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의 일부를 정부 혹은 큰 기업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대중들에게 보다 저렴한 티켓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면 좋은 공연을 더욱 폭넓은 관객층에게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발레에는 말이 없다. 분명 스토리가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발레는 그 모든 이야기를 몸짓으로 한다. 가느다란 무용수의 손끝 발끝의 움직임은 애처로운 이별의 순간을 말하기도, 아름다운 사랑의 행복감을 말하기도 한다. 쉽게 말해 발레는 ‘몸으로 말하는’ 예술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 없는 발레의 특성은 대중들에게 발레가 지나치게 고급화돼 버린 결과를 낳았다. 친절하게 대사와 노랫말로 풀어 설명해 주지 않고 입을 다문 채 오케스트라 음악을 반주로 춤사위로만 무대를 채우는 발레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특정 계층만이 영위할 수 있는 고급문화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소수들이 높은 수준의 문화를 누리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관람하는 공연이라고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이러한 인식이 많이 개선돼 발레의 대중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이는 발레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쉬운 발레’, ‘해설이 있는 발레’ 등의 이름을 달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한 덕이기도 하고 폭넓은 문화 생활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덕이기도 하다. 또한 서희나 강수진 같은 한국 출신의 발레리나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린 것이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유명 발레를 레퍼토리로 삼아 열연을 펼친 것도 한몫했다.
발레가 이렇게 대중들에게 성큼 다가서면서 국내에 좋은 발레 공연 또한 끊이지 않는다. 작년에 시작된 대한민국 발레 축제는 이번 6월에도 열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 등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됐고, 국내 발레단의 다른 공연들 또한 연이어 계속된다. 해외 발레단의 내한도 이어지는데, 이번 7월에는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가 내한, 낭만 발레의 정수인 ‘지젤’을 공연한다. 5년 만에 내한하는 ABT의 한국 첫 ‘지젤’ 공연이자 한국인 솔리스트 서희가 열연하는 ‘지젤’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 터라 기대가 크다.
이번 내한 공연을 준비하면서 세계적인 발레 공연을 직접 볼 흔하지 않은 관람 기회를 필자 스스로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아쉬움이 남는다면 이렇게 발레의 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필자와 같은 제작자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다. 좋은 공연의 티켓들이 비싼 가격에 책정돼 언론에 오르내리는 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배경이 있다. 정부나 대기업의 지원 없이 민간 제작사에서 내한 공연을 유치하면서 높은 개런티와 체재비를 감당하려다 보니 티켓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작비의 일부를 정부 혹은 큰 기업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대중들에게 보다 저렴한 티켓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면 좋은 공연을 ‘착한 가격’에 더욱 폭넓은 관객층에게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관객으로서 발레를 한층 가까이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것은 아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고 살펴보면 발레는 초보 관객들을 위해 미리부터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한 장짜리 팸플릿도 좋은 예다. ABT의 ‘지젤’을 포함한 다가오는 발레 공연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발짝 다가가 마음을 열고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홍영진 더 에이치 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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