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BMW·메르세데스벤츠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것 같지 않던 콧대 높은 여인도 먹고살려면 앞치마를 둘러야 하는 걸까. 한때 선망의 대상에 그치던 ‘재규어(Jaguar)’가 요즘에는 대중적 브랜드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듯하다. 2008년 드라마틱한 변신으로 대중적 관심을 한껏 받았던 XF가 이번에는 마케팅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배기량의 다운사이징을 통해 구매자의 접근성을 더욱 높인 것이다.

기존의 재규어 라인업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최저가 모델은 ‘XF 3.0D 럭셔리’로 7490만 원이었다. 독일 3사(아우디·BMW·메르세데스벤츠)의 주력 모델인 A6, 5시리즈, E-클래스가 6000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가격차는 1000만 원 이내지만 7000만 원대라는 심리적 거리는 무시하지 못할 장벽이었다. 재규어는 지난해 12월 2.2리터 디젤엔진을 장착한 뉴 XF 2.2D를 출시함으로써 최초로 6000만 원대 모델을 선보였다. 가격도 7000만 원에서 10만 원 또는 100만 원을 뺀 ‘말로만 6000만 원대’가 아니라 6500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그러나 3000cc와 2200cc의 차이는 크다. XF 3.0D에 따라붙던 ‘럭셔리 스포츠 세단’이라는 별명에서 ‘스포츠’는 아쉽게도 붙이기 힘들 것 같다.
[카&라이프] 재규어 뉴 XF 2.2D, 독일 3사와 경쟁할 재규어의 야심작
재규어의 6000만 원대 첫 모델

XF 3.0D의 0→100km/h 가속 시간은 7.1초로 6초대에 근접하는 파워풀한 가속 성능을 자랑했지만 XF 2.2D는 8.5초로 다소 느려졌다. XF는 처음부터 디젤 사양을 주력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극도의 정숙성을 위해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는 내장재가 대폭 쓰였고 ‘럭셔리’를 위해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여 다소 무거워진 면이 있다. 1825kg의 중량에 2.2리터 디젤엔진은 소비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노선 언저리다.
[카&라이프] 재규어 뉴 XF 2.2D, 독일 3사와 경쟁할 재규어의 야심작
고유가 시대의 자동차 트렌드는 효율성으로, 이에는 경량화가 필수다. 필요 없는 기능은 과감히 빼야 하지만 XF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시동을 걸면 대시보드의 막혀 있던 통풍구 4개가 내부에서 회전하면서 바람구멍을 드러내고 원통형의 다이얼식 변속기가 솟아오른다. ‘주인님께서 친히 시동을 걸어주신’데 대한 일종의 환영 이벤트다. 스포츠카 중에는 시동을 걸면 엔진 회전계(타코미터)와 속도계가 오른쪽으로 최대한 회전했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하는데, 이런 기능들은 운행에 전혀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운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재미를 준다.

시승차의 시트는 베이지색 가죽이다. 검은색보다 호화로워 보인다. 실용적인 차들은 주로 검은색이 쓰이지만 그 위로 올라가면 베이지색이나 황갈색이 많이 쓰인다. XF에 쓰인 청록색 테마의 무드램프는 마치 분위기 있는 바(주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플라스틱 재질로 덮이게 마련인 대시보드는 전체가 가죽으로 싸여 있다. 플라스틱 소재 위에 다시 가죽을 덮는 식으로 차를 만드니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가속 성능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정도다. 2.2리터 디젤엔진의 특성상 초기 가속에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지만 중속 이상에서는 여유롭게 가속이 가능하다.

디젤엔진인데도 소음은 ‘당연히’ 거슬리지 않는다. 고연비를 위해 정지 시 엔진이 꺼지는 시스템이 적용됐고(버튼으로 선택 가능), 후방 카메라 대신 센서로 거리를 가늠해야 한다. 대량 판매가 안 되는 수입차의 숙명인 후(後)진 내비게이션은 ‘옥에 티’다.




우종국 기자 xyz@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