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 차이 인정해야 불협화음 사라진다


많은 남성들이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충돌될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사랑하는데 왜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부부 싸움은 대부분 여성이 문제를 제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계의 어려움을 여성이 더 정교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남성은 싸우자고 하지만 않으면 정말 살만하다고 느낀다.

이유는 이렇다. 남성의 첫째 관심은 ‘일’이다. 반면 여성은 ‘사랑’이 더 중요하다. 일은 먹고살기 위해 하고 사랑은 행복하기 위해 한다. 먼저 살 것을 마련하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자는 남성과 행복의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먹을 것만 있으면 뭐하냐는 여성의 충돌은 고전적인 남녀 갈등의 주제 중 하나다.

여성들에게 사랑은 보호받음과 사랑의 원천일 수 있지만 남성들에게 사랑은 ‘경쟁’의 전리품일 수도 있다. 남성에게 사랑이란 주제는 안락함과 거리가 멀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남성도 있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품 공세를 해야 하고 더 지속적으로 아내를 위해야 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고생해야 얻어질 수 있는 결과다.
[치유의 인간관계] 가깝고도 먼 사이, 남편과 아내
경쟁과 비교는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거의 자기와도 해야 한다.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전보다 나은 선물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끝이 어디인지 알기가 어렵다. 무리했는데도 옆집 남자가 더 큰 가치를 선물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맥이 풀리게 된다.

사랑이 경쟁의 요소를 담고 있는 것도 힘들지만,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제한을 받아야 하는 것도 남성들의 고통 중 하나다. 부인들은 남편이 돈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하루의 일과를 궁금해 하고 언제든지 남편들과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서로 투명하게 연결되기를 기대하는 일이 많다.

그것이 사랑이지만 남성들은 어렵다. 아내와 연결되고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내 생활에 개입당하는 것은 힘이 든다. 아내와 나는 사랑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이혼하고 독신 생활을 즐기는 선배를 만나거나 일과 관련 없이 아내가 모르는 상황에서도 동료와 술 한잔 하고 싶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가끔 들여다보는 것도 꺼림칙할 때가 있다.

남성들이 일 다음으로 추구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라 ‘자율성’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것이다. 간섭은 상징적으로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신체를 구속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식된다. 말로 행동을 구속하는 것이나 철장에 갇혀 있는 것이나 남성들에게는 그 의미가 같다. 간혹 아내의 말이 길어지면 고통을 느끼는 것을 여성들은 모르는 것 같다. 여성들에게 대화는 사랑의 정을 교류하는 행복한 행위지만 듣는 남성은 아내의 어려운 점을 해결해야 하는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 주제가 시댁에 대한 불만이거나 금전적인 어려움이라면 부모형제와 싸우거나 비합법적인 경제행위를 하라는 것으로 듣기도 한다.

어떤 때는 집중해 듣다 보면 별 내용이 없어 짜증을 내게 된다. “그래서 결과가 뭐야?” 남편들이 아내의 말을 들을 때는 마치 수학 문제를 풀거나 소방관이 불을 끄고 있을 때만큼 초집중한다. 그런데 그 집중은 오래갈 수 없다. 결국 긴장이 풀어져 건성으로 듣게 되고 그래서 아내에게 혼이 난다.

남성이 아내가 원하는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편한 삶을 살 수 있는 의미지만 또 그만큼 남편의 매력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닐까. 서로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같아질 필요는 없는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르기 때문에 끌렸기에 다른 점을 장점으로 키워주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모르겠다면 남편에게 답을 먼저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


김병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사)행복가정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