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미국

CJ그룹은 세계경제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까. 미국은 ‘글로벌 CJ’를 지향하는 CJ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다. 더구나 CJ는 자동차나 TV 같은 범용 소비재를 만드는 기업이 아니다. 식품·외식·영화 등의 사업을 하는 생활 문화 기업이다.

국내 생활 문화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사례는 아직 없다. 특히 외식업에선 몇몇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의 쓴맛을 삼켜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CJ가 베트남·중국 등과 함께 미국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 글로벌화를 추진하는 것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글로벌 CJ’, ‘그레이트 CJ’가 단순한 구호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시장에서 CJ는 통할 수 있을까.

CJ는 지난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부자 동네로 유명한 베벌리힐스에 CJ의 비빔밥 전문점 비비고를 열었다. 2010년 9월 UCLA 근처인 웨스트우드에 1호점을 낸데 이어 두 번째였다. 웨스트우드는 젊은 학생들이 많은 지역인데다 아시안인의 비중이 높다. 아무래도 한국 음식점이 접근하기 편한 곳이다.

그러나 베벌리힐스는 상황이 다르다. 베벌리힐스는 세계 톱스타의 도시이며 미 서부 최고의 부촌 중 하나로 꼽힌다. 인근에 호화로운 고급 주택단지가 형성돼 있는 데다 시내 유명 호텔과 럭셔리 쇼핑 거리 한복판에 비비고가 들어선 것이다. 그만큼 비비고의 현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비비고는 식품·외식 분야에서 CJ가 작심하고 작명한 글로벌 브랜드다. 미국 비비고의 성공 여부는 ‘글로벌CJ’의 성패를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류 전도사 CJ] 미국, 비비고·영화로 ‘ 글로벌’ 초석 다진다
비비고, 건강식으로 호평

지난 5월 15일 기자는 오후 12~3시에 비비고 웨스트우드점(1호점)과 베벌리힐스점(2호점)을 차례로 방문했다. 65석 규모의 웨스트우드점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아시아인들도 적지않게 눈에 띄었다. 반면 베벌리힐스점은 대부분 파란 눈의 백인들이 주를 이뤘다.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성훈 CJ푸드빌 미국 법인장은 “고객 중에 백인이 70%, 아시안이 20%”라고 귀띔했다. 매출은 이미 베벌리힐스점이 웨스트우드점을 넘어섰다. 김 법인장은 “베벌리힐스점의 월매출은 13만5000달러(1억5000여만 원)로 웨스트우드점의 10만5000달러(1억2000여만 원)를 추월했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어간 때문에 수익을 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비비고의 미국 진출이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성공 요인으로는 현지화한 메뉴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개개인의 기호에 맞게 밥·소스·토핑을 선택해 비빔밥을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백미·현미·흑미·찰보리 등 4가지 종류의 밥과 고추장·쌈장·참깨·레몬간장소스 등 4종의 소스, 숯불고기·닭가슴살·치킨데리야키·제육불고기·새우·두부 등 6가지 토핑, 그리고 비빔밥 형태에 따라 비비고 라이스·비빔밥·돌솥보리밥 등 3가지 형태를 조합해 비빔밥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미국 전역에 ‘아시아 음식은 건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베벌리힐스점에서 만난 직장인 버락 라비브 씨도 “비비고에서 한국 음식을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고 건강해지는 기분”이라며 “미국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레스토랑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물론 당장 매장 수를 급격히 늘릴 수는 없다. 아직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운영 역량 또한 부족한 형편이다. 김 법인장은 “2016년까지 사업 확대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2017년부터 가맹 사업을 시작해 2020년 100호점을 열겠다는 전략”이라고 조심스레 밝혔다.
[한류 전도사 CJ] 미국, 비비고·영화로 ‘ 글로벌’ 초석 다진다
CJ의 미국 사업은 생각보다 판이 크다. 비비고·뚜레쥬르 같은 외식업뿐만 아니라 만두·면 등의 식품 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라이신 같은 식품 바이오 사업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극장 운영, 영화 제작·투자·배급 등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점이 특별했다. 세계를 제패한 미국 영화의 심장부인 LA 할리우드에서 한국 기업이 영화를 제작·배급하고 극장까지 운영하는 곳은 CJ가 유일하다. 만약 CJ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삼성전자가 세계시장을 제패한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영화 사업, 할리우드에서 정면 승부

