이유는 적정한 재고자산 때문이었다.

‘안전 재고(safety inventory)’라는 말이 있다. 소비자들이 구매를 원하는 데도 생산 제품, 원재료 재고 등이 부족하면 소비자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고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 대신 경쟁사 제품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정한 재고자산, 즉 안전 재고는 필수적이다. 이는 ‘재고자산÷매출액’ 비중을 비교하면 재고자산의 적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A 기업은 2009년 이후 3년간 연속적으로 0.16배(재고자산÷매출액)을 유지하고 있다. 매출액이 증가하는 만큼 재고자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재고자산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제품이 팔리지 않아 매출액 성장 이후의 비용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B 기업은 매출액이 크게 늘어남에도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재고자산÷매출액 비중은 2010년 0.22배에서 2011년 0.30배로 급증하고 있다. 다음해인 2012년 재고자산의 부담은 제품 가격의 할인으로 재고 비중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2012년 비용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단순한 주가 상승에 따른 하락 조정이 아닌 구조적인 하락 조정의 여파는 2012년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B 기업에 대한 투자 전략은 재고자산의 변화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B 기업은 통상적인 재고자산÷매출액 비중이 0.22~0.24배 수준까지 정상화되는지를 실적 발표 때마다 확인해야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 전략을 다시 고려해볼 수 있다. 최근 B 기업의 재고자산이 분기 단위에서 축소되고 있다. 유심히 살펴본다면 새로운 기회를 엿볼 수도 있다.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 기업은 ‘영원무역’이다. 영원무역은 OEM 생산 비중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문 생산 체제다. 재고자산이 선행돼 생산되는 체제는 아니다. OEM 업체는 유행·계절성 등에 대한 주문량의 증가, 감소 요인은 있지만 재고자산에 의한 부담은 낮은 편이다.

B 기업은 LG패션이다. 상대적으로 계절성 제품 재고, 경기 변동성에 직접적인 재고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브랜드 가치를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으로 재고자산 수준이 하락한다면 역발상 투자 전략을 검토할 수 있다. 만약 재고자산이 일정 수준 안정화된 이후 재고자산이 증가한다면 투자 전략을 모색하는 전략도 유효할 수 있다. 소비자들의 LG패션 제품 구매력이 높아지고 LG패션은 제품 생산을 판매량보다 많이 생산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 재고자산 증가일 것이다. 재고자산의 증가, 감소와 기업 사업 모델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정 재고 수준에서 재고자산이 증가하면 변화의 시작이다. LG패션의 미래 가치는 재고자산에서 찾을 수 있다.
[민후식의 투자 노트] 의류 업종 분석법, 재고 가치는 기업 주가의 나침반이다
[민후식의 투자 노트] 의류 업종 분석법, 재고 가치는 기업 주가의 나침반이다
생산 방식 변화로 재고 가치 더 커져

물론 사업 모델이 다른 두 기업을 재고만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 의류 산업의 오랜 역사는 재고자산의 역사였다. 이를 잘 관리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있었고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의류·봉제 산업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특성이 있기 때문에 대구·구미·동대문에서 개성공단·중국·베트남·방글라데시 등지로 이전하는 과정을 거쳤다. 저임금 지역과 국가는 변할 수 있다. 10여 년 전에는 중국도 저임금의 수혜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 때문에 의류 산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변수는 재고자산 안정성 지표다. 최근과 같은 경기 불황 국면에서는 재고 관리가 가장 중요한 투자 가치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의류 및 봉제 산업에서 재고자산 지표가 투자지표에서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 생산 방식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 있지만 재고자산 지표는 미래 가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시그널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




민후식 파인투자자문 대표 hoosik_min@pineinve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