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저가 전세 확대로 ‘ 내리막길’

전세 시장이 잠잠하다. 조인스랜드 파워시세에 따르면 2012년 5월 말 서울 지역 일반 아파트의 ㎡당 전셋값은 243만 원으로 2011년 9월의 236만 원에 비해 3.0% 정도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겨울방학 수요 및 봄 이사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셋값 상승세가 이 정도에 그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1년 전인 2010년 9월부터 2011년 5월까지 같은 기간의 전셋값 상승률은 9.8%에 달했던 것을 보면 전셋값 상승 추세가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셋값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는 소식은 세입자에게는 반가운 소리일 수 있지만 그 원인을 보면 그럴 수도 없다. 그 원인에 대해 살펴보자.

전세는 100% 실수요이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그리고 시중 유동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전셋값 동향은 경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경기가 가장 좋을 때는 여유 자금이 많은 가구들이 생기면서 보다 큰 집이나 학군 등 입지가 좋은 곳으로 이전하려는 수요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수요가 증가한다고 이에 따라 공급이 탄력적으로 늘어나지는 않기 때문에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면서 전셋값이 급등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호경기 때는 고가 주택의 전셋값 상승세가 뚜렷하다. 한편 경기가 좋아지면 거처를 독립하려는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저가 주택 전세 시장에서도 상승세가 확산된다. 이 때문에 지역적으로는 초기에는 중심 지역의 상승세가 두드러지지만 나중에는 이런 상승세가 외곽 지역까지 확산돼 동반 상승하게 된다.

그러다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하면 높은 전셋값에 부담을 느끼게 된 수요자들이 점차 고가의 전세 시장에서 보다 싼 전세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이에 따라 고가 전세 시장은 보합 또는 약세를 보이는 반면 저가 전세 시장은 강세를 보이는 차별화 장세가 펼쳐진다. 지역적으로도 중심 지역보다 외곽 지역의 전셋값 상승이 더 높게 나타난다. 이 단계는 전체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고가 전세에서 저가 전세로 수요가 전환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기가 바닥을 칠 정도로 떨어지면 수요 자체가 줄어든다. 당장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더 좁거나 입지가 떨어지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려는 사람도 늘어나게 되고 1인 가구들은 독립생활을 포기하고 본가로 들어가거나 여러 명이 하나의 주택을 공동으로 임차하는 등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이 때문에 고가 주택이든 저가 주택이든 전셋값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인 1998년이라든지, 국제금융 위기가 불어 닥친 2008년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면 현재 전셋값 상승세가 주춤하는 것은 어느 단계에 해당할까. 전셋값 자체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세 번째 단계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전셋값 상승 추세가 꺾인 시점인 2011년 9월이라는 시점이 의미심장하다. 2011년 8월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유럽 사태가 확산되면서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향후 전셋값 시장의 추이를 관심 있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전셋값이 계속 약세를 보인다면 경기가 하강하고 있다는 신호이므로 주택 매매 시장뿐만 아니라 주식시장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셋값 상승세 둔화된 이유
현재 단계가 두 번째 단계라면 같은 수도권 내에서도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지역보다 전셋값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기도 지역의 전셋값 상승률이 더 높아야 한다. 2009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2년간 서울 지역 일반 아파트의 전셋값은 25.1% 뛰었고 경기도는 25.0% 올라 거의 같은 수준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011년 5월부터 2012년 5월까지 1년 동안을 살펴보면 서울은 8.5% 상승에 그친 반면 경기도는 9.2%가 올랐다.

작년 5월 기준으로 ㎡당 224만 원이나 했던 서울 전셋값에 부담을 느낀 실수요자들이 130만 원에 그친 경기도로 이전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서울 전셋값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한 2011년 9월 이후 더욱 두드러져 서울은 2012년 5월까지 상승률이 3.0%인데 비해 경기도는 4.4%나 올랐다. 경기도도 예전보다 전셋값 상승률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셋값 상승세 둔화된 이유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셋값 상승세 둔화된 이유
6·7월 전세 시장 동향 예의 주시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전국 아파트의 전세 상승률은 작년 동기는 물론 1986년부터 2011년까지 지난 25년 평균치보다 훨씬 적게 오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기 하강의 영향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5월 전세 시장만 놓고 보면 약간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4월에 비해 전셋값이 0.2% 정도 오르는데 그쳐 작년 같은 기간의 전셋값 상승률이 1.1%였던 것에 비해서는 아주 낮은 상승률이라고 할 수 있지만 25년 평균치인 0.04%의 상승률과 비교해 보면 5배나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5월이면 계절적으로 이사철이 끝나기 때문에 전셋값이 거의 오르지 않는 시기인데, 올해는 그나마 전셋값이 상승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윤달 때문에 전세 수요가 뒤로 일정 기간 늦춰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전셋값 상승세가 크게 둔화된 이유는 첫째, 유럽발 경제 위기가 경기 침체로 본격 작용하고 있다는 점. 둘째, 지난 수년간 급등한 전셋값에 부담을 느낀 수요자들이 고가 전세 시장을 외면하고 저가 전세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점. 셋째, 게다가 윤달이 봄 이사철과 겹치면서 전세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어떤 원인이 주된 원인이고 어떤 것이 비중이 적은 원인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주된 원인이 첫 번째 이유라면 당분간 전셋값 약세 현상은 지속될 것이고 더 나아가 주택 매매 시장의 회복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인이 두 번째나 세 번째, 특히 세 번째라면 전셋값 상승세는 조만간 다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올해 입주 물량이 상당히 적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가을 이사철에는 전세난이 다시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높다. 그러므로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6월과 7월의 전세 시장 동향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절적 비수기인 이 시기 동안 전세 시장이 작년은 물론 25년 평균치 이하로 침체된다면 그 원인이 첫 번째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6월이나 7월에도 전세 시장이 5월에 비해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이것은 윤달 효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올가을에 전세난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현재 전셋값 상승이 꺾인 것이 역전세난으로 이어질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전세난이든 그 반대인 역전세난이든 그 기준점은 전 달이 아니라 2년 전 시세다. 조인스랜드 파워시세에 따르면 2년 전 서울 지역의 평균 전셋값은 ㎡당 201만 원으로 2년간 20.9% 상승했다. 이는 100㎡의 아파트 기준으로 4200만 원 정도 전세금을 올려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전세난이 아니라 전세난인 것이다. 경기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간 전셋값은 25.7% 올랐으며, 이는 100㎡의 아파트 기준으로 2900만 원 정도 전세금을 올려주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 시장은 100% 실수요에 의해 움직이는 시장이므로 임대인이나 임차인 모두 시장 동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6, 7월간의 전세 시장 동향을 지켜보면서 가을 이후 시장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