CJ는 CJ미국E&M을 출범시킨 것은 지난해 5월이다. 미국 E&M을 이끌 대표로 CJ의 영화 사업을 총괄해 온 최준환 씨를 임명했다. 최 대표는 CJ를 국내 1위의 영화 제작사로 키운 주역이다. 최 대표의 미국 발령은 미국에서 영화 사업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CJ미국E&M이 미국에서 영위하는 사업은 ▷영화 제작 ▷영화 배급 ▷영화 상영(CGV) ▷미디어(Mnet USA 채널) 등이다. 영화 제작은 이제 출발선에 섰을 뿐이다. 그동안 경험을 쌓는 차원에서 한국 작품들의 리메이크 작업을 해 왔지만 직접 제작해 발표한 작품은 없다. 그렇지만 곧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사·감독들과 공동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LA 코리아타운 근처 윌셔가에 있는 CJ미국E&M 사무실에 만난 최준환 대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급 레벨의 할리우드 제작자를 만나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지금은 최고 레벨의 제작자와 감독 등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졌고 CJ의 영화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최 대표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등과 공동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2009년부터 손을 댄 영화 배급 사업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올드보이’, ‘써니’, ‘해운대’ 등 한국 최고의 히트작들을 미국 영화관에 소개했다. 극장 사업은 LA 코리아타운 인근에 2010년 6월 스크린 3개의 극장을 직접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최 대표는 “한국 영화와 아시아 영화를 직접 유통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라며 “LA 지역 200개 극장 중 스크린당 수입이 12~14위에 이른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까지는 한국인 관객이 79%로 비중이 높다. 미국 주요 지역에 추가 개설 계획도 있다.

CJ의 미국 사업에서 엠넷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일부 프로그램은 직접 제작하고 있다. LA 다운타운에서 서쪽으로 약 40분 거리의 컬버시티에서 자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최 대표는 “미국 전역에 가입 가구만 1100만 가구에 이른다”며 “아시아 콘텐츠 보급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전도사 CJ] 미국, 비비고·영화로 ‘ 글로벌’ 초석 다진다
CJ의 식품 사업도 상승세가 가파르다. 만두·면·소스·김 등 CJ의 제품은 미국 내 주요 한인 마켓 600여 곳은 물론 홀푸드·크로거·월마트 등 1만8000개 현지 매장에 입점해 있다. 이 중 면류가 약 70%로 지난해 전체 연간 식품 매출 1억 달러(약 1200억 원) 중 2100만 달러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스낵 김이 인기를 얻고 있다. 매년 100% 이상 성장할 정도다.

CJ푸드의 브랜드 매니저인 정하명 부장은 “올해 김으로만 500만 달러(약 58억 원)의 매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CJ 식품 사업은 매년 30% 이상의 고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CJ 푸드(Food)·애니천 브랜드로 사업을 해왔지만 최근부터 비비고 브랜드로 바꿔 나가고 있다. 정 부장은 “한국 식품은 건강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 것”이라고 말했다.
[한류 전도사 CJ] 미국, 비비고·영화로 ‘ 글로벌’ 초석 다진다
CJ그룹이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는 식품 바이오 사업과 물류 사업도 미국에서 글로벌 1위 등극을 노리고 있다. 식품 바이오는 아이오와 주 포트닷지시에 3억 달러를 투자해 라이신 공장을 짓고 있다. 연간 라이신 10만 톤의 생산력을 갖춘 이 공장은 내년 완공한다.

CJ그룹의 미국 매출은 지난해 2억7800만 달러(약 3252억 원), 올해는 4억2600만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CJ아메리카의 김한중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15년 8억7700만 달러 규모의 연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식품·식품서비스·엔터테인먼트 등이 주 사업인 CJ가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글로벌 CJ’를 넘어 ‘그레이트 CJ’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