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유통‘ 초긴장’… 민자 발전 ‘ 호재’


예년보다 이른 더위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겨울철 전력난을 힘겹게 넘긴 기업들이 벌써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다.

5월 들어 기온이 평년보다 10도 가까이 치솟으며 전력 수요가 급증했다. 지난 5월 2일에는 작년 9·15 정전 사태를 연상케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늘어난 냉방 수요로 오후 3시쯤 예비 전력이 최소 안정선인 400만kW 선을 간신히 넘긴 422만kW까지 떨어졌다. 대규모 순환 정전이 단행된 작년 9월 15일 334만kW를 기록한 이후 이 수치가 400만kW대로 내려앉은 것은 8개월 만에 처음이다. 긴급조치가 없었다면 252만kW까지 떨어졌을 것이라는 게 지식경제부의 설명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여름철 전력난 앞두고 기업들 희비
냉방 온도 26도로 제한

5월 22일 현재 예비 전력은 468만5000kW 를 기록하고 있다. 5월 2일보다 상황이 다소 호전됐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기온이 치솟거나 발전소 한두 곳이 고장 나면 곧바로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예비 전력이 400만kW 밑으로 떨어지면 비상초치에 돌입하고 100만kW가 무너지면 계획 단전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빼들게 된다.

최근 전력 수요가 늘어난 것은 예년보다 높은 기온 탓이다. 여기에 공급 감소가 겹치며 상황이 악화됐다. 겨울철 난방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풀가동했던 기존 발전소들이 최근 집중적으로 정비에 들어간 상태다. 여기에 고장과 사고로 멈춰선 발전소도 많다. 고리원자력 1호기(58만kW)는 정전 사고 은폐 사건이 드러난 3월 이후 가동이 중단됐다. 6월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점검을 거쳐 재가동 여부를 결정한다. 전열관에 문제가 생긴 울진원자력 4호기(100만kW)도 지난해 9월부터 운전이 중지된 상태다. 증기 발생기를 교체하려면 1~2년이 걸리기 때문에 울진 4호기는 올여름과 내년에도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9.16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9.16
정부의 예상에 따르면 올여름 최대 전력 공급 능력(1일 기준)은 7854만kW로 지난해보다 겨우 90만kW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대 전력 수요는 7707만kW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때 예비 전력은 147만kW까지 뚝 떨어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올여름 예비 전력을 무조건 500만kW 이상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전력 수급 비상 대책 기간도 6월 1일부터 9월 21일까지로 한 달 이상 늘려 잡았다. 정부는 6월부터 시행하는 절전 대책으로 300만kW를 확보하고 발전소 예방 정비 연기로 200만kW, 민간 자가 발전기 가동으로 100만kW 등 총 600만kW의 예비 전력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 대책의 골자는 다양한 인센티브로 전력 수요를 최대한 억제한다는 것이다. 우선 전력 수요 분산을 위해 휴가와 공장 보수 기간을 8월 셋째 주와 넷째 주에 집중하도록 기업들의 협조를 받기로 했다. 휴가 조정에 참여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kWh당 120원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전력 피크 시간대를 피해 조업하는 기업에도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휴가나 조정 시간 조정이 힘든 정유와 석유화학 업종은 자가 발전기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피크 시간대 전력량의 21%를 차지하는 냉방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출입문을 연 채 냉방하는 업소에 과태료를 물리고 에너지 소비량이 2000TOE(석유 환산톤)가 넘는 대형 건물들은 실내 온도를 섭씨 영상 26도 이상으로 제한한다.
서울 지역 기온이 28도를 나타내는 등 전국이 여름 날씨를 보인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길을 건너는 시민들이 피어오르는 지열 때문에 형상이 일그러져 보인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5.20
서울 지역 기온이 28도를 나타내는 등 전국이 여름 날씨를 보인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길을 건너는 시민들이 피어오르는 지열 때문에 형상이 일그러져 보인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5.20
기업들도 전력 사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실링팬(천장에 다는 선풍기) 60개를 전 층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시원한 공기를 매장 구석구석 순환시켜 26도 제한 냉방에서 고객들이 쾌적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대백화점은 향후 다른 점포에서 실링팬 설치를 확대할 방침이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직원들은 고객에게 시원한 느낌을 주기 위해 ‘하와이안 셔츠’를 착용하고 근무하기로 했다. 신촌점·목동점·중동점 등에 들어선 영패션 전문관인 유플렉스 직원들도 양복을 벗고 ‘쿨패션’으로 갈아입는다. 또한 현대백화점은 청바지나 란제리 매장의 피팅룸에 미니 선풍기도 새로 설치했다. 피팅룸은 고객들이 가장 더워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점포별로 직원 5~10명으로 구성된 ‘에너지 보안관’ 제도를 운영해 창고나 휴게실, 매장 내 전등, 멀티 탭, 플러그 등 절전 관리를 강화한다.

롯데백화점은 마네킹이나 상품을 밝게 비추는 할로겐 조명을 줄이는 한편 매장 가장자리의 불필요한 조명들도 제거했다. 할로겐 조명은 강한 빛 때문에 고객들에게 더운 열기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에스컬레이터 주변과 고객들이 자주 이동하는 곳의 50와트짜리 할로겐 조명은 열 발생이 적은 5.5와트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교체했다. 롯데백화점은 점포별로 고객들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 시원한 차나 음료수를 제공하는 ‘쿨 서비스’도 준비한다.



가동률 치솟은 민자 발전 수익 급증

신세계백화점도 피팅룸에 스탠드형 선풍기를 설치하고 할로겐 조명을 LED 조명으로 교체하는 등 절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고객들이 적은 평일 낮 시간대 무빙워크 운행을 탄력적으로 운행하는가 하면 6월부터는 무빙워크 속도를 5~10% 정도 늦춰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로 했다. 건물 외벽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태양열을 차단하는 열 차단 필름을 주요 매장에 설치하고 올가을까지 매장 내 고발열 조명을 LED 조명으로 모두 교체한다. 롯데마트는 전국 39개 점포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업종인 철강 업체들은 정부의 절전 대책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휴가 기간 분산과 조업 시간 조정 등을 시행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생산직은 7월 말 일괄적으로 휴가를 떠나고 관리직은 적절하게 휴가를 분산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은 임시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 짓고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완공되는 2014년까지는 전력 수급 불안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력 수요를 먼저 잡지 않으면 아무리 발전소를 지어도 수급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원가에도 못 미치는 싼 전기료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작년 8월과 12월 두 차례 전기요금 인상이 단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두 차례의 전기요금 인상 후 전기 판매량이 다음 달에만 다소 줄었을 뿐 두 달째부터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요금 인상 효과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전력난 수혜 기업도 있다. 전력 수급이 빠듯해지면서 가동률이 올라간 민자 발전 회사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재 민자 발전은 국내 전력의 15%를 담당한다. 포스코파워, SK E&S, GS파워 등 대기업 자회사들이 LNG 발전소를 운영해 전력을 공급한다. 지난해부터는 5차 전력 수급 계획에 따라 기저발전인 석탄발전소도 민간이 운영할 수 있게 돼 STX·동부·동양 등이 석탄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남 광양에 있는 SK E&S의 1080MW급 LNG 복합화력발전소는 지난해 평균 80%의 가동률을 기록했다. SK E&S는 지난해 1251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광양발전소는 올해 전력 수요 증가로 가동률이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동률이 90%로 10% 포인트 오르면 순이익이 약 15% 늘어난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