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여파로 약세…코리아타운만 과열

요즘 일본 거리엔 활력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진 이후 공포와 긴장이 웃음을 앗아갔다.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대지진마저 예고된 상태다. 가뜩이나 장기 불황 탓에 돈줄이 묶였는데 메가톤급 재해 악재까지 겹치며 상권엔 발걸음이 뚝 끊겼다. 골목 상권은 붕괴 초읽기에 들어갔다.

상업통계(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소매 점포는 1982년 172만 개에서 2007년 114만 개로 급감했다. 최근 10년 동안에만 20% 줄어들었다. 특히 종업원 1~4명의 소규모 점포가 많이 사라졌다. 1997년 46만 개에서 2007년 28만 개로 감소했다. 다만 도심 번화가는 예외다. 일부 지역은 점포 수요가 늘면서 임대료가 상승 중이다. 역세권 중대형 상업 시설이 연이어 오픈하면서 파급효과를 키운다. 집객 능력이 확인되자 과거 최대의 출점 계획을 밝힌 프랜차이즈도 있다. 점포 수요의 확산 전파다.

전체적인 점포 임대 시장은 아직 한겨울이다. 매매·임대 수요가 공급 물량보다 적어 점포 시세는 연일 하락세다. 일례로 공시지가는 주택지(-2.3%)와 상업지(-3.1%) 모두 하락했다(2012년 3월). 금융 위기로 내수 침체가 가속화된 2008년부터 하락세가 뚜렷해졌다. 부동산 값이 맥을 못 추니 임대 시세도 덩달아 약세다.

2012년 4월 현재 도쿄 도심(23구)의 평균 임대료(1층)는 3.3㎡당 2만5979엔이다(점포시세TOWN). 최저 3936엔부터 최대 18만9022만 엔을 기록 중이다. 층수 전체를 포함한 평균 임대료는 2만214엔이다. 최근 1년 동안 횡보 혹은 약세가 대세다. 2000년대 중반까진 꽤 좋았다.
[미친 임대료의 역습] ‘버블’ 이후 일본 임대료
도쿄 평균 임대료 3.3㎡당 2만 엔대

특히 도심 번화가는 미니 버블을 지적할 정도로 시세가 괜찮았다. 2003~2007년 시기다. 긴자·신주쿠·시부야·아오야마 등 4대 상업지는 2003년 3.3㎡당 2만5000엔대이던 임대료가 2007년 4만 엔대를 돌파했다. 이 시기 일본 경기는 사실상 전후 최장의 회복기를 기록했었다. 미국 내수와 중국 수출의 글로벌 대형 호재에 힘입어 규제완화·민영화·시장개방의 친(親)시장 정책이 맞물린 결과였다. 다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지진 여파 등이 소비 침체와 상권 약화로 찬물을 끼얹었다.

눈길을 끄는 건 늘 예외 사례다. 점포 임대료 시세표에도 별난 사례가 있다. 먼저 인기 절정의 코리아타운 인근 시세다. ‘한류’의 메카인 신주쿠의 임대 점포 물건 동향은 과수요다. 뚜렷한 임대 가격 상승세다. 입지 좋은 대로변 혹은 상권 밀집 권역은 임대 소식이 나오자마자 주인을 찾는다. 기존 상가를 쪼개 창업 수요를 맞추기도 한다.

붐은 임대료에 반영된다. 신주쿠의 점포 임대료 평균 단가는 3.3㎡당 2만2303엔이다. 지상 1층 기준인데 10년 전엔 3.3㎡당 1만 엔 언저리에도 못 갔다. 최고가는 8만3888엔인데 비해 최저가는 5310엔으로 시세 격차가 크다. 평균 단가로 66㎡(20평) 점포라면 월 44만6060엔의 임대료가 시세다. 최고가를 적용한 331㎡(100평) 점포면 월 838만8800엔이다. 원화로 환산하면 1억 원대를 훌쩍 넘긴다. 최근 3년 시세로 보면 그나마 바닥권이다. 3.3㎡당 평균 단가는 2009년(2만3830엔) 이후 미약하나마 하락세다.

임대료를 끌어올린 건 코리아타운이다. 신주쿠 전체 시세는 조용해도 ‘한류’ 점포 밀집 권역(신오쿠보역)은 사정이 180도 다르다. 2011년(1만8390엔) 바닥을 찍은 후 4월 현재(2만3498엔) 3년 전인 2009년(2만2221엔) 시세를 이미 따라잡았다.

