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고려홍삼의 맥 잇는 윤청광 삼흥 사장

‘강개상인.’ 1997년 윤청광(51) 삼흥 사장이 인삼 시장에 처음 뛰어들면서 만든 브랜드명이다. 개성과 강화를 중심 무대로 활동하며 고려 인삼을 세계에 알린 송상(松商:개성상인)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받았다. 윤 사장이 태어나 자란 강화도는 1960~1970년까지만 해도 국내 인삼 산업의 중심지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은 금산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윤 사장은 “인삼은 연작이 안 돼 30년 정도 재배가 끊겼다”며 “최근 인삼 재배 주기가 다시 돌아와 강화가 다시 옛 명성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삼에 대한 수요가 매년 폭발적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인삼을 쪄서 말린 홍삼 제품은 건강 기능 식품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시장 규모가 커졌다. 윤 사장은 강화 지역의 사라진 전통 제조법을 복원해 100% 수제 명품 홍삼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한국이 인삼 종주국이라고 하지만 생산량에서는 중국, 매출에서는 스위스의 파마톤이 1위”라며 “세계시장 공략에 미래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8일 김포 본사에서 윤 사장을 만났다.


“100% 자연 건조 고집…송상 후예 자부심”
홍삼 제조의 남다른 비법이 있습니까.

1996년 전매법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한국인삼공사만 인삼을 수매해 제품으로 만들어 팔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인삼을 수납하고 남겨둔 것을 집에서 가마솥에 쪄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강화 지역에선 오래전부터 홍삼을 만들어 먹었어요. 하지만 그걸 표준화해 놓은 게 없었죠. 처음 공장을 만들고 어려움이 많았어요. 같은 온도, 같은 조건이라도 어떤 때는 잘 쪄지는데, 또 어떤 때는 잘 안 되거든요. 공정을 표준화하는 데만 3~4년이 걸렸지요.

좋은 홍삼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중요합니까.

우선 인삼을 잘 쪄서 익혀야 합니다. 조금만 조건이 맞지 않아도 내공·내백이 생기거든요. 열을 지나치게 가하면 엿가락의 공기구멍 같은 내공이 생깁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열을 적게 가하면 반대로 중간에 익지 않은 하얀 부분이 그대로 남게 되죠. 같은 온도, 같은 시간을 쪄도 매번 결과가 달라져요. 최적의 조건을 알아내려면 원료인 수삼을 재배하는 삼밭부터 파악해야죠.

밭에 따라 인삼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말씀이시군요.

인삼 밭의 지형이나 토양을 봐야죠. 그해 비가 얼마나 왔느냐, 또 눈이 얼마나 왔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작물이 햇볕을 많이 받아야 잘 자라지만 인삼은 음지 식물이에요. 해가 지나치게 잘 들어도 좋지 않죠. 남쪽으로 경사진 양지 바른 곳이 아니라 오히려 북쪽으로 기울어져 음지인 곳이 품질이 더 좋아요.

6년산 인삼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삼은 생김새가 사람의 체형을 그대로 닮았어요. 4~5년근은 청소년기, 6년근은 성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인삼의 유효 성분으로 공인된 진세노사이드가 12종류인데, 성인에 해당하는 6년근에서 이 성분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또 6년근 이상이 되면 뿌리의 목질화가 시작돼 쓰기가 어려워요. 인삼은 크게 머리 부분(뇌두)과 몸통, 잔뿌리(미)로 나뉘죠. 대부분 미 부분을 잘라내고 몸통만 사용해요. 하지만 홍삼을 제대로 먹으려면 원형 그대로 먹는 게 옳아요. 원형 홍삼 제품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죠.

100% 자연 건조를 강조하시는데요.

큰 인삼 회사들은 대량생산을 위해 열풍 건조를 합니다. 쪄낸 홍삼에 열을 가해 억지로 말리는 거죠. 하지만 강개상인 홍삼은 전통 방식인 자연 건조를 고집합니다. 열풍 건조를 하면 홍삼을 만드는 데 보름밖에 걸리지 않아요. 자연 건조는 이보다 훨씬 긴 2~3개월이 필요하죠. 매년 9~10월 인삼을 캐서 겨울 내내 홍삼화 작업을 합니다. 특히 강화도 공장에서 모든 과정이 진행돼요. 서리와 이슬을 그대로 품고 강화도 청정 지역의 해풍을 맞으며 건조됐기 때문에 맛과 향이 매우 뛰어나요.

홍삼 시장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어려움은 없습니까.

인삼 시장은 한국인삼공사의 정관장이 거의 독점하고 있어요. 전매법이 폐지됐지만 여전히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이죠. 우리 같은 중소 업체가 정관장과 경쟁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아요.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소비자들 인식이 이미 굳어져 있거든요.

구체적인 사례가 있습니까.

많은 분들이 홍삼 추출액은 까맣고 끈적거려야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갈색이나 진갈색이 나는 것이 더 좋은 제품이죠. 인삼은 탄수화물이 70% 이상이에요. 그걸 물에 넣고 열을 가해 달이면서 농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탄수화물은 열을 가하면 타는 성질을 갖고 있어요. 농축액을 많이 얻기 위해 농축 횟수를 늘리면 인삼의 유효 성분이 낮아지고 검게 변하며 쓴맛을 냅니다. 정관장이 소비자들에게 검은 추출액이 진짜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측면이 있어요. 올해 정관장도 진갈색을 띤 제품을 내놓았죠.
“100% 자연 건조 고집…송상 후예 자부심”
해외 수출도 하고 있습니까.

지난해부터 홍콩에 수출을 시작했습니다. 올해 태국과 터키 시장에도 진출했고요. 터키는 제품 샘플을 들고 바이어가 직접 찾아왔어요. 현재 100%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홍삼을 만들다 보니 공급할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어요. 국내에서는 별도 매장 없이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에서만 판매합니다. 그렇지만 해외시장 공략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죠. 장기적으로는 내수와 수출 비중을 절반씩 가져가는 게 목표입니다.

유망한 해외시장은 어디입니까.

중국은 인삼이나 홍삼에서 세계 최대 시장입니다. 1970년대 만해도 고려인삼이 세계시장의 70%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10%를 밑돌아요. 인삼 종주국이라는 타이틀도 옛말이죠.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세계 1위예요. 백두산 중국 쪽 지역이 모두 인삼밭이죠. 거기서 장백산 인삼이 대량으로 납니다. 매출로는 인삼도 나지 않는 스위스 파마톤의 진사나가 1위고요. 매년 인삼으로만 30억 달러를 벌어들이죠.

홍삼 시장에 뛰어든 업체가 많아지고 있는데요.

현재 홍삼 업체가 수백 개가 넘어요. 홍삼 생산은 수삼·증삼·홍삼·농축·추출액·제품 등 여러 단계로 거쳐 이뤄집니다. 이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곳은 한국인삼공사와 우리를 포함해 몇 곳 안 돼요. 인삼을 재배해 홍삼을 만드는 단계까지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소규모로 하는 곳이 많아요. 최근 홍삼 시장에 뛰어든 대기업들은 주로 추출액을 가져다 그걸 제품화하는 형태죠. 직접 공장을 두지 않고 임가공 형태로 하는 곳도 있고요. 홍삼은 재배에서 판매까지 자금 회수 기간이 길어 돈만 따지면 하기 어려워요. 홍삼 전문 기업이라는 자부심이 큰 힘이죠.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