임대료가 비싸진 곳은 이 밖에 몇 군데 더 있다. 도쿄 23구 가운데에선 지요다(2011년 2만1709엔→2012년 2만2399엔), 시부야(2만5817엔→2만6409엔), 나카노(1만6804엔→1만7517엔), 고토(1만5432엔→1만6,70엔) 등이 대표적이다(이누키정보.com). 특히 동일 권역 안에서도 임대 시세가 유독 뛰어오른 상권이 적지 않다. 도쿄 중심을 순환하는 JR야마노테선 인근의 지하철 역세권이 그렇다. 북서 지역 일부를 빼면 대부분 바닥을 찍고 소폭이나마 올랐다. 시부야 역세권은 2011년 바닥(2만6283엔)을 찍은 후 현재(2만7854엔) 회복 중이다.

확연히 급등한 역세권은 남부상권이다. 시나가와(2만729엔→2만8301엔)와 요요기(2만688엔→2만5883엔) 등이 상징적인데 거의 V자에 가까운 급등세를 보였다. JR야마노테선을 예로 들었지만 이 외의 지하철 권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점포 임대료 상승 온기는 철저히 차별적이다. 발걸음을 부르는 도심부 역세권·번화가는 갈수록 상승 추세가 확산되지만 그렇지 않은 지방·부도심 시세는 바닥 모를 하락세다.

그렇다면 전통적으로 점포 임대료가 비싼 지역은 어떨까. 선두주자는 긴자다. 긴자가 들어선 추오구의 3.3㎡당 임대료는 1층이 3만5000엔대다. 전체 평균은 2만5000엔대다. 하지만 최근 3년간을 보면 하락 일변도다. 2009년엔 3.3㎡당 7만 엔대에 임대됐으니 반 토막이 난 셈이다. 긴자2~7초메(丁木)를 중심으로 일본 최고 땅값을 자랑하는 야마노(山野)악기 긴자 본점 주변 시세도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 명품 브랜드의 출점 중지와 수급 밸런스의 역전으로 임대료가 떨어진 결과다.

평가는 바닥 확인이 대세다. 일본부동산연구소는 “긴자라는 특유의 희소성이 있어 더 이상 떨어질 개연성은 낮다”고 했다. 시세 전망은 밝다. 경기 회복으로 명품 매출이 반전하면 임대료 회복이 기대된다. 지진 이후 중단됐던 외국인 관광객의 회귀 쇼핑이 집중되면서 신규 출점도 가시화되고 있다.
[미친 임대료의 역습] ‘버블’ 이후 일본 임대료
도심 임대료 2년 전의 ‘반 토막’

시부야는 그래도 사정이 좀 낫다. 2009년 4만 엔대에서 최근 3만 엔대 근접 수준까지 회복됐다. 인근의 신주쿠 상권 때문에 경쟁 격화가 예상되지만 대규모 상업 시설의 신규 오픈이 뒷심을 실어줄 전망이다. 역세권에서 멀어질수록 점포를 비롯한 사무실 공실률이 만만치 않은 게 시세 한계다. 유동인구 350만 명을 자랑하는 신주쿠도 압도적인 판매력을 기반으로 임대 시세가 센 지역 중 하나다. 동일 역세권인 데도 2~3배의 시세 격차가 날 만큼 대로변과 골목 상권이 혼재됐다.

최근 경기 회복으로 상권 에너지가 확산되면서 일부 지역은 공급과잉마저 목격된다. 코리아타운 등 과열지구는 대로변에서 동떨어진 뒷골목까지 점포 공급이 확산되면서 전체적인 임대 시세에 마이너스로 작용 중이다. 전통의 강호 지역에 한정한다면 공급 물건은 2011년 하반기부터 증가세다.

올해 전망은 조심스러운 낙관파가 우세하다. 긍정적인 것은 경기 회복 시그널이다. 경기 회복이 본격화될수록 소비지출이 늘어나면 여기에 발맞춰 상권 매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어서다. 무엇보다 기업 매출의 회복 신호가 뚜렷해졌다. 3월 산업 생산은 전월보다 1% 올랐다. 3월 가계 지출도 1년 전보다 3.4% 증가했다. 정부의 금융 완화 의지도 회복세에 힘을 싣는다. 그 덕분에 일부 기업은 올해 실적 전망을 상향 조정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점포 임대 시세는 차츰 회복될 공산이 크다.
[미친 임대료의 역습] ‘버블’ 이후 일본 임대